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만난 치인트, 처음 마주하는 것들 [웹툰]

글 입력 2019.12.2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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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치즈인더트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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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7일은 내가 처음으로 웹툰 <치즈인더트랩>(치인트)을 만난 날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많은 게 변했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어느덧 대학교까지 졸업하게 되었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치인트>가 7년에 걸친 연재를 완결 냈으며, 작년 말에 시작한 재연재마저 끝을 맺었다.

 

나는 <치즈인더트랩>을 정말 많이 사랑했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웹툰을 봤지만, 이렇게까지 감정 이입한 웹툰은 몇 편 없었다. 웹툰을 보지 않는 순간에도 홍설과 유정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이 작품을 앓았다.

 

하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는 법. 2017년 3월, 최종화가 올라온 이후 웹툰에 대한 나의 사랑도 과거형이 되었다. (독자들이 이름 붙인) ‘로맨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만화,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많았던 만화,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이 깊었던 만화, 내가 정말 사랑했던,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만화로 그 자리에 멈춰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었다.

 

그렇게 완전히 잊고 지내던 중 연재 웹툰란에 버젓이 떠오른 <치즈인더트랩>의 썸네일을 보고 매우 놀랐다. 처음엔 조금 떨떠름했다. '이미 다 본 작품인데, 완결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챙겨보는 게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재 당시보다도 더 열심히 다음 화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했다.

 

세상에 ‘이미 다 본’ 작품은 없다. 작품은 그대로지만, 그것을 향유하는 내가 매 순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품과 나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놓쳤던 부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꽤 짜릿한 일이다. 그 짜릿함이 곧 ‘재탕’의 원동력일 것이다.

 

<치즈인더트랩> 역시 그랬다. <치인트>는 놓쳤던 부분을 발견하는 수준을 넘어 내가 이 작품을 끝까지 본 게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되어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다시 만난 <치인트>에는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홍설


 

네이버 웹툰 <치즈인더트랩>은 평범한 여대생 홍설과 완벽한 선배 유정을 중심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남녀 주인공이 연인 사이인 로맨스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웹툰에는 스릴러 특유의 서늘함과 긴장감이 감돈다. 가장 큰 인기 요인이기도 한 <치인트>만의 독특한 서늘함과 긴장감은 대부분 베일에 싸인 유정으로부터 나온다.

 

유정은 재력, 외모, 성적까지 모두 갖춘 인간으로 큰 씀씀이 덕분에 학교의 모든 사람에게 두터운 신임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완벽함은 철저하게 구축된 위선일 뿐이다. 그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자신 기준에서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겐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손을 써 배로 앙금을 갚는, 조금 뒤틀린 내면을 가진 인물이다.

 

나는 웹툰이 차지한 독보적인 위치에 유정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완벽함을 앞세워 교묘하게 감춰진 그의 뒤틀린 내면은 작품의 정체성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웹툰을 끝까지 본 것도 유정의 실체가 궁금하다는 이유가 컸다. 그 과정에서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홍설은 유정의 상대역으로만 인식되었다. 그런데 다시 본 <치인트>에서 내 눈에 가장 빛나는 건 유정이 아닌 홍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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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설은 학교에서 유일하게 유정의 속내를 파악하는 인물이다. 다시 봐도 홍설의 눈치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홍설이 유정의 다른 면모를 포착하는 순간은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정도로 사소하고 일상적이다. 모든 인간관계를 손아귀에 쥔 채 아무에게도 속내를 들키지 않고 살아가던 유정에게 홍설은 가장 이질적인 인물이자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된다.

 

물론 눈치가 빠르다는 이유로 홍설을 특별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애초에 사람들은 유정의 내면 따위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자신에게 이득을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유정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더 쉽게 사람들을 조종한다.

 

홍설이 진짜 특별한 이유는 사람을 도구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홍설에게 유정이 지닌 완벽함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며, 그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작품을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랐다. 학창 시절의 인간관계는 몹시 단순했다. 좁은 교실 속 아이들이 인간관계의 다였으며 좋으면 좋고, 싫으면 밀어낼 뿐이었다. 물론 친구와 싸울 때, 사소한 일로 서운할 땐 온종일 우울했지만, 웹툰처럼 복잡한 계산이나 위선의 가면이 필요하진 않았다.

