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최인 기타 리사이틀 Traveler [공연]

글 입력 2019.12.03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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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을 본다. 고전 클래식이 아닌 현대 작곡가의 클래식 기타 연주이다. '세종문화회관'이란 정말 큰 공연장인데, 홀에 가니 도란도란 소박한 느낌도 들었다. 표와 팜플렛을 받았는데 엽서 세트도 있었다.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런 건 거부하지 않지. 하나만 고르려고 했으나 다 마음에 들어서 챙기고 말았다. 엽서를 이 시대에 쓰는 사람은 잘 없지만 기념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용도로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언제든지 온라인 화면으로 이미지를 소장할 수 있는 마당에, 엽서는 굳이 오프라인- 실체로 가져야할 이유를 뒷받침해준다. 사진만으로도 어떤 시점이 취향인지 예상할 수 있다.

 

연주 전에 곡 소개를 했다. 친절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준 후 연주를 했다.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운좋게도 매번 이렇게 독주회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인삿말에 공감을 했다. 창작이 자연스러운 사람에겐, 남들에게 작품을 보일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연주를 듣는데, 생각보다 클래식 기타 음이 둔탁했다. 통기타와는 다르게. 물론 작곡가 연주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가는 선과는 달리 소리가 말랑하진 않았다. 계속 울리는 느낌하고는 다르게. 선의 형질과 음색이 사람 성격과 비슷한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인하고 두꺼운 성격이 오히려 더 맑을 수 있을 수 있겠다. 말랑한 줄이 생각보다 둔탁한 음색을 내듯이.

 

최인의 통기타 곡들은 전부 안정적이었다. 베이직하고 안정적인 곳들. 마치 기본기가 강한 탄탄한 영화나 작품을 보듯이. 그래서 완성되어진, 나이든(?) 작품은 그렇게나 편안할 수가 없다. 긴장을 할 필요도 없고, 눈만 감고 편안히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겠지. 유학생활 포함해서. 지금은 가정을 지닌 안정적인 아버지의 단단한 음악이었다.

 

내가 제일 기대했던 부분. 베이스와의 협연! 나는 정말 낮은 음이 좋다. 첼로를 좋아하고 베이스를 좋아한다. 베이스가 메인이라서 너무 좋았다. 엄청나게 대비가 강해서 더 각자 개성이 느껴졌다. 나는 베이스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베이스는 낮았는데, 또 메인음을 맡아서 연주하니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같이 하니 곡이 더 풍부해졌다.

 

작품 소개로 인해 곡을 미리 예상할 수가 있었는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팜플렛에 있는 텍스트와 실제 듣는 음악이 동일했다. 어쩜 이렇게나 정직할 수가 있을까. 정직한 설명과 정직한 음악이었다. 제목도 뚜렷하고. 매번 연주 전 곡 소개를 해는데 '공간 1,2,3'은 설명하지 않았다. 굳이 말로, 텍스트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듣는 게 가장 정확할 테니까. 감정만 있으면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든지 동일한 것 같다.

 

이번 공연은 이전과는 다르게 재미있게 감상했다. 작품 소개와 음악이 똑같아서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고, 의외로 둔탁한 클래식음과 의외로 맑고 높은 음을 가진 베이스 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통 연주할 때 연주자를 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나 가깝게 앉았어도 연주자를 보지 않았다. 음악만 듣고 싶어 눈을 감고 감상했다. 가장 명확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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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곡 해설
 
 
서 - 클래식 기타 독주 (창작곡 재연)
 
서는 서예의 시간성과 퍼포먼스적 요소가 음악의 그것과 같고 또 그 깊이와 정신이 동양문화의 정수와 맞닿아 있는 것에 영감을 얻어 쓰게 된 곡이다. 한자의 부수들처럼 이루어져 있으나 각 섹션은 서예의 획이 그려지는 것처럼 변화가 있어도 끊어지지 않고 연결이 자연스럽다. 붓의 성격과 필법, 호흡 등을 다양한 기타주법으로 표현해 보았으며 선비의 기개를 표현하고자 했다.
 
