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가의 소명이란 무엇인가,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영원을 꿈꾼 화가, 고흐
글 입력 2019.12.3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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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루는 전기 영화이다. 전기 영화를 볼 때에는 그것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는 실화에 가깝기는 하지만,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과 감독의 연출이 개입하며 허구성이 존재한다. 이렇기에 같은 사람을 소재로서 다루어도 너무나도 다른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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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와 관련한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고흐를 바라본다. 이전 많은 작품들에서 고흐의 불행한 삶과 광기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화가로서의 고흐’에 집중한 작품이다.


이것은 감독 줄리언 슈나벨 또한 화가로 활동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0년대 회화의 부활을 이끈 미국 신표현주의의 대표 화가로서 그는 고흐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영화에 담으려 애썼다.


줄리언 슈나벨 감독이 고흐의 시선을 담기 위해서 ‘핸드 헬드’ 기법(카메라를 손으로 직접 들어서 촬영함으로써 화면의 자연스러운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촬영 방식)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스크린으로 보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해서 놀라웠다.


이러한 기법은 영화 초반에 그가 작품에 몰입하여 자연 속을 휘젓고 다닐 때, 영화 중후반을 달려가며 그의 불안한 감정 상태를 보여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윌렘과 함께 걷고 뛸 수 있어야 했다. 카메라를 땅에 놓았다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 들기도 하며 마치 전장의 사진 기자처럼 찍어야 했다. 하루는 줄리언에게 내가 찍은 것들이 너무 흔들리진 않았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삶이란 게 원래 흔들리는 것인데 너무 흔들린다는 게 있겠나’”

 

- 촬영감독 브누아 들롬의 인터뷰 중


 

그의 시선을 따라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화면과, 흐려지고 일순 뚜렷해지고는 하는 화면들이 고흐의 폭풍우 치는 내면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상상한 것보다 더욱 ‘날 것’의 느낌이 많이 나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단순히 고흐의 시선에 담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고흐에게 ‘과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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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의 옆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그를 스친 사람들-테오, 고갱, 가셰 박사-에게 큰 애정을 보인다. 고흐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테오의 품에 안겨 편안해하고 또 동시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고흐라는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여린지, 고흐와 테오의 우애는 어떤 종류의 빛깔을 띠고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테오의 부탁으로 고흐의 곁에 머무르게 된 고갱이 떠날 때 그의 영혼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바라보며 함께 마음이 아팠다. 사람에게 의지하면서도 사람은 결국 구원이 될 수 없음을 점차 깨닫는 사람을 보는 것은 역시 애달픈 일이었다.

 

현실은 그에게 너무 비참한 공간이었다. 고흐는 흔들리고, 뿌예지는 정신 속에서 오롯이 자연만을 바라보았다. 왜 상상해서 그리지 않고 자연을 베껴 그리냐는 고갱의 물음에 고흐는 아름다움은 이미 자연에 존재하니 그것을 꺼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대답한다. 언제나 흔들리고 불안한 현실 속에서 그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었던 것이다.

 

고흐는 자연의 순간에 집착하는 듯 보였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빛, 바람, 시간 따위로 인해-하기 때문에 캔버스에 그 순간을 담기 위해서는 빠르게 붓 터치를 해야만 했다. 고갱은 고흐의 붓 터치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비판하지만 고흐에게 그러한 붓 터치는 필연적인 것이고 동시에 필수적이었다. 아름다움의 순간을 포착하여 빠르게 캔버스로 담아내는 것이 그에겐 어떠한 소명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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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소명이란 무엇일까. 고흐에게는 순간을 영원에 가닿도록 하는 것이 화가의 소명이었을 지 모른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나와 영원의 관계’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보았던 모든 순간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영원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인 우리가 할 일일 것이다. 우리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바라보고 향유하는 것이 바로 그의 삶을 확장시켜 영원에 가닿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들 사이에 둘러싸여 관에 누워있는 고흐의 모습은 어쩐지 숭고해보였다. 몇 겹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을까. 그가 꿈꾸던 영원에 도착했을까.

 

 




고흐, 영원의 문에서
- At Eternity's Gate -


연출 : 줄리언 슈나벨
 
각본
장 클로드 카리에
줄리언 슈나벨, 루이스 쿠겔버그
 

출연

윌렘 대포, 오스카 아이삭

매즈 미켈슨, 루퍼트 프렌드


장르 : 드라마(미국, 프랑스)

개봉
2019.12.26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 111분
 
수입 : 찬란
 
제공/배급 : ㈜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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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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