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 고흐의 삶을 비추다 -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글 입력 2020.01.0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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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날, 시사회를 통해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접했다.


찾아올 연휴를 가뿐하게 맞이할 요량이었으나 잔뜩 흐린 날씨와 쾌쾌한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그 날은 조금 우울한 하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홀로 팝콘 라지 사이즈를 품에 안고, 피로하고 조금 멍한 정신으로 마주했던 영화.


하지만 상영이 시작되고 나서는 찬란한 빛의 색에 정신이 번쩍 살아났다. 반 고흐의 시선과 움직임에 맞춰 흔들리는 생생한 장면 연출과 그가 사랑한 자연을 최대한 그 자체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듯 황홀하게 나타나는 풍경을 따라가노라면 2시간은 슥 흘러가버리는 짧은 한 순간이 되어버린다.

 

 

 

감정선을 섬세하게 읽어나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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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나타난 고흐는 내가 알고 있던, 혹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고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지극히 예민하고 까탈스러우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겁내는 괴짜 화가라고 주입되어 있었던 고흐가 아니었다. 그러한 이미지는 어떤 맥락에서 내 머리에 쓰여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한 인물을 지나치게 성급하게 판단한 질 낮은 고정관념이었다.


영화 속 고흐는 오직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마음 여린 한 인간이었다. 드넓고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영감 속에서 끊임없이 헤엄치며,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감각의 자극에서 허덕이다 이를 해소하고 나누기 위해 온 생을 다 바친 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그림이란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는 언어로서 생존적이고 필연적인 삶의 요소였다. 사람으로부터 담을 쌓고 지냈다 얘기되는 그는 사실 그 누구보다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는 이 같은 고흐의 세계를 대사뿐만 아니라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의 시선, 작은 움직임 등을 통해 간접적이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때로는 여러 등장인물과 대사의 나열로 부대끼는 장면보다 고흐가 가만히 앉아 나무와 땅, 하늘을 바라보는 고요한 침묵의 장면이 더 많다. 화가이기도 했던 슈나벨 감독은 고흐가 보냈던 아주 작은 순간과 찰나의 시간에 집중했다.

 

 

 

그가 사랑했던 찬란한 풍경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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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벅찬 감동이 차오르는 2시간이었다. 무감정한 대상으로, 그저 존재할 뿐으로 여겨지는 자연은 고흐의 눈과 손을 거쳐 생생하게 역동하는 감정을 드러낸다.


고흐는 자연의 살아있음을, 매 순간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생의 에너지를 그 누구보다 잘 그려낸 화가였다. 그리고 영화는 자연의 찬란한 풍경을 사랑했던 고흐의 시선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사람과 건물로 가득한 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 생활을 시작한 고흐를 따라, 탁 트인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초원의 풍경으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무엇보다 이를 담아내는데 있어 결코 조급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롱테이크로 시간이 멈춘 듯 전개되는 자연의 모습은 고흐의 시선을 따라, 그의 곁에서 가만히 앉아 세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만든다.


흥미로웠던 점은 때로 스크린 전체를 고흐가 바라본 시선 그 자체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따스한 햇볕을 머금어 살짝 노랗게 빛나는 풍경이, 눈가의 촉촉한 물기를 표현한 것처럼 부드러이 번져서 나타난다. 고흐가 걸을 때마다 스크린 역시 이리저리 흔들리고, 빛도 이리저리 반짝이며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문뜩 고흐의 눈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복잡한 서사나 대사 처리 없이도 영화는 2시간 내내 그 자체로 완벽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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