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알란처럼 살거야 [공연]

글 입력 2019.12.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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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다!!'


연극 시작부터 끝까지 든 생각이었다. 수많은 역할을 단 5명이서 소화해내기 때문에 역할을 수행해내는 배우도, 그걸 지켜보는 관객도 피로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 피로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이내 깨닫고 말았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메인포스터A1.jpg

 

 


1. 이름표 변경



이 연극의 특징은 '캐릭터 저글링'이다. 서커스에서 공 여러 개를 들고 동시에 돌리는 저글링처럼 연극 내에서도 등장인물은 쉴 새 없이 교체된다. 이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름표'. 배우는 몸에 이름표를 부착하여 해당 역할을 소화해내는데 사람은 물론이요. 동물까지 표현한다.


이름표를 바꿀 때도 단순히 주머니에서 꺼내 부착하는 것이 아니다. 서랍을 열었더니 이름표가 나오고, 기둥 뒤로 한 바퀴 돌고 나서 이름표가 바뀌는 등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거나, 몸을 한 바퀴 턴하면서 부착하는 듯 특유의 동작도 함께한다. 역할이 바뀐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인지시켜준다.


역할에 비해 배우가 적기 때문에 '캐릭터 저글링'이라는 기법은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한 장면에 5명을 넘기는, 6명 이상의 역할이 나올 때는 어떻게 할까?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문제점을 해결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경찰견의 등장이다. 발에 목줄을 걸어두고 키키라는 이름표를 달아 키키임을 알려주었다. 한쪽 발만 따로 움직이며 한 사람이 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언급했듯이 이름이 바뀜을 알려주는 특유의 동작을 반복하며 열심히 2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를 어필한다.


 

7. 핫도그 장수 베너, 좀도둑 율리우스, 농가주인 구닐라, 코끼리 소냐와 행복한 시간.jpg

 

 

쉴 새 없이 역할이 바뀌며 배우들도 관객들도 정신없어진다. 그럼에도 배우와 하나 되어 역할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2. 알란의 역할과 사상



극의 주인공 '알란'은 100세 생일에 요양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조직의 돈이 든 캐리어를 가져간 시점부터 그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극은 전개된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어릴 적 사회주의를 동경해 떠난 아버지와 그를 원망하며 아들을 돌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자랐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스페인, 러시아, 프랑스, 발리 등을 거쳐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알란은 혼란함에 휩싸여 있던 1차 세계대전 시기를 거치며 폭탄제조자로서 삶을 살아갔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겪으면서도 알란은 어느 사상으로도 치우치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일했을 뿐이었다. 그저 편히 쉴 수 있는 집과 음식, 술,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국가와 사상에 물들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결같이 욕심이 없었고 긍정적이었다. 100세여 행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진정으로 그들을 아끼며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불평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 행동이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정말 처음에는 불행하다 생각했건 일들이 나중에 행운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알란의 느긋하면서 흔들이지 않는 뿌리 깊은 가치관은 정말 닮고 싶다.


 

15. 다시 스웨덴으로, 길 잃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듣다.jpg

 


78세, 알란이 스웨덴으로 돌아오고서 7년이 흘러 85세가 되던 해였다. 작은 고양이가 갑작스레 찾아왔다. 쫒아내고 밀어내도 어떻게 찾아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고양이에게 마음을 열고 정을 주기 시작하고 '몰로토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고양이는 알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함께 놀고 자고 살아가면서 그동안 살았던 인생을 정리하고 추억했다.


여우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오랜 세월 여러 나라를 거치며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살아왔던 그였기에 나이 들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을 슬픔으로 떠나보냈다. 그때 찾아온 몰로토프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진정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예고도 없이 떠나보내게 된 그는 슬픔보다 분노에 휩싸여 숨겨둔 폭약을 모두 터뜨려 날려버렸다. 그렇게 양로원으로 향했다.



1. 100살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100세 노인.jpg

 


그는 양로원으로 가서 억압되고 제한된 삶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알란은 평생을 자유롭게 살아왔다. 여러 나라를 거치며 친구를 만들었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100세 생일에. 이제는 알 수 있다. 창문 너머에 무엇이 있었는지.

 

 


3. 관객과의 소통



극은 보통 연극과는 다르게 대사로 상황을 추측하도록 하지 않는다. 배우가 직접 관객을 바라보며 상황을 설명해주고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간간이 역할에 맞는 소통을 관객에게 시도한다. 그렇게 관객은 배우와 소통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5명이 수많은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 자칫하다 흐름을 놓칠 수가 있다.


감사하게도 무대에 지금 장면이 어느 국가에 어느 시간인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장소를 옮길 때나 역할을 바꿀 때 등등 변화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능청스럽게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 또한 재미 요소이다.


 

8. 유리소비치 포포프와 운명적 만남.jpg

 


국가를 이동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전통춤이 나온다. 국가를 이동할 때 즈음 서서히 배우들은 중앙으로 모이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나라에 그저 머물고 간 것이 아니라 전통을 느낄 정도로 알란이 그 나라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건으로 그 나라를 기억하는 것도 있지만 '전통춤'은 무엇보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4. 마치며


 

연극은 내게 있어 생소한 분야이다. 책을 읽을 대는 문장을, 영화를 볼 때는 촬영기법이나 음악 등에 중점을 두고 보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연극은 실시가능로 배우와 소통하고, 조명과 음악이 함께하는 복합적이고 순발력이 필요한 예술 분야라 느껴진다. 하나에 중점을 두지 말고 동시 여러 부분을 음미해야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배우가 여러 역할을 단지 이름표만 가지고 표현하였고, 역할에 있어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주인공 알란이 5명인데 각기 다른 알란이었던 것처럼.

 

알란은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나, 어떤 목적을 두고 살아가고 있나. 일이 꼬일 때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었나. 아득바득 참고 참으며 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처음 연극이 시작할 때는 그저 양로원이 답답해서 탈출했다고 생각했다. 극이 진행되면서 알란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고 그의 인생을 바라보니 그 좁은 양로원이 그에게 얼마나 가혹했을까 싶었다. 자유롭고 패기 넘치던 그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억압을 하였으니.


 

18. 다시 창문을 넘기로 하다!.jpg

 

 

알란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불과 20년 좀 넘게 살면서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야 잘 몰랐고 생각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이제 어렴풋이 가이드라인은 만들었다.

 

알란처럼 살고 싶다.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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