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신을 위한 여백의 시간 ; 바람이 지나간 자리 [시각예술]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전 ‘바람이 지나간 자리’
글 입력 2019.12.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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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전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사회의 시스템 속에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망각해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전시다.


자신을 둘러싼 시간, 기억, 공간에 대한 환기, 감정이나 관계의 보살핌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항상 잠이 들려 할 때 심연의 밑바닥에서 떠오른다. 이제는 의식이 깨어있을 때, 자신을 위한 여백의 시간을 내보는 호흡이 필요하다. 오롯이 자아(自我)를 만나고 싶다는 특별함을 불러일으키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1. 응시하다(Gaze at) 의식과 무의식

; 매일의 연속 선상 안에서 습관 같은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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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연, Stocking (2017)

 

 

임주연 작가는 코스튬 후 옷을 벗는 행위를 사진에 담은 후, 캔버스에 그려내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탈의함으로써 내면의 ‘나’에게 침잠함을 은유하며, ‘보여 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가 분열함으로써 생성된 대립과 긴장을 시각화시킨다.

 


같은 사람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이는 나를 보며, 우리는 괴리감 또는 대립의 느낌을 받는다. 무엇이 나일까 찾아가는 과정을 ‘탈의를 통해’ 보여주고, 내면의 나와 의식적인 친밀함을 가져야 함을 보여주는 위 작품을 보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사회 속 자신의 지위에 맞는 옷을 입었다가, 일을 마친 후에는 자신을 보호했던 옷을 안전한 곳에 벗어던진다. 사회와 남에게 보이는 것과 실제의 내 모습은 다르다. 집에 와 옷을 벗어 던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와 편안히 만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됨을 느끼게 된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은 나를 응시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며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작이 된다.

 

 


2. 마음을 쏟다(Put One’s Heart in) 희로애락

; 내 안의 희로애락 감정을 잘 살핌으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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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황홀과 절망(2013)


 

작품의 화면 중앙부를 꽉 채우는 거대한 폭발은 색색의 물감이 흩뿌려지면서 감정의 분출처럼 느껴지는 등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인류의 희망적 기운이 담긴 기둥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아래 흩어지는 인간의 급박한 움직임은 사력을 다해 절망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풍경으로 읽힌다.

 


처음 보았을 때는 꽃처럼 보였던 이 작품. 멀리서 보면 하나의 축제같이 보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눈동자를 작품의 아래까지 내리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우리 곁에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에 감정이란 것도 동반된다. 감정이 있기에 인생은 폭죽 터지듯 즐겁고, 엉클어진 물감처럼 힘들다. 작품명 <황홀과 절망>처럼, 항상 황홀할 수는, 항상 절망적이지는 않은, 희로애락 인생 그 자체를 보여주는 그림인 것 같아 더 오래 눈에 담아내었다.


다변하는 세계 안에서 우리 자신의 감정을 알고 컨트롤하는 것은 자신을 지켜낼 수 있게 해준다. 있는 그대로에 마음을 쏟자.


 

 

3. 지나치다(Pass by) 일상의 공간, 기억

; 묵묵히 시간의 두께와 함께 침묵해가는 일상적 공간은 삶을 기록하는 캔버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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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주, 삶-귀로에서 (2003)


 

작가는 덧없어 보이는 일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과거 또는 과거의 인물과 주변 사람들을 회화적으로 구성하는 한편, 작가 자신이 세상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담았다.

 


반복되는 일상은 붙박아진다. 똑같은 타일 같지만 살짝 씩은 다른 것처럼, 일상 역시 똑같은 규칙 안에서도 조금씩 변형된 하루를 만들어낸다. 검은색으로 표현된 사람이 네모난 콘센트 모양과 그 아래의 계단을 통해 탈출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공간을 타일 안에 이미지화했다.


최근 들어 드는 생각과 정말 닮아 있는 작품이었다. 매일의 일상은 주목받지 않지만, 우리가 그 일상을 벗어나면 좋다가도 결국 불편함으로 허둥대게 된다. 결국, 필히 누구나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공간, 일상.


매일을 매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며,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나의 공간과 기억에 새삼 묘한 감정을 느꼈다.


 

 

4. 헤아리다(Fathom out) 관계 속의 나

; ‘나 홀로’ 삶 고수와 자기 존재를 점점 방어하는 사회 속에서 나를 찾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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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흠, Social-bambi (2013)


 

작가는 관람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 있는 밤비라는 캐릭터를 차용하고, 그 안에 자신의 뒷모습을 그려 넣었다. 뒷모습의 작가는 인물 군상 속 일원이 되지만,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진 구성원과는 다른 곳을 보는 존재로, 점점 획일화되는 사회 풍경에 궁금증을 갖는다.

 


작가가 밤비를 사용한 이유는 SNS 안에서 우리가 가끔 자신과 관련 없는 브랜드, 명품 등 태그 걸기로 관심을 끄는 역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람의 관심을 원하지만 때로는 부담이 되는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낙동강 오리알 신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께하지만 단절되어있는 듯하고, 다른 이들이 나를 볼 때, 결국 나는 다수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씁쓸한 느낌도 든다. 군상 아래 휘둘리지 않는 방법은 관계 속에서 나를 정립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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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솔, Disguise (2014)


 

작품 속 소녀는 자신의 얼굴을 풍선 꽃으로 가리고 있다. 언제 터져버릴지 모를 풍선 꽃은 사회로 쉽게 나서지 못한 소녀의 불안감을 은유하는 장치이다.

 


저 소녀가 나라고 생각했다.

 

관계 속 불안정, 대인관계의 어려움, 걱정, 망설임은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이다. 정답은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소녀 뒤에 있는 다양한 색깔과 생김새를 가진 꽃들이 말해주듯 가치관 등 ‘다름’에서 오는 일에 ‘기준’을 짓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기에 상처받지 않으려 자신을 (풍선 꽃으로) 방어하니, 타인과 교감 및 관계는 서툴고 어려워진다.


관계를 다루는 문제에 정(正)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답이 없다는 것만큼 자유로우면서도 끝없는 고민을 늘어뜨리게 만드는 주관식 같은 건 내게 참 취약하다. 단순히 내가 내린 결론은 ‘관계’가 1순위가 아닌 ‘자신 스스로’를 1순위로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계속되는 인생은, 우리에게 용기를 가질 시간을 주진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며 나의 내면을 돌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거대사회에서 매몰되지 않을 것이니.


 

 

짧은 감상평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전시된 작품은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사람들.” 현실 속에서, 나를 잃지 말고 의식적으로 내면을 응시하며, 마음을 쏟으며, 일상을 지나치며, 헤아려야 하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한다.


역겹도록 재미난 인생, 한마디의 숨을 내몰아 쉬는 데에도 잣대를 들이밀지는 말자. 멈추자. 그리고 한숨 후 바람이 지나간 그 자리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느끼길.


자아(我)가 없는 ‘자신’을 너무 오래 내버려 두지 말자. 남보다 자신과 친해지길,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권해본다.

 

 

[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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