 

학창 시절의 인간관계가 단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아이의 조건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도 학교명과 반이 전부였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마주한 인간관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학교 외에도 아르바이트, 대외활동, 스터디 등 다양한 경로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경로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모두 달랐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심보다 조건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내 인생에서 나타나고 사라졌다. 처음엔 진심으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 상대방과 아무 잘못 없이 연락이 두절되는 게 참 슬프고 허무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이름이 아닌 소속으로 저장된 번호가 많아지면서 점점 관계에 대해 초연해졌다. 그들의 인생에 내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나 역시 그들을 사람 그 자체가 아닌 소속과 조건으로만 바라보았으니까.

 

보통 사람의 관계도 이러한데 유정은 오죽할까. 유정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지녔다. 그리고 유정을 주목하고 떠받드는 수많은 사람 중 그의 진심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홍설 외에는 말이다. 초반부 유정은 홍설의 예민함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고 홍설에게 강한 적의를 느낀다. 그러나 유정은 결국 그런 홍설에 의해 구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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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홍설은 1년 휴학한 대학교 3학년으로 23살이다. 연재 당시엔 홍설의 자세한 나이를 파악하지 않았었다. 중학생인 나에게 홍설은 그저 까마득한 대학생 언니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 홍설의 나이를 지나온 지금에야 그녀가 얼마나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지 실감한다.

 

홍설의 대학생활은 현실적이면서 극적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스토킹을 당하기도 하고, 집에 강도가 들기도 한다. 게다가 주변 상황도 평탄하지 않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의무가 된 장학금은 버겁고, 남동생과의 차별 대우는 서럽고, 보장되지 않은 미래는 불안하다.

 

홍설도 사람이다. 그녀 역시 보통 사람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을 때 매우 놀라고,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거기에 밀려드는 유정의 호의를 못 이기는 척 받기도 한다. 주변과 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특별하다. 비관할지언정 포기하진 않으며, 노력으로 성취하려는 삶의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유정의 화려한 조건에 관심이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홍설을 지탱하는 건 생각하는 힘이다. 웹툰에 나오는 홍설의 독백은 따로 모아 책으로 내도 될 정도로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홍설은 절망적인 상황이 닥칠 때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냉정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를 보면 어떤 일이 닥치든 ‘그래도 홍설이니까’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대학 생활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난 홍설은 더 이상 까마득한 언니가 아니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공유한 친구였다. 학점, 스펙, 생활비, 인간관계 등 그녀가 겪는 고민 중 어느 것 하나 공감되지 않는 게 없었다. 홍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에 그녀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유정과 백인호


 

웹툰에서 홍설은 유정과 백인호,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 만약 <치즈인더트랩>이 전형적인 로맨스 만화였다면 유정과 백인호의 사이는 연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웹툰은 그런 뻔한 삼각관계에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홍설은 백인호에게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으며백인호 역시 홍설을 좋아하기만 할 뿐, 쟁취하고자 하는 욕심은 전혀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는 유정과 백인호, 두 사람의 관계를 삼각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다.

 

백인호는 등장부터 유정에 대한 강한 적대심을 드러낸다. 서울에 온 목적도 유정에게 복수하기 위함이며 유정과 마주할 때마다 분노를 참지 못한다. 이는 유정도 마찬가지다. 홍설이 백인호를 처음 언급한 순간부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백인호를 마주할 때도 조금 더 차분할 뿐 그 역시 부정적인 말만을 내뱉는다.

 

다시 만난 <치인트>에서도 둘의 사이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둘 사이의 감정의 골은 너무나 깊어서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백인호 앞에서 홍설보다도 솔직해지는 유정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이가 좋았던 고등학교 시절, 둘은 서로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정의 뒤틀린 면모가 형성된 데에는 유정의 아버지 유 회장의 영향이 크다. 유 회장은 제 아들을 이상하다고 낙인찍고 자신이 원치 않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억압하는 방법으로 그를 교육했다. 유정이 사람에게 일말의 기대도 품지 않는 것도, 자신의 진심을 알아준 홍설에게 마음을 내준 것도 유 회장의 억압이 낳은 결과다.

 

유 회장에게 후원받으면서 유정과 어울리게 된 백인하와 백인호, 두 남매는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유 회장은 어린 그들을 이용해 아들을 감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려 했다. 그 의도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유정이었다. 유정에게도 백 남매는 아버지가 이용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이상하다’라는 말을 백인호가 부정한 순간, 유정은 처음으로 타인에게 가식 없는 웃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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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재되는 작품이다 보니 처음처럼 유정의 실체를 궁금해하면서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실 애초에 실체 같은 건 없었다. 유정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많이 예민하고 똑똑했을 뿐, 이상하다고 규정지을 만한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 건 유정의 조건만을 보는 사람들과 유 회장이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백인호는 홍설처럼 유정을 사람 자체로 바라본 친구였다. 백인호는 진심으로 유정을 좋아했다. 그 역시 유정의 뒤틀린 면모를 파악했지만, 그것을 이상하다고 규정짓지 않고 가족으로서 마땅히 품어줘야 할 부분으로 여겼다.

