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빛을 비추는 거울, 여성 서사 영화 [영화]

용기가 필요할 때 꺼내보는 여성 서사 영화 세 편
글 입력 2019.12.1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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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계에서 ‘영혼 보내기’라는 새로운 응원문화가 등장했다. 이는 영화표를 구매는 했지만, 극장을 찾지 않는 행위로 일종의 소비장려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몸은 극장 밖에 있지만 마음은 영화에 보탬으로써 영화가 흥행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 보내기의 가장 큰 특징은 <걸캅스>, <미쓰백>, <벌새>,  <82년생 김지영> 등 여성이 제작했거나 여성의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에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남성중심적 영화계는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여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많은 여성들이 이처럼 무비판적으로 만들어지는 기존의 영화들에 반기를 들며 여성 서사 영화를 향한 갈증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 서사 영화는 개인에게는 용기와 각성을 주며, 동시에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성 서사 영화를 찾는 능동적인 문화 소비자들을 위해 웰 메이드 영화 세 편을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추천하려 한다.


 

 

델마와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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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미국 | 1993.11.27 개봉 | 감독 리들리 스콧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마땅히 집 내부에 있어야 할 존재로 여겨져 왔다. ‘집사람’, ‘안사람’등의 단어가 기혼 여성을 지칭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거리 위의 남성’이라는 단어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칭하는 반면 ‘거리 위의 여성’은 ‘창녀’라는 비유적 의미를 내포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 로드무비로서 기존의 통념을 깨고 두 명의 여성이 거리를 활보하며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전복시킨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강인함', '용맹함' 등으로 정의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상징하는 총과 차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거칠게 차를 몰고 총을 쏘며 남성 권력에 대항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폭력'을 통해 언제나 그들 위에 군림하던 남성성에 도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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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의 핵심인 마지막 장면에 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그들의 연대와 저항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것은 비극보다는 남성 권력에서의 탈출과 더불어 숭고한 저항으로까지 느껴진다.

 

델마와 루이스는 때론 좌절하고 분노하지만 그 좌절과 분노의 힘으로 연대하고 가부장적 세계의 억압과 폭력에 유쾌하게 맞서며 그 권력을 전복시킨다.


 

 

무스탕: 랄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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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프랑스, 터키 | 2016 .03.17 개봉 | 데니즈 겜즈 에르구벤 감독

 


<무스탕: 랄리의 여름>은 터키 시골마을에 사는 다섯 자매들의 성장을 그린 프랑스 영화이다. 영화는 다섯 소녀들이 다른 소년들과 바닷가에서 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섯 자매들의 눈빛은 그들의 청춘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삶과 청춘은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부서진다. 빛나던 그들의 눈빛은 분노, 권태, 슬픔, 체념으로 변한다.

 

가부장적인 터키의 전통은 성애의 음지화, 순결 신화, 여성 종속 등으로 구체화 되어 다섯 자매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그 모습을 보면 '이 사회가 여자 아이들로 게임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아이를 신부로 키워내는 퀘스트들을 통해 최종 관문인 결혼에 이르도록 하는 그런 게임. 영화를 보며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어떤 야만이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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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은 인형도, 게임 캐릭터도 아니다. 각자의 이름으로 분명히 존재하고 심장이 뛰며 자신만의 욕망을 갖고 있는 인간이다. 다섯 자매들은 절망에 각자 다르게 대응한다. 물론 그 절망은 유구한 통제의 역사이기에 모든 소녀가 그곳에서 탈출할 수는 없었지만 다섯 소녀 모두가 주체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그에 저항을 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제목의 무스탕은 미국 대평원에 사는 작은 체구의 말이자 키우던 말이 야생화된 것을 말한다. <무스탕: 랄리의 여름>은 여성들은 결코 사회가 바라는 대로 길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며 여성들로 하여금 용기를 심어준다.


 

 

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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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미국  |  2017.03.23. 개봉 | 데오도르 멜피 감독

 


영화의 제목인 <히든 피겨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숨겨진 숫자들’이다. 숫자, 즉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그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두 번째 의미는 ‘숨겨진 영웅들’이라는 뜻이다. 역사에서 여성의 업적은 항상 가려져왔다. 특히 그것이 과학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이 그래왔다. 이 영화는 냉전시대 미국의 우주 산업에서 큰 역할을 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인 세 여성은 모두 흑인 여성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작용하는 억압과 차별은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과 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을 상호 교차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은 이토록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기득권은 이에 너무나도 둔감하다. 억압받고 인내하고 우는 것은 언제나 소수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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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불과 50년 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걸 당연하게 보면 바로잡을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그때는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보며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비합리성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지 고민해게 한다. 그리고 용기와 오기로 그 비합리성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능력을 펼쳐내는 영화 속 인물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짜릿한 성취감과 용기를 안겨준다.


1060년대도, 2020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여성이기에 더 노력해야 하는 시대이다. 다가올 세상은 여성이라고 해서 더 노력할 필요가 없는 시대여야만 한다. 영화 속의 여성들은 그런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여성들이 서로 연대해야 함을, 한 두 사람의 성공이 여성 모두에게 희망임을 보여준다.

 

*

 

앞서 말했듯, 영화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서 기능한다. 미국의 작가 이디스 워튼이 말하길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 이라고한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중심 영화가 등장하여 평등과 다양성이라는 빛을 퍼뜨릴 수 있는 역할을 하길,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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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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