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눈을 감는 날, 내 생의 마지막에 듣고 싶은 노래 [음악]

엄정화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과 가인 ‘카니발(Carnival)’
글 입력 2019.12.1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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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것에, 생의 ‘마지막’이라는 것에,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표현된 색은 매번 어두웠다. 그 전엔 당연지사라고 느꼈지만 지금 소개할 두 곡을 만난 이후, 내 생각은 달라졌다.


끝이라는 것에 대한 밝은 느낌, 동시에 한 켠에 담긴 ‘시원섭섭함‘. 발매가 되고 처음 뮤직비디오를 접하자마자 생각했다. 두 눈을 감는 날, 내 귀에 들렸으면, 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들렸으면 한다고.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 (Ending Credit)’



 

 

이 노래는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레트로 신스팝 장르다. 인생(또는 사랑)의 화려했던, 아름다웠던 순간이 지나가고 그때를 회상하는 화자의 쓸쓸한 모습을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 빗대어 표현한 가사가 이 곡의 포인트다. (곡 설명 中)


 

한 편의 영화 주인공 같던 난 이젠 없어

아름다웠던 순간

눈이 부시던 조명들

영원할 것 같던 스토리

수많았던 NG 속 행복했던 시간

 

너와 나의 영화는 끝났고

관객은 하나둘 퇴장하고

너와 나의 크레딧만 남아서

위로 저 위로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어렸을 때는 이 말이 그리 다가오지 않았다. 딱히 인생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 문장은 곱씹어 볼수록 마음을 울린다. 새벽 감성이면 더욱이. 이 모든 감정, 일, 인연, 경험은 ‘죽음’이라는 결론을 향해가는 영화를 찍는 와중에 만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제 3자의 입장이 된 듯, 무게감이 덜해지는 것만 같다.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정도면 꽤 많은 씬을 찍은 것 같다고, ‘컷’이라는 단어가 어서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감독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컷은 쉽게 떨어지지 않나 보다. 연기력이 좀 부족한가? 내가 주인공이자 때론 조연이었던 이 영화 안의 2019년 12월 16일의 나는, 글을 쓰는 에디터라는 씬을 채우고 있는 중이리라.


러닝타임이 얼마 정도일지도 가늠이 안 되는, 인생이라는 한 편의 영화의 장면에는, 모든 드라마와 영화가 그렇듯 희로애락이 담긴다. 미친 듯, 역겹게, 하늘 무너진 듯, 배 아프게,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듯, 세상에 없는 존재인 듯, 심각하리만큼 계속되는 NG 컷인 것도, 발연기, 명연기 같은 것에도 여전히 필름은 채워지고 있다. 


뭐 이런 것까지 찍는담, 하며 엄청 열혈 감독이시네 생각하는 편을 택해본다. 나의 엔딩, 그 끝의 엔딩 크레딧은 어떨지 궁금 반 기대 반. 노래는 어쩐지 쓸쓸하다. 열심히 숨 쉰 나와 그대들에게 수고했다 말하며 그동안의 기억을 회상하는 나를 기다려주는 느낌이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추억만을 읊조리는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은 듣는 이에게 평안함과 슬며시 피어나는 미소를 선물한다.



엄정화.jpg

 

 


가인의 ‘Carnival (The Last Day)’





 

완벽한 사랑은 무엇일까. 나 없이도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것,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불꽃처럼 태워버리고 그 자체로 존재했었다는 사실만 남기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곡 설명 中)

 

 

제일 환한 불꽃이 되어 춤추다

마치 꿈인 듯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다 완벽할 것 같은데


나는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난 그대를 떠나요

걱정 마 울지 마요

어제와 같은 밤일뿐인데



노래는 죽음을 Carnival, 즉 축제로 표현한다. 내가 당신 곁에 있었다는 것은 한밤의 축제처럼, 불꽃같이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고, 그저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만 알아 달라. 그거면 됐다고 안심시키고 웃으며 떠나는 것. 미련하리만큼 남은 이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더욱더 감동적이며 힘을 준다.