 

그렇다. 백인호에게 유정은 친구를 넘어 가족이었다. 고모의 학대 속에서 자란 백 남매는 정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유 회장이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는 너무나 순진하게도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유정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진심으로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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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화로 백인호에게 마음의 문을 연 유정은 그날 저녁 농구 하면서 백 남매에게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진심 어린 미소를 짓는다. 둘의 사이가 가장 좋았던 농구 장면은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백인하 역시 그때를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얼마 안 가 유 회장의 욕심으로 둘의 사이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펐다.

 

예전의 나는 왜 유정과 백인호 간의 서사를 외면했을까. 기나긴 갈등의 원인이 드디어 나왔을 때 왜 함부로 시답지도 않은 거로 싸웠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유 회장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유정을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유정의 속내가 서서히 드러나는데도 그를 끝까지 의심했다. 결말을 알고 다시 읽으니 이렇게까지 진심을 내비쳤는데도 유정에게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게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백인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를 유정과 대립하고 홍설을 짝사랑하는 만화의 서브 캐릭터로만 바라보았었다. 다시 만난 백인호는 그저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정 많고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야 백인호를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아닌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백인호에 대한 감정이 바뀌자 홍설과 백인호의 관계도 다르게 보였다. 보통 짝사랑하는 서브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하지 않는 의상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다. 앙숙으로 시작한 둘은 절친한 친구였으며 백인호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가족이었다. 이제 나는 처음 연재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둘의 이별 장면이 주는 뭉클함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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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유정이 울면서 설이에게 ‘이젠 내가 싫어?’라고 묻는 장면도 그럴 것이다. 유정 역시 백인호처럼 이제야 진심으로 사람으로서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성장


 

<치즈인더트랩>은 그림체, 스토리, 연출 모든 부분에 있어서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이 웹툰을 명작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소름 돋게 현실적이면서 입체적인 수많은 인물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애정을 강요하는 오영곤, 피해 의식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타인을 따라 하기만 하는 손민수, 자신의 잘못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기만 하는 김상철, 우월감에 젖어 함부로 타인을 무시하는 남주연 등 웹툰에는 부정적인 인간상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이 대명사로 불리며 (특히 손민수) 사람들의 거센 분노를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상상 속 악마가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둔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연재 웹툰 댓글란에는 대학교에 입학하니 김상철과 오영곤 등과 같은 사람만 있더라는 말이 가득했다. 인간의 내면 밑바닥에 있는 추악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치즈인더트랩>의 인간관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치인트>의 몇몇 인간들은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성장하기도 한다.

 

웹툰의 주요 인물인 홍설, 유정, 백인호 모두 긴 우여곡절 끝에 자신만의 성장을 이룬다. 모든 감정을 참아냈던 홍설은 가장 좋은 날 당당하게 눈물을 터트리고, 유정은 설계 대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게 됐으며, 백인호는 피해 의식과 분노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웹툰은 홍설의 졸업식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처음 최종화가 올라왔을 당시 내게 졸업은 아직 한참 먼 날의 일이었다. 그런데 2019년 12월 18일, 두 번째 최종화가 올라왔을 때는 공교롭게도 나 역시 설이와 비슷하게 마지막 학기를 갓 마친 상태였다.

 

 

이 모든 걸 여러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인간상을 만들어가라는 거죠. 그러면서 성숙해지는 겁니다. 지식이든 인간관계든 모든 측면에서 부딪쳐보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익혀나가면 됩니다. 당장 완벽해질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나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겁니다.

 

<치즈인더트랩> 4부 75화 치즈인더트랩(1) 중에서


 

성장한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긴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깨닫고 변화하였다. 다시 만난 <치인트>에서 처음 마주한 모든 것들이 내 성장의 증거였다. 나는 이제 관계와 사람을, 그리고 나를 예전보다 성숙한 태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인생에서 완벽한 성장은 없다. 나는 죽을 때까지 미성숙할 것이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내가 다르듯이 미래에 읽을 <치인트>와 지금 읽은 <치인트>도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내 마음 속 <치즈인더트랩>은 평생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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