 
산, 바다 - 클래식 기타 독주 (창작곡 재연)
 
산 -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또 어두운 길도 걷게 되는 등 산행을 하는 기분과 풍경을 묘사한 곡이다. 오르고 내리고 바라보게 되는 풍경 같은 것들을 삶의 오름처럼 생각하여 마침내 정상에서 바라보게 되는 빛을 표현한 곡이다.
 
바다 - 파도소리는 마치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어떤 존재가 항상 같은 답을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곡은 그런 바다와의 대화를 표현한 곡이다. 음악적인 풍경이라는 개념으로 여행을 통해 삶을 통해 느끼는 공간들을 음악적 풍경(Music-scape)이란 틀에서 연작으로 쓰게 된 곡이다.
 
 
석풍수 - 클래식 기타 독주 (창작곡 재연)
 
건축가 고 유동룡(이타미 준)의 작품 석풍수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작가가 동양의 철학인 천원지방과 천지인의 개념을 건축물에 투영하여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경험하게 하고, 작품이 위치한 제주도를 상징하는 요소들을 건축에 담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건축물을 경험하며 느낀 심상과 상징들, 동양적 아이디어들을 음악으로 표현해 보았다.
 
 
바람과 나 - 클래식 기타 독주 (창작곡 초연)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올 때 배는 앞으로 갈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역풍을 통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오히려 내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위험하다고 요트 전문가가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순간 바람을 느끼며 변화에 적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어려움의 대한 또 그 지혜에 대한 곡이 될 예정이다.
 
 
연습곡 공간 1 • 2 • 3 - 클래식 기타, 더블베이스 이중주 (창작곡 초연)
 
공간 1은 흔히 학생들이 빠지게 되는 좋은 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쓰게 된 곡으로 몇 개의 음들과 화성으로 다채로운 음색과 공간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쓴 곡이다. 음이 3차원 적으로 움직이며 결국 시간이 포함된 4차원 적인 공간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자유롭게 해석하며 연주할 수 있게 쓰인 곡이다. 원래 독주곡으로 작곡되어 2016년 초연하였고, 2018년 그 연작으로 공간 2를 작곡하게 되었다.
 
공간 2는 공간 1에서의 움직임과 자유로움이 멈춘 후 가슴과 마음의 공간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에서 쓰게 된 곡이다.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배제된 음에서 벗어나 음정과 화성에 따른 정서적 반응들이 자연스럽게 연습될 수 있도록 작곡하였다. 음들의 관계 속에서 듣고자 하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생각이 아닌 주로 가슴의 느낌이 자연스러워지도록 돕는 곡이다.
 
공간 3은 공간 1, 2의 연작이자 완성이 되는 곡으로 자유로운 음악적 움직임을 위한 연습곡으로 시작되었지만 내적인 회복이 결국 변화의 모체가 되어 성장하고 확장되는 의미의 3악장으로 완성 되었다. 기타와 더블베이스를 위해 편곡되어 초연된다.
 
 
Blue Hour - 클래식 기타 독주 (창작곡 재연)
 
해가 지고 나서 하늘이 어두워지기까지의 시간을 'Blue Hour'라고 한다. 이 곡은 아름다운 노을에서 사라지는 빛 그리고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그 풍경에 관한 것이다. 그 시간은 나로 사색하게 하고 누군가를 기억하게 한다.
 
 
함께… - 클래식 기타 독주 (창작곡 재연)
 
'함께'라는 단어는 내게 때로는 사랑이나 희망 같은 것들 보다도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단어이다. 이 곡은 어려운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들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를 담은 곡이다.
 
 
To the unknown land - 클래식 기타, 더블베이스 이중주 (창작곡 초연)
 
어디인지 알 수 없이 함께 떠나는 여정은 관계의 많은 것들을 시험한다. 기대와 실망, 갈등들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고 그곳에 다다르더라도 얼마 동안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의 마음속에 점점 만들어지고 가까워지는 곳이라는 생각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가슴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헌가이며 축사이다. 악기편성은 기타와 더블베이스이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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