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명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서]

현대 사회에서 베르테르를 논하다
글 입력 2020.01.0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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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가변적인 단어가 있을까. 빠르게 변하는 요즘 시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운명과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 이 현대와 가장 동떨어진 단어, 운명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 있다. 괴테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아주 오래 전 고등학생 때였다. 독서토론에 후보지로 나왔던 이 책을 처음 읽으며 18살의 나는 세상에 이런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을 품었다. 별과 달이 보이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게 행복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그득해지는, 그런 감정 자체가 존재할지 의아했다.


로테를 위해 자신이 사라지겠다는, 사랑을 위해 삶을 포기하겠다는 그 절절한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세상에 그런 감정이 존재할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도 모르게 그런 감정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몰아치는 감정을 겪는다면 어떨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지 막연하게 상상하며 책장을 덮은 기억이 난다.


꽤 시간이 지난 이후, 다시 이 책을 읽은 지금, 책장을 덮으며 처음 든 생각은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면 ‘역시 운명 따위 dog나 줘버려’다. 어릴 때의 나보다 조금이나마 세상을 더 오래 살아봤다고, 막연하게만 상상하던 베르테르의 치기 어린 순수함을 이제는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베르테르가 살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운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분명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기에 ‘운명’이라는 단어가 거의 의미를 잃어버릴 정도로 가벼워졌다면, 이 책이 출간되었던 18세기의 ‘운명’이 가지는 무게는 상당했을 것이다.


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기, 신분적 제약이 흔들리고 질서가 새롭게 개편되던 시기였지만, 여전히 중세의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있던 그 사회에서 운명이란 단어, 운명 같은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무게를 지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없이 가변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운명의 무게를 알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베르테르와 점점 멀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모두 바칠 운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조용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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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한창 감정이 생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던 시기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처럼 냉철한 시선으로 베르테르를 바라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같은 문장이라도 마음의 온도에 따라 문장의 온도는 달라지기에 아마 그 당시의 나는 베르테르가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 시기는 나에게 가장 어둡고 깊은 우울이 들어찬 해였다. 세상에 우두커니 혼자 남겨진 막연한 두려움, 쓸쓸함, 내가 바라는 것은 도무지 이룰 수 없고,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처참함. 그 바닥의 어두운 감정은 베르테르가 로테를 포기해야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없이 느꼈을 감정이다.


이 소설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날것의 감정이 담겨있기에 아마 작년의 나는 베르테르에게 심하게 이입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베르테르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베르테르 (혹은 유명인)을 따라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위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곳 없는 그런 아득한 심정 말이다.


이 지경쯤 되니 도대체 감정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떤 순간에는 감정의 생의 모든 것을 지배하기도 한다. 베르테르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린 어떻게 감정이란 폭탄을 다루며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그것이 꼭 사랑이 아니라 해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시달리게 되면 그 속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운명의 무게는 감정의 무게가 아닐까.


운명의 무게와 감정의 무게 사이에서, 베르테르를 향한 공감과 냉소 사이에서 나는 궁금증을 품은 채 갈등하는 중이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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