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쾌하게 풀어낸 공상과학 -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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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SF 소설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SF 영화나 소설보다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 창작물을 더 좋아했고, 커서는 그 취향이 더욱 확고해졌다. SF 영화 중 그나마 즐겼던 것은 디스토피아 SF 영화들이었다. 매트릭스, 토탈 리콜 등 실제 있을 법한 디스토피아를 좋아했다.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조금 더 할 말이 많다. 중학생 때 나의 꿈 중 하나는 천문학자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과학이 너무 재미있었고, 특히나 별에 대해 배울 때 하염없이 빠져드는 기분이 참 새로웠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시리즈가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를 이과생으로 키우려던 아빠의 계획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극단적인 문과생으로 자라나 수학이나 과학과 연을 끊은 지 오래지만.
사실 아직도 밤하늘 사진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이과로 진학하지 못한 이유는 수학이었다. 수학은 너무도 크고 거대한 산맥처럼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과학에 대한 애정도 수학의 공포 앞에서는 너무나 미미했기에 난 문과를 선택했다. 수학을 피하느라 과학과도 멀어져버린 비운의 문과생이 바로 나였다.
지금과 달리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문과와 이과가 정확히 이분되어 있어서 문과생인 난 과학을 접할 기회가 굉장히 적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구과학 한 과목을 들은 것이 내 과학 공부의 마지막 마침표였다. 하필이면 점심시간 직후에 배정된 과목이라 매 시간 열심히 졸았던 기억뿐이다. 그마저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고 나니 과학 시간에 과학 제재 비문학 지문을 풀어서 무늬만 과학이지 국어 시간과 다를 게 없었다. 입시를 앞두고 있던 난 별다른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은 없었고 오히려 학교의 효율적인 정책을 좋아한 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다.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어” 속 ‘다’에 과학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과학 분야 팟캐스트 1위를 지키는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원종우 대표의 첫 소설집이다. ‘과학 전문가도 아니고 문과 출신’이라는 작가 소개가 내 관심을 끌었다. 과학에 무지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완벽하게 충족되었다. 충족되고도 남았다. 이 책은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를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 단편 앞뒤에는 앞설과 뒷설이 실려 있어 해당 단편을 착안한 과학적 원리나 사실, 그리고 작가의 후기 등이 적혀 있다. 과학에 대한 토막지식도 얻을 수 있고, 이를 어렵지 않게 소설로 풀어낸 단편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여덟 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의학기술과 과학을 이토록 발전하게 한 원동력은 영생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에 대해 다루는 SF 창작물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될 듯하다. 비단 SF뿐 아니라 현재나 과거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서도 죽음의 공포나 삶의 미련은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 왔다. 그만큼 인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갈망해 온 것이다.
‘굿 플레이스’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천국과 비슷한 사후세계인 ‘굿 플레이스’에 주인공 ‘엘리너’가 실수로 떨어진다. 그 후 굿 플레이스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가 바로 ‘굿 플레이스’다. 여기에는 굿 플레이스의 설계자인 마이클이 등장하는데, 천사와 같은 존재기 때문에 인간과 달리 무한한 생명을 가진다.
이 ‘굿 플레이스’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엘리너와 치디(엘리너의 소울메이트이자 생전 윤리 철학 교수)가 마이클에게 인간의 유한성과 존재의 위기를 알려준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제든 죽음이 닥칠 수 있고, 평생 동안 죽음의 공포 안에서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생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마이클은 어느 순간 자신도 우주의 먼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큰 혼란에 빠지는데, 치디는 이 혼란을 ‘존재의 위기’라고 일컬으며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역시 죽음에 대해서 다룬다. 먼 미래에 무한한 생명을 가질 수 있게 된 인류는 엉뚱하게도 도전의식과 모험 정신을 잃어버리곤 간단한 외출에도 공포를 느끼게 된다. 질병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교통사고나 예기치 못할 테러, 낙상 등에는 자유로워지지 못했기에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외부적 요인을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영생을 살 수 있는 약을 거부한 채 유한한 삶을 사는 ‘우피’다. 사람들에게 우피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한 종족이라 손가락질 받지만, 그들은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사는 셈이다.
“다들 어렵사리 얻은 영원한 삶의 기회를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혹시라도 병을 옮길지 모르는 다른 인간과 생물들로부터 멀리 도망갔고 어쩌면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바깥세상으로부터 꽁꽁 숨어버렸어.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됐지. 결국 영원히 살기 위해 무한한 겁쟁이가 되고 만 거란다.” (28쪽)
죽음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어쩌면 인류를 이끌어 온 원동력은 죽음의 공포나 생존의 갈망보다도 죽음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우스갯소리가 품고 있는 철학이 꽤나 깊은 것처럼.
‘메멘토 모리’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인형들의 천국’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지구, 그리고 인류를 멸종시키고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낸 AI들의 이야기다. 감정도 정서도 없이 오로지 효율성과 이성에 의해 작동되기에 겉보기에 완벽한 세상을 꾸려 가는 AI들. 물론 알 수 없는 버그나 오류도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하다’는 수식어가 걸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유 없이 전쟁을 벌이고 학살을 일삼는 인류보다는 컴퓨터가 낫지 않느냐, 하면 또 할 말이 없다.
인류가 AI를 이길 수 없는 이유는 감정 때문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원격 조종 청소기에 ‘감사해요’, ‘미안해요’, ‘속상해요’ 등 인간이 말하는 언어와 인간의 표정을 담아냈더니 청소기를 박살내는 사람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예시들도 흥미롭다. 실제로 인천공항에는 안내로봇인 ‘에어스타’가 공항을 활보하는데, 귀여운 표정과 목소리 때문에 관광객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느끼는 ‘듯한’ AI들. 그러나 그들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처럼 표현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과 다르다.
‘인형들의 천국’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결말 때문이었지만 스포일러가 강할 듯해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 소설에서는 로봇들도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로봇인지 인간인지 등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의식과 감정이 인간을 규정하는 기준이었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로봇은 인간과 어떻게 다른 걸까. 그리고 로봇들의 자의식을 어떻게 확정지을 수 있을까. 21세기의 새로운 딜레마다.
이렇듯 이 책은 과학과 철학, 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가볍게 뒤섞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이야기도 있고, 장편으로 만나보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설과 뒷설인 듯하다. 소설의 비화와 과학적 사실을 매 단편마다 만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책장을 덮을 때 쯤 고민하게 되었다. 매 순간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어쩌면 먼 미래, 아니, 멀지 않은 미래에서 ‘좋은 사람’을 규정하는 기준 중 하나는 인간다움이 되지 않을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과 실수, 오류들 말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감정과 실수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AI를 이길 수 없으리라 장담하지만, 조금 희망적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의 실수와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다. 다가오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사회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인간다움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정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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