죽음 앞에 무뎌지고, 익숙해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가슴에 묻고 사는 거라더라. 그런 아픔을 가진 모든 이들의 꿈속에 그(녀)가 나와, 즐겁게 춤추며 웃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노래이며 뮤직비디오 속 가인의 모습이 그를 실현화하니,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면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 그 자체’, ‘살아있음’의 그 가치는 살아 숨 쉴 때는 모른다. 살아있는 것은 당연하니 그 이후의 것들에 목을 맨다. 씩씩하길, 다부지길, 행복하길, 공부를 잘하길, 효도하길, 번듯한 직장을 갖길 등 의무 또는 바라는 것들의 총체로 ‘그 자체’의 소중함을 매몰해 버리곤 한다. 살아있는 것, 그것이 시작이 되어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길.


뮤직비디오 후반부의 폭죽놀이 씬은 참 멋지다. 당신들과 함께한 순간은 축제였고, 내 삶 역시, 어둠 - 폭죽의 피어오름 - 폭죽의 터짐 – 황홀함 - 가득한 연기 같은 수많은 연속과 과정의 일들이자, 내가 그곳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 충분히 아름다웠던 나 자체를 기억하며 긴 잠에 들기 전, 모든 것을 토해내는 장면 같아 사진과 함께 남긴다.


 

가인1.jpg


가인2.jpg

 

 

두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는 멋진 색감을 사용해 눈을 즐겁게 하는 한편, 스토리까지 겸비해 보는 이를 흡수시키는 마력을 가졌다. 함께 감상하며, 한 편의 멋진 단편영화를 느끼고 오길.

 

당신 곁의 소중한 사람이었던 그이의 긴 잠엔 위로를, 그와 함께했던 당신에게는 그때의 모든 것이 충분히 아름다웠음을 글과 노래로 전한다. 그리고 언젠간, 두 눈을 감는 그 날의 나에게도 잔잔한 끄덕거림을 선물하는 바이다.

 

 

[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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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 이 글을 만나게 될 분들께

      안녕하세요. 컬처리스트 서지유입니다.
      1년도 더 지난 글이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글입니다.

      되도록 많은 분들이 보고 조금이나마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피드백 글로 선택하고 이렇게 댓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서투른 솜씨로 제목 사진을 꾸미고 헤드라인에 걸리기 바랐던 글 작성 당시가 생각나네요 ㅎㅎ

      인생에 문득 문득 생각이 많은 저에게
      두 음악은 '별거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여전히 제게 감동을 줍니다.

      일부러 일어나라고 재촉하거나, 좀 더 멋져져서 너라는 영화의 '최고'의 주인공이 되라 말하는 게 아니라,
      저라는 사람, 있는 그 자체를 존중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분을 그냥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충분했고, 나 다웠고, 그저 존재했고, 행복했으며 좋았노라고.

      바쁜 나날 속, 오늘을 열심히 숨 쉰 여러분의 스토리를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애틋하고 가슴 저리면서도 미소를 선물하는 음악을 들으며 치유하시길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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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지애
    • 안녕하세요! 에디터 문지애입니다.

      우리는 죽음보다 삶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삶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을 생각하지도 그 이후를 깊게 고민하지도 않는 것 같고요.
      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어쩌면 ‘나’를 제대로 보기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엔딩 크레딧’ 인생이라는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나는 주연일지, 감독일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일지.
      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나인데
      시나리오를 볼 수도 대본을 읽을 수도 없으니 그저 무력하기만 합니다.
      극장에 상영하는 영화와 달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NG까지 채우는 탓에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카니발’ 하지만 “나는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라는 가사를 보니,
      나의 가장 멋진 순간만을 기억했으면 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바람 때문에 나를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그 작은 부분들까지 나를 이루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죠.
      무엇보다 나는 그 자체로 충분했고 아름다웠으니까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위로와 응원 덕분에 마음이 따듯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좋은 글을 향유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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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7 0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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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지애무력한대로, 두려운 대로, 기쁜 대로.
      지애님의 생각과 감정이 자연스레 솟아난 방향,
      그 어느 곳이든 어떤 모습이든,
      지애님만의 것일 테니,

      아마 개성 있는 영화일 거에요.

