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의 끝까지 21일. 나에게까지 x일. [영화]

글 입력 2019.12.2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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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사라지기까지 21일이 남았다는 방송과 함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지막 삶을 즐긴다.


아내 또는 남편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기도 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며 무엇이 됐건 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리저리 뒤얽힌다.


주인공 도지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미처 찾아가지 못했던 옛사랑을 찾아가고, 페니는 잠에 취해 비행기를 놓쳐 돌아갈 수 없었던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 도로를 거닐기도 하고 차를 타고 달리기도 하며 세상의 마지막으로 함께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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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어떤 일 또는 생명의 끝과 죽음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모순적인 존재다. 우리의 인생이 상자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그 속의 고양이며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관찰자가 된다.


그렇기에 상자 속에 갇혀버린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매 번 그 상자를 열어 변화를 관찰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자가 닫혀있는 동안 변해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없고, 실제로 그 시간을 살아간다 하여도 이것이 진정한 내 삶인지에 대해서 확답을 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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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옆을 지켜주던 인생의 반려자가 세상의 끝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한 순간 돌변해 나를 떠나는 일을 일상에서 떠올릴 일은 그다지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마치 도지처럼.


하지만 도지의 아내는 마지막 삶을 즐기고 싶었는지 그를 떠나버렸고 도지는 혼자 남겨졌다. 나 또는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쭉 지켜봤던 어떤 이에 관해 당신이 내린 그 판단, 달리 말해 ‘아무개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반드시 참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필히 당신이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 속에서 쌓인 경험뿐이리라.


그렇지만 그 경험은 그 아무개를 관찰하던 시점의 관찰자로서 모아 온 정보일 뿐이다. 당신이 관찰자의 위치에서 이탈했던 시기에 상자 속에서 그 아무개가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즉, 그 명제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혹은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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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와 도지는 서로 처음 만난 사이였고 이전까지는 존재 자체도 몰랐을 터이기에 세상의 끝을 함께 마지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둘은 종말을 함께했다. 처음 만난 아무개라는 관찰 시점에서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으로 관찰 시점이 변했다. 이런 인연의 끝이 우연일 수도 있고 필연일 수도 있다.


도지와 페니가 서로가 연결된 어떤 시점에서 사장 속을 관찰할 수 없었기에 그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기에 그 어떤 답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모두의 삶은 필연과 우연의 연결이자 분리인 모순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

 

모든 인생은 참과 거짓의 공존이라는 것이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사람이다’ 또는 ‘너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세상의 끝이라는 갑작스레 다가온 거대한 충격에 사람들은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나, 당신, 또는 누군가가 살아온 삶은 그 당시의 관찰자로서 바라본 한 순간의 모습들이 이어지는 하나의 필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관찰자 또는 관찰 시점이 달라지면 또 다른 모습으로 너무나도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회한이 함께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시간은 내가 지켜본 시점 외에는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본 것만 알 수 있기에 본 것만 믿으며 살아간다. 결국 나, 당신, 그리고 아무개는 모두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될 뿐이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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