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쿠알라룸푸르 여행기① [여행]

이방인이 맟선 문화를 대할 때
글 입력 2019.12.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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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후 정확히 7개월 만에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 여행지는 바로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 여행지보다 특별할 것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팔랑귀인 내가 그런데도 말레이시아를 다녀오기로 한 이유는 여러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비빔밥 같은 그곳의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특별한 계기 없이 나는 쿠알라룸푸르로 떠났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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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여행 중 꼭 찍어야 하는 사진이 있다면, 이는 바로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앞에서 찍는 광각 사진이다. 이른바 ‘쌍둥이 빌딩’이라고도 불리는 이 타워는 똑같은 높이에 똑같은 크기의 타워 2개가 연결돼 있다. 저녁에는 어둑해진 도심 속에서 찬란히 빛나, KLCC 공원의 분수 쇼와 함께 꽤 도회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쌍둥이 빌딩의 빛과 함께 어두운 하늘에 울려 퍼지는 아잔소리였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에선 아잔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는 알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알리기 위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배꼽시계가 될 수도, 어떤 이에겐 퇴근을 알리는 소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 저녁 7시에 약속한 듯 도심 속 아잔 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오늘 하루의 마무리를 챙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는 종종 KLCC 공원의 언덕에 앉아 ‘오늘 하루도 알차게 여행했다’고 말하며, 아잔 소리에 귀를 맡기곤 했다. 쌍둥이 빌딩처럼, 저녁과 밤 사이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은은히 빛났다.

 

 

 

메르데카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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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데카 광장은 말레이시아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곳엔 말레이시아 국민이라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8월 31일 식민 지배를 받아온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광장에 있던 영국 국기를 모두 철거하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게양했다고 한다.

 

이곳의 경우, 현재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인기 관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푸른 잔디밭과 이색적인 건물, 푸른 하늘의 조합이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광장 맞은편에 있는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은 영국인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져, 서양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양식을 보인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광장과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다. 어쩌면 이 모습들은, 온 세계에서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축하하는 듯해 더욱더 의미 있어 보인다.

 

 

 

마지드 자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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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드 자멕은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이다. 이곳은 이슬람 종교인들의 신성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우아한 건물 양식으로 메르데카 광장만큼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평소 이슬람교의 종교분쟁에 관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이슬람교가 아닌 내가 괜히 들어갔다가 무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긴장감을 머금은 채 사원에 들어가니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께서 빨간색의 사원 복장을 입혀주셨다. 여자들은 모두 이 요상한 옷을 입어야 사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들어가긴 전 어떤 아저씨께선 한국, 일본, 중국 등 각국의 언어로 된 이슬람교의 진리를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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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안에 들어가니 이슬람 신도들이 여자와 남자로 분류돼 다른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사원 안만 둘러보고 나올 생각이었던 내게, 흰 수염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왠지 모를 긴장감과 경계심이 한껏 발휘됐다.

 

하지만 아저씨는 인자한 미소로 교리 한 권을 들고 오더니 이슬람교의 진리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슬람교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아저씨의 설명은 사원 속 신도들이 기도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아저씨께선 이슬람식 기도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셨다. 바닥에 코와 입술을 대고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면 된다고 한다.

 

알라와의 첫 대면, 나를 비롯한 가족의 건강과 이번 여행의 순조로움을 빌었다. 알라로부터 처음 만난 사이에 왜 이렇게 바라는 게 많냐는 타박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라비안나이트에서만 들어봤던 알라의 존재와 인사하니, 마치 연예인을 실물로 본 것 같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의 기억은, 과거 이슬람교에 가졌던 거부감을 해소시켰다. 이슬람교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종교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만인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라는 점을, 누군가는 이 종교에 의지해 행복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차이나타운, 스리마리아만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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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먹은 후 쿠알라룸푸르에서 유명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그런데 동남아시아 하늘은 그새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의 성난 아이가 돼 있다. 그리고 이내 미친 듯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였다. 그래서 일단 문이 열린 스리마리아만 사원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스리마리아만 사원은 차이나타운 속 힌두교 사원이다. 규모가 크진 않고 딱 비를 피하기 좋은 마루와 처마, 기도실로 이뤄져 있었다.

 

사원에 들어가니,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이들이 마루에서 비를 피하는 중이었다. 일본인 노부부도 있었고, 스페인에서 온 젊은 청년도 있었다. 그리고 사원에서 기도하다 비가 오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인도인 여성도 있었다. 그리고 한편엔 한국에서 온 나도 있었다.

 

비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세차게 내렸다. 힌두교를 믿진 않지만, 이름 모를 코끼리 신에게 제발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무작정 빌었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기도한 게 통한 것일까. 그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비는 언제 내렸냐는 듯 멈추었고,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하늘은 밝은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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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각지에서 온 여행인 혹은 현지인들도 저마다의 여정에 다시 몸을 맡겼다. 나 또한 이제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채비를 마쳤다. 사원을 떠나면서, 함께 비를 피했던 이들에게 속으로 안녕을 말한다.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지만, 우리는 30분간 같은 목표를 꿈꾸던 사이였다.

 

우린 각자 다른 언어로 ‘제발 비가 그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상을 품은 채 여행 온 이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빌었다. 그 오묘했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 우리 모두 여행자라는 것, 비를 맞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그 순간을 추억으로 만들었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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