      시간 내어 향유해주고, 답글 써주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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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
    • 안녕하세요. 아트인사이트 전문필진 염승희입니다.

      지유님의 글을 읽으며 '나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잠시나마 빠져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그리고 삶이 다할 때 듣고 싶은 노래로 꼽아주신 두 곡도 가사를 곱씹으며 몇 차례 뮤직비디오를 감상하였습니다. 지유님 생각을 어렴풋이 알고 들어서인지, 삶과 죽음이 가미되어서인지 슬프면서 아름다운 감상을 받았어요.

      사실 우리 일상에서도 한 발 뒤에서 바라보면 그렇게까지 연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말이죠. 물론 한창 그 감정에 뒤섞여버린 순간이라면 워낙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체로 그 '사건'이 어느정도로 해결된 후에서야 비로소 빠져나와 돌이켜볼 여유가 생기곤 한다지만요.

      '삶'을 하나의 큰 '사건'이자 지유님이 표현한 '영화'라고 놓고, 그 시작과 끝에 삶의 처음과 마지막을 둔다면,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본다면, 정말 하나하나에 목 메일 일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래에서 담담하게 '추억만을 읊조리는' 엄정화처럼 말이죠.

      문득, 그렇게 눈 앞의 것과 분리되어, 삶의 조각진 모습을 바라보고 난 뒤에야, 진짜로 매 순간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카니발' 뮤직비디오 속 가인이 그랬듯, 그저 나 자체로 충분한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요.

      영화며 축제인 내 삶은 화려한 모습과 더불어 그 전후의 고요와 심연도 안고 가는 것이겠죠. 그 모든 과정에 살아 숨쉬는 내가 있었기에 아름다웠다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지유님의 글 덕분에 오늘 하루, 삶의 부담을 조금 내리고 '나'라는 사람에 집중해보네요.

      P.S. 저도 지유님 글을 조금 찾아보았는데요, 진솔한 문장으로 써내려가는 마음의 목소리에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 덜컥 바다를 보러 떠나 가만가만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토닥인 일이나, 내가 날 좋아하는 이유를 시시콜콜 나열하는 모습, 지나친 의미부여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는 문장 등에서 제가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하는 모양과 어딘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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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7 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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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감상의 조각들을 흩뿌려놓은 글인데,
      그 감정을 고스란히 맞추어 낸 글을 보게 되니 신기하네요.

      '눈 앞의 것과 분리되어 바라보았을 때,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맞아요!!
      그 이유 때문에, 제가 노랠 듣고 행복한 감정을 느꼈나 봅니다.
      저는 자유할때 행복한 사람인가 봐요. 그리고 그 감정을 나눌 때도요.

      승희님이 향유한 시간이, 제게 좋은 반향이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던, 떠다니던 감정을 자리 잡게 해준 피드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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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__oy
    • 안녕하세요. 에디터 안지영입니다.

      최근에 예능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마지막 무대에서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정말 즐겨 듣던 곡인데 이렇게 또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올라가는 엔딩, ‘엔딩 크레딧’에 빗대어 표현한 가사와 함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이고 글을 쓰신 그 당시를 또다시 영화 속 장면처럼 표현한 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나의 하루를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또 다양한 장르가 있을까요?

      죽음, 생의 ‘마지막’이라는 말은 더없이 슬프게 느껴지지만 엔딩 크레딧과 카니발의 가사처럼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나와 내 삶이 아름다웠다고 느낄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찍고 있는 한 편의 영화와 영원히 기억될 축제의 순간을 남기고 싶어요.

      요즘은 바로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은 글을 읽을 때 행복을 느낀답니다. 이렇게 좋은 글과 음악을 소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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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
    • 2021.01.17 18: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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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__oy지영님의 긍정이 저에게까지 느껴집니다.
      노래 참 좋죠ㅎㅎ
      글과 감상으로 다시 한번 기쁨을 느끼셨다니, 뿌듯하네요.

      '그저 존재했고 좋았노라'는 감정에 온전히 흠뻑 젖어계신 지영님의 지금이
      좋은 기억과 씬으로 남길 바라요.

      시간 내 향유하고, 답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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