[Opinion] 싱가포르 숙소에서의 악몽 [여행]

글 입력 2020.01.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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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떠난 열대기후 국가로의 여행. 누구나 계절이 정반대인 해외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로망은 있지 않을까? 딱 2년 전 로망을 실현했다. 캐리어에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 기분은 이미 최상이었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여행 준비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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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떠나기 전날 짐을 챙기는 건 내게 설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전에 여행지에서 지낼 숙소를 예약하고 어떤 맛집과 랜드마크, 쇼핑몰을 들리고 이를 며칠 차 일정에 넣을지가관심사다. 당시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센토사섬, 클락키 방문 일정도 넣기 시작했고 교통편을 고려해서 예약한 숙소도 마음에 들었다. 여대생 다섯이서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안전도 우선이었고, 주변 치안과 방문지 일정 교통편까지 알맞게 떨어지는 숙소는 만족스러웠다.

 

선정한 숙소는 고층 고급빌라였다. 빌라 입구에는 24시간 서 있는 경비원과 옆엔 경비실도 있어서 위험하지 않았고 정원이 야외 풀장과 야자수로 꾸며져서 무척 예뻤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했었는데 수많은 후기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도착한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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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끝마친 후 유심을 바꾸자마자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공항 앞으로 택시를 부를 테니 그 택시를 타고 숙소로 먼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우리에게 알려줄 전달사항들과 방 키를 본인이 직접 전해주고 싶은데 시간 약속을 잡는 것도 일정상 불가능할 거 같고 서로에게 편한 지금 빨리 하자고 했다. 게다가 청소도 체크인 시간보다 미리 끝냈으니 짐을 두고 일정을 소화하라는 소식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싱가포르는 우리 다섯 모두 처음이었고 서투른 우리에게 베푸는 친절한 호의로 느껴졌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으며 그 택시를 타고 (택시 안에는 택시기사 외에도 호스트의 비서가 먼저 타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 앞에 도착했다. 아니, 숙소를 지나쳤다. 숙소 메인 게이트 앞으로 택시가 정차하는 줄 알았으나 그 게이트에서 비서는 우리 일행 중 한 명을 여권을 소지한 채 본인과 함께 내리도록 했고, 남겨진 우리는 뒷문인 지하주차장과 이어진 작은 통로에 도착했으며 택시는 우리를 이곳에서 내리게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일이 이상했어야만 했다. 택시기사 역시 호스트와 미리 얘기가 된 상황이었을 거라 여겨진다. 캐리어가 든 짐을 끌며 우리는 숙소 뒷문에서 대기했고 곧 도착한 아까 그 비서와 내렸던 일행까지 만날 수 있었다. 다섯 모두에게 느껴졌던 두렵고 묘한 촉을 아직 나는 잊지 못한다.

 

 

 

메인 게이트가 아닌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야만 하는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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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와 함께 메인 게이트에서 내렸던 언니는 경직되고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때 언어의 소중함을 느꼈다. 여기는 싱가포르고 이 사람들은 한국어를 쓰지 못한다. 중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니까. 그렇게 우리는 한국어로 상황을 나누고 걱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 여행이 무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한국어로 난리를 쳤다.

 

언니는 비서와 함께 메인 게이트에서 내린 후 경비원에게 신상 정보 검사를 당했다고 한다. 비서는 초급 한국어를 구사했었는데, 앞뒤 말을 다 잘라내고 무조건 이 아파트에 친구가 있어서 놀러 왔다고, 친구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우기라고 했다. 경비원에게 그 말 그대로 설명한 후 여권 번호와 이름, 국적, 나이 등을 알려주고 왔다고 했다. 여행 기간 동안 지낼 돈을 공정하게 지불했고 자유롭게 오고 가야만 하는 숙소를 우리는 몰래 숨어서 뒷문으로 가야만 했다.

 

도착한 숙소, 고층 빌라 룸에선 비서가 방 키만 주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카드로 문을 열고 우리를 들어오게 했다. 숙소의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시설은 지금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낯설고 소름이 끼쳤다.

 

그 사람은 익숙하게 자기 집인 듯 테이블 앞에서 앉더니 우리 보고 오히려 편히 한 번 앉아보라고 했다. 여권을 수거해 개인 인적 사항이 들어있는 페이지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가려 했다. 해외에서 여권은 개인의 신분증이나 마찬가지인데, 대체 왜? 이유를 물으니. 비서는 어눌한 한국어와 수준급 영어를 함께 사용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싱가포르에서 에어비앤비는 불법 숙박업소입니다. 따라서 경찰의 신고나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는다면 거주자는 무조건 쫓겨나게 됩니다. 심각해질 경우 경위서 작성은 물론 경찰, 대사관 직원과도 대면 심사가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싱가포르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새 숙소를 구하기보단 우리의 말을 듣는 게 서로에게 편하지 않을까. 여권을 사진 찍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인지조차도 우리는 너희를 확신하지 못하기에. 또한, 언제 싱가포르에서 떠나는 지 정도는 알아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알리바이 진술이 가능하니...”

