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를 받아주는 건 지하철 뿐이야 "지하철 1호선"

글 입력 2019.12.1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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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온 선녀가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한다.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소극장이라 스피커 가까이 앉으면 귀가 아플 수 있다. 대신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잘 보여 좋다. 약혼자 제비를 찾기 위해 서울로 온 선녀는 행방이 묘연한 제비를 찾아 청량리 588로 향한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지저분한 사람들이 모이는 청량리 588. 연고 없이 서울에 떨어진 선녀를 청량리 588사람들만이 골치 아파하면서도 챙겨준다.

 

사창가의 창녀들을 관리하는 철수 삼촌과 창녀 걸레, 걸레가 사랑하는 안경 씨, 곰보 할매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블랙 코미디 우화에 나올 법하다. 제비를 찾아 남쪽 나라로 온 선녀는 갖은 고난을 겪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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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시정잡배들이 활개 치는 서울은 고달프기만 하다.


이야기는 제비를 찾는 선녀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중간중간 지하철 속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는 노래가 참 재밌다. 전철은 잡상인, 종교인, 자해공갈, 보험판매인, 만취한 사람들로 조용할 틈이 없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각자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암울한 선녀 이야기를 환기하는 요소이다.

 

가장 좋았던 건 명품 속옷을 사기 위해 전철을 탄 강남 과부들의 장면이다. 전철같이 지저분한 대중교통을 탈 일 없는 이 사모님들은 기세 좋게 전철에서 노래를 부른다. 자신들이 빨갱이 적출과 땅 투기로 어떻게 돈과 명예를 얻었는지. 선녀나 걸레의 삶과는 대조되는 강남 과부들의 당당함이 우스우면서도 서울의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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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는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만난 제비도 선녀를 잊었다. 기댈 곳이 없어진 선녀와 안경 씨는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쓸쓸한 장례식에서 노숙자 둘은 소주를 먹다 막차를 놓칠 뻔 한다. 막차를 탈까 말까 고민하던 둘은 뛰어가면서 말한다. '빨리 가자, 우리를 받아주는 건 지하철밖에 없어.'

 

*

 

지하철 (특히나 1호선)을 타고 통근하다 보면 온갖 별나고 괴상한 사람들을 다 만난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 눈에는 피하고 싶고, 무섭기도 하다. 시민들을 위해 전철이 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은 전철이 노숙자, 부랑자들, 사회에서 벗어난 삶들이 '일반' 시민들과 부대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고도 할 수 있다.


재개발과 도시재생, 더 청렴하고 깨끗한 서울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선언은 이런 빈민들이 제멋대로 몸 누일 곳을 없애겠다는 말과 같다. 공원 벤치는 노숙인을 좇기 위해 철 막대를 끼운 벤치로 바뀌고 있다. 공공장소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공공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청량리 588의 집창촌은 삼 년 전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재개발 과정에서 성매매 종사자들은 반발했다. 뚜렷한 지원책 없이 이뤄진 재개발은 빈곤한 여성들을 더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1998년의 서울역과 지금의 서울역 역시 다르다. 외국인 방문객이 많아지고 기차역을 재정비하면서 코레일은 2011년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들을 강제 퇴거하기 시작했다. 민원과 서울역 이미지를 위한 조치였다.  그 많은 노숙인은 뿔뿔이 흩어져 숙대입구역이나 영등포역 등으로 옮겨갔다.

 

전철의 잡상인 역시 <지하철 1호선>에서 나온 만큼 빈번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잡상인이 나타나면 기장이 방송으로 경고한다. 자해공갈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1998년에서 2019년까지 21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다. 이렇게 거칠고 지저분하며 개성 넘치는 사람들은 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 걸까? 빈곤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소주를 훔쳐 먹을만한 장소가 아직 있을까? 가난한 자들을 위한 공공장소가 남아 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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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 -


일자 : 2019.10.29 ~ 2020.01.04

시간

화~금 19시 30분

토 14시, 18시 30분

일 15시

 

*

월 공연없음

12/25 (수) 14시, 18시 30분


장소 :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기획/제작
학전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70분
(인터미션 : 15분)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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