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글 입력 2020.01.0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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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중인 친구가 있어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는데, 사실 혼자서 해외에 나가보는 경험도 처음이었고 해외여행도 3년 만이어서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더군다나 연말, 홀리데이 위크의 뉴욕은 소매치기가 많다 하여 혹시 몰라 여권 사진까지 들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지갑을 도둑맞아버렸다.


현금 25만원과 카드, 주민등록증, 학생증까지 말끔히 잃어버린 채 여행을 시작했다. 액땜이라고 치자, 엄청난 여행이 될 건가보다, 하며 나 자신을 다독였는데 이 다독임이 진실이 될 줄이야. 정말이지 황홀하기 그지없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MoMA’ 뮤지엄이었다. ‘Museum of Modern Art’를 줄인 MoMA(이하 모마) 박물관은 말 그대로 현대미술 전시가 주를 이루는 뮤지엄이었다. 대부분이 20~21세기 작품들이었지만 간간히 18세기나 19세기 작품도 눈에 띄었다. 마그리트, 세잔, 피카소, 프리다 칼로 등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그림도 많아서 두 시간 넘는 관람 동안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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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그림 중 고흐의 그림도 있었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 주위에는 사람들이 한가득 몰려 사진을 찍었는데, 생각보다 그림 크기가 크지 않아서 두 눈으로 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유명세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지루한 기다림을 견뎠지만 그림을 실제로 마주하니 방금 전 내가 품었던 철없는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고 뱉은 감탄사는 ‘어떻게 저렇게 그리지?’였다.


나는 그림 쪽으로는 무지한 사람이기 때문에 붓터치가 얼마나 섬세한지, 구도가 얼마나 완벽한지, 색감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참 아쉽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것도 ‘와...’뿐이라 무어라 감상을 남기기에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고흐의 그림이 얼마나 멋졌는지 감탄을 늘어놓다가 설명이 빈약해지자 ‘그냥 가서 봐’로 마무리하던 그 기분. 조금 더 공부하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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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28일 오후 5시쯤 귀국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리고 29일 오후 2시에 ‘빈센트 반 고흐’를 관람했다. 사실 대학로로 걸음을 옮기는 내내 이런 일정을 잡아 둔 과거의 나를 호되게 혼냈다. 귀국한 지 닷새가 다 되어가는 현재에도 시차적응에 실패해 새벽 여섯시가 넘은 이 시간에 리뷰를 쓰는 나인데, 그 당시에는 더더욱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혜화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열심히 졸았다. 공연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걱정이 앞섰다. 졸면 어쩌지, 하는.


다행히 걱정은 기우였다. 극이 시작하자마자 온 무대는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 찼고,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영상 효과 덕에 잠이 싹 날아가 버렸다. 아직 뉴욕의 여운이 가시지 않을 때라 뉴욕에서 봤던 고흐의 붓 터치가 다시금 살아나며 극 속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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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전설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이야기다. 둘 사이에 주고받았던 편지를 기반으로, 고흐의 생애를 되짚으며 신화처럼 새겨진 고흐가 아닌 그림을 사랑하던 ‘인간’ 고흐를 조명한다.


빈센트와 테오 2인으로 이루어진 극이지만 화려하고도 수수한 영상 효과와 빈센트의 그림이 만나 무대를 꽉 채운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이한 ‘빈센트 반 고흐’는 5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매니아 층을 두텁게 유지해 왔다. 그만큼 작품 퀄리티가 보장된 뮤지컬인 셈이다.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넘버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 뒤로 고흐의 명작이 펼쳐지는 순간, 그 순간 하나로 이 작품을 볼 가치는 충분해진다.

 


바람과 온도, 달과 별의 하모니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오베르의 밤


나의 숨소리, 나의 맥박

나의 모든 신경이 감미롭게

춤을 추는 오베르의 밤



바람, 온도, 달과 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어떤 풍경일지 궁금해진다. 고흐가 숨을 거두기 직전 바라봤던 밀밭의 풍경도 궁금해진다.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 화폭에서 춤을 췄던 손길도 궁금해진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흐를 궁금하게 만드는 극이다.


이 극을 보며 가장 궁금해진 것은 고흐의 원동력이었다. 가난과 질병, 우울 틈에서도 그림만 있으면 뭐든 괜찮아지는 열정.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그림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애정. 그런 열정과 애정을 쏟는 삶은 어떤 삶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그리게 만들었을지, 무엇이 그를 버티게 만들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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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박물관에서 마주했던 고흐의 그림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고흐는 사실적인 묘사보다 순간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 말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이 왜 바다처럼 파도가 치듯 일렁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크고 나니 별이 움직이는 궤도와 바람이 스치는 감각을 그림으로 그려냈다는 해석을 알게 되었고, 얼마 전 직접 그림을 보고 나니 고흐에게 중요했던 것은 두 눈에 보이는 사실적 하늘이 아니라 고흐 자신이 느끼는 밤하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빈센트 반 고흐’에서도 빈센트는 자신의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고, 평생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삼는다. 마지막 순간에는 붓 대신 총을 들지만 그 이유조차도 인생을 일단락하기 완벽한 날씨이기 때문에, 완벽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완벽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고흐다운 결말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유독 여운이 길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고흐의 작품으로 가득 메워진 무대 탓일지도 모르고, 서정적인 운율과 가사로 이루어진 넘버 때문일지도 모른다. 잔잔하고 소소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가운데에 고흐 형제의 우정과 빈센트의 열정, 그리고 테오의 사랑이 또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마치 몇 세기를 거쳐 명작으로 굳어진 화폭과 같은 작품이다. 볼수록 생각나고 들을수록 새로워지는 ‘빈센트 반 고흐’. 유독 추운 이번 겨울, 따사롭고 아름다운 고흐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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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그림에 인생을 건 한 남자의 이야기 -


일자 : 2019.12.07 ~ 2020.03.01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3시, 7시

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

12.07(토) 3시 공연 없음

12.25(수) 2시, 6시 공연

01.01(수) 2시, 6시 공연

01.24(금) 2시, 6시 공연

01.25(토) 2시, 6시 공연

01.26(일) 2시, 6시 공연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1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4,000원


주최/기획

에이치제이컬쳐 주식회사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공연시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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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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