 

상당히 웃기고 아이러니한 상황인데도 당시 우리는 충격받았고 머리가 아파졌다. 여행 계획을 다 짜고 왔는데 여기서 새로 숙소를 구하자니 돈도 문제지만 시간도 분명 낭비였다. 숙박이 가능한 숙소가 지금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환불금을 다 줄지도 미지수였다.

 

그리고 숙소엔 커다란 남자가 갑자기 문을 열고 거만하게 들어왔다. 같이 숙소 사업하는 직원이라며 우리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지만 압박과 협박이 담긴) 전하며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우리를 계속 쳐다봤다. 제안을 거절한다면 가만두지 않을거라는 모습을 비언어적으로 계속해서 표시했다. 강제 주거침입에 무언의 압박까지. 참 무슨 일인가 싶었었다.

 

에어비앤비가 싱가폴에서 불법인지 미처 알지 못한 우리 잘못도 있지만, 저렴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머물곤 했었다. 우리가 불법을 저지른 범죄자가 되기보단, 오히려 여행객들에게 도착 당일에 모든 걸 통보해버리고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이 사람들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메인 게이트에서 실랑이를 벌였을 때 일행 언니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비서로 온 여자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여권을 제시했을 때도 한국 여권이었으며 컨셉을 잡고 초급 한국어와 현지인만큼의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해서 싱가포르 사람인 척하는 거였다. 우리가 나눴던 모든 한국어 대화들을 대놓고 이해하며 들었다고 떠올리니 숨이 막혔다.

 

 

 

손바닥 안에 갇혀버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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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불법인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호스트는 자신의 신분이 이웃 주민, 빌라 경비원, 경찰 등에게 노출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숙소에 머무는 여행자들을 옥죄는 거였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길 바랐다. 심지어 우리에게 통금시간도 정해줬다. 이웃주민들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목적같았다.

 

감이 왔다. 이 숙소에 후기로 적힌 글들은 조작된 거였구나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행동만 해야 하고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된다니. 가장 편한 모습으로 여유를 누리고 싶은 공간이 음침하고 숨죽여야만 하는 공간으로 변함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그날 저녁에 터졌다. 우울한 마음으로 일정을 끝내고 도착한 숙소에선 거실부터 방안에 바퀴벌레가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벌레와 같이 지내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이상한 규칙을 들이미는 숙소에서는 10일이 아닌 하루라도 못 살겠다고 우리는 회의를 마쳤다.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었고 환불부터 당장 해달라고. 앞서 있었던 불쾌한 부탁도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의사를 확실히 전했다. 환불이 불가하다는 당연한(?) 거절을 듣고 나선 미련없이 연락을 끝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 곧바로 우리는 인근 호스텔을 검색했으며, 예약까지 완벽히 끝마친 후 새벽에 몰래 숙소를 옮겼다. 호스트에게도 통보했고 에어비앤비 본사에도 알렸다.

 

 

 

추억이 된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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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느끼려 떠난 여행에서 악몽을 겪었다. 캐리어를 끌고 도망치듯 나온 숙소, 그것도 타국에서 벌어진 재앙은 잔인하고도 짜증 났다. 또 수백만 원을 정당하게 쓰고 떠난 여행지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도 서러웠었다.

 

이후 나는 여행을 떠날 때 호스텔과 호텔이 아니면 꺼려하는 습관이 생겼다.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안전하고 계약상의 말이 바뀔 수 없는 곳을 선호한다. 비행기 시간대가 안 맞으면 공항에서 몇 시간은 노숙하는 여행자도 있지만 나는 아마도 평생 불가능할 거 같다.

 

그 절박한 하루가 지난 후 아침부터 에어비앤비 본사에 연락하고 상황을 증명하고 서류를 업로드한 기억들은 정말이지 영화 같았다. 숙박 사기단들은 최종적으로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 숙소를 에어비앤비 공식 사이트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100% 환불금은 받았지만, 에어비앤비에서는 우리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이 일은 트라우마지만 그래도 싱가포르는 예뻤다. 참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개개인에게 상황이 절박하고 비참하더라도 환경이 아름다우면 하루는 용서됨을 배웠다. 숙소는 악몽이지만 나라는 환상적이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동양과 서양 모든 이들이 휴양지로 찾는 곳이다. 서양에선 다름을 느끼고 인근인 중국, 일본, 대만에선 익숙함을 느낀다면, 싱가포르에서는 이국을 느꼈다. 절반씩 섞인 융합이 이곳에서 나타나는구나 싶어서 어느 곳보다 새롭고 특별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순간은 그립지 않지만 그 공간이 그립다면. 다시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난다면 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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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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