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스한 포옹의 온기가 있는, "지하철 1호선"

글 입력 2019.12.0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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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방문은 오랜만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의자들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하나 둘 채워지는 객석이 보인다. 밀착되어 있는 의자는 꼭 지하철 1호선에 앉아 있는 느낌을 준다. 공연 무대 구성이 색달랐다. 좁은 극장의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래쪽에 무대 하나와 그 위쪽에 계단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무대를 구성해두었다. 그 옆에서는 실제 악기로 공연의 모든 사운드를 연주를 하고 계셨는데, 녹음된 사운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득문득 느낄 때마다 감동은 배가 됐다.


독일 그립스 극단 폴커 루드비히의 Linie 1이 원작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리메이크 되었는데,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한국에서 재탄생한 <지하철 1호선>을 가장 극찬했다고 한다. 사실 공연보다 더 기대되었던 것은 극단 학전의 공연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배역을 철저하게 오디션으로만 뽑는다고 알려진 이 극단은, 연극을 만드는 이들의 열정만으로도 극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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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서울, 연변에서 만난 '제비'를 찾기 위해 이른 아침 서울역에 도착한 '선녀'. 하지만 청량리행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난 서울 사람들은 냉담하고, 서울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곰보할매'의 포장마차에서 '빨강바지'를 만난 '선녀'는 그녀가 '제비'와 함께 연변에 왔던 그의 이모였음을 떠올리고 '제비'의 행방을 묻지만, 그의 실체를 알고 절망한다.

 

청량리 588의 늙은 창녀 '걸레'는 실의에 빠진 '선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자신이 짝사랑하는 '안경'을 찾아 지하철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마 후 급정거한 열차 안으로 누군가의 사고 소식이 들려오는데...

 

 

‘대상화’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불쌍한 존재’,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 하나의 수식어에 갇힌 대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좁고 꽉 막힌 공간 안에서 이러 저리 할퀴고, 찌그러진다. 청량리 588의 걸레, 빨강바지, 안경씨, 그리고 지하철역의 이름 모를 노숙자. 그들은 모두 대상화된다. 불결하고 더러운 사람, 돈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그들은 아프다. 사회의 시선은 그들 마음에 언제나 생채기를 낸다.

 

그들을 유일하게 대상화하지 않고 바라봐 주는 인물은 선녀다. 그래서 다소 엉뚱하고, 순진한 인물로 비치고, 그래서 아이처럼 맑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상화를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왔는지 깨닫게 된다.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특수한 것으로 보일 만큼 우리는 재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연극이 모두를 ‘개인’으로 바라보지는 않다는 점이다. 타자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청량리 588과 역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반면에, 그들을 대상화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또 다른 대상화를 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비치던 개인의 삶의 특수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재단해버린다.

 

걸레와 선녀가 지쳐 잠든 1호선에 ‘강남 사모님’으로 대상화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이 나라는 우리가 지켜왔다’는 가사를 읊는 ‘강남 사모님’들의 모습에 선뜻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악역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이들에게 또 다른 개인을 보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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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을 블랙코미디라 부르기엔 코미디적 요소가 부족하다. 우회적으로 빗대어 보여준다기에는 직설적인 표현이 더 많다. 그보다는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얼 99% 블랙’ 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시니컬하게 보여주지만 그 속에 보여주지 않았던 묘한 따뜻함과 위로가 숨어있다. 제일 정감이 갔던 인물은 ‘걸레’다. 처음 등장할 당시 그는 마약에 취해 있었고, 옷은 어딘가 낡아 보였고, 부스스한 머리와 함께 안색이 어두웠다.

 

그것은 사회가 그를 바라보는 것과도 닮아있다. 사회 부적응자,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 하지만 관객들은 곧 그가 부르는 노래를 통해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걸레’의 삶으로 흘러들어간다. 상심에 빠진 선녀를 위로하는 목소리에 관객들은 비로소 그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그도 나와 비슷한 욕구를 가진 존재였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결국 저마다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다가도, 그 사람이 가진 욕구를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없다. 안경씨가 거짓으로 안경을 쓰고 목발을 짚고 다녔던 것도, 지하철역의 그가 집을 떠나온 것도 모두 개인의 욕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행동 이면을 관찰하면, 나의 마음은 너그러워진다. 그것은 타인이 가진 하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관찰은 타인을 더 이상 대상화하지 않는다. <지하철 1호선>은 관찰하게 한다. 수없이 스쳐갔던 지하철의 많은 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제는 또 다른 삶의 환경, 삶의 터전과 삶의 생태계가 된 지하철의 우리를 본다. 삶의 99%를 이루고 있는 검은색과 1%의 흰색은 오로지 관찰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 <지하철 1호선>은 우리에게 1%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어두침침한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들의 관찰을 통해 우리는 따스한 포옹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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