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3) 툴루즈 로트렉展 [디자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글 입력 2019.12.2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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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展
- Henri de Toulouse-Lautrec -


툴루즈 로트렉전 포스터.jpg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전시 소개>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jpg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회가 2020년 1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9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은 국내에서 선보이는 로트렉의 첫 번째 단독전으로,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헤라클레이돈 미술관(Herakleidon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1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전시작품 모두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나 19세기말의 시대를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Moulin Rouge, La Goulue.jpg

Moulin Rouge, La Goulue






<툴루즈 로트렉>

 

로트렉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은 없었을 것이다.


-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1871년, 보불전쟁(Franco-Preussen War)이 끝나고 프랑스에는 모처럼의 평화와 풍요가 찾아온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는 '벨 에포크'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파리에는 산업과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Eiffel Tower)이 세워지고, 최초의 파리 지하철이 개통됐다. 무엇보다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예술 분야는 미술이었다.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 유럽 각국의 화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었고, 예술 표현이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다양한 서양미술 사조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했고, 활짝 꽃을 피웠다. 그들 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등 서양미술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이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 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At the Moulin Rouge.jpg

At the Moulin Rouge


 
1889년, 몽마르트에 댄스홀 물랭 루즈(Moulin Rouge)가 오픈했다. 물랭 루즈는 열자 마자 바로 파리의 명소가 되었고,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었다. 물랭 루즈의 개업은 로트렉의 작품세계가 큰 변혁을 맞는 계기가 된다. 로트렉에게 이 물랭 루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아뜰리에였고 그곳에서 펼쳐진 공연들과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로트렉은 지정석을 두고 매일 밤 이 물랭 루즈를 드나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림에 담았다. 로트렉에게 그림은 매일매일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장과도 같았다. 로트렉은 사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과 빠른 손놀림으로 그가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1891년 가을, 로트렉이 제작한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는 로트렉을 일약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로트렉은 지금까지의 18세기적 포스터를 개념이 전혀 다른 대담한 표현과 기법으로 20세기적 그래픽으로 바꿔 놓았다. 이 포스터를 계기로 석판화(Lithography) 기법을 이용한 걸작 포스터와 판화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로트렉은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거대한 저택에서 자란 로트렉은 가족, 하인, 가축, 사냥 장면 등을 끊임없이 그리면서, 대상의 형태나 움직임을 정확히 관찰하고 그 특징을 포착해 내는 능력을 길렀다. 일부 동물 그림을 제외하면 평생에 걸쳐 그가 집중한 대상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림의 모델은 모두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림 속에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 있어, 그의 모든 작품이 그와 삶을 같이 한 사람들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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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le Lender Dancing The Bolero in Chilperic



특히, 카바레의 댄서와 가수, 매춘부와 서커스 단원의 모습 뒤에 가려진 인간적 비애를 그만의 미적 감각으로 표현하였다. 배우들과 댄서들의 생활에 지친 모습에 연민을 느꼈으며, 술집 손님들의 허식과 무지를 꿰뚫어 보았고 그들의 성격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그의 작품은 흥겹고 명쾌하며 독특하면서도 독창적이었다. 또한 로트렉은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벽을 허물어버린 최초의 작가였다.

툴루즈 로트렉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와 비평가들의 인정도 받았다. 1883년에 첫 번째 그룹전에 참여한 이래 파리와 브뤼셀, 런던의 주요 전시들에 여러 차례 작품을 선보였고, 테오 반 고흐 등의 화상을 통해 그림 거래도 활발하게 했다. 그러나 불규칙한 생활, 과음, 매춘부들과의 무분별한 교제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고, 1890년대 말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착란 증상과 기행이 심해져 1899년에는 몇 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퇴원 후에도 작업을 계속하기는 했으나, 1901년에는 몸의 마비 증상까지와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실려 가서 37세가 채 못 되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했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통계에 의하면, 캔버스 유화 737점, 수채화 275점, 판화와 포스터 369점, 드로잉 4,784점이나 된다.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jpg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툴루즈 로트렉展
- Henri de Toulouse-Lautrec -


일자 : 2020.01.14 ~ 2020.05.0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최
현대씨스퀘어
 
주관: 메이드인뷰, 한솔BBK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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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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