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같은 문학 "거미여인의 키스" [도서]

마누엘 푸익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1976)의 영화적인 요소와 문학적인 요소
글 입력 2019.12.03 14: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현 사회에서는 문화가 ‘자연’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는 우리 생활 곳곳에, 떼려야 뗄 수 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 속에서 문학은 문화와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문학과 문화는 그 경계를 넘어 ‘상호텍스트성’을 가지며 공생해왔다. 이때 상호텍스트성은 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 유기적 관련성을 의미하며,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의 언급, 연상, 환기 등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사용하는 중요한 창작원리이다.

 

특히 문학은 서사를 가지며 스토리텔링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가진 영화 또는 공연예술과 많은 상호작용을 한다. 이는 주로 문학이 영화/공연화되는 OSMU(One Source Multi Use)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 또한 영화/공연화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경향을 떠나서 소설 자체가 영화라는 문화를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며 상호 영향 관계를 갖는 독특한 소설이다.

 

나는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고, 발렌틴과 몰레나가 서로를 통해 억압에서 해방되는 과정, 즉 소설의 내용보다 그 과정을 묘사한 소설의 영화적인 형식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거미여인의 키스』의 영화적인 요소와 소설적인 요소를 찬찬히 짚어보려 한다.



[크기변환]거미여인의 키스.jpg

 

 

『거미여인의 키스』의 가장 두드러지는 영화적 요소는 시나리오와 비슷한 대화체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전체 16장 중 보고서 형식인 15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두 주인공인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생생한 구어체로 표현된다. 또한 현재 몰리나와 발렌틴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뿐만 아니라 몰리나가 예전에 봤던 영화의 묘사 또한 현재형으로 서술되고 있다.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과 달리 인물의 행위나 심리,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화자(Narrator)가 부재하는 것이다.

 

기존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은 책의 첫 장을 펼치고서 혼란을 느낄 수 있으나, 이런 서술 방식은 독자가 두 인물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독자들은 발렌틴의 입장이 되어 몰리나가 묘사하는 영화가 눈앞에 보이는 듯한 시각적 효과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8장, 11장 등에 등장하는 몰리나와 교도소장의 대화는 발렌틴과의 대화와 달리 말하는 이가 명시되어 있어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를 시각적으로도 느끼게 한다. 또 15장은 감옥에서 나온 몰리나를 미행한 결과를 보고서 형식으로 서술하는 과거형의 관료적인 말투로 되어있으며, 몰리나의 죽음을 객관적이고 차갑게 묘사하고 있다.

 

과거형의 차가운 문체와 형식은 마치 영화처럼 직접 대화를 듣는 듯한 몰리나-발렌틴의 구어체, 현재형 대화체와 대비되어 더욱 냉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보고서 형식과 각주 등은 인쇄된 문자의 모양으로도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문자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다.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영화를 설명하는 몰리나가 카메라의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화자가 부재하기 때문에 몰리나는 영화를 설명할 때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이 매우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장면을 설명해서 그 장면을 시각적으로 떠올리도록 한다. 즉, 몰리나는 영화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날이 거의 어두워졌기 때문에 저 멀리로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그녀의 실루엣만 희미하게 보였어. ……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아주 크게 보였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어.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어.” - p.341

 


몰리나는 영화를 설명하면서 영화의 편집기법 중 하나인 ‘간격편집(crosscutting, intercutting)’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간격편집은 동시에 일어나지만 서로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는 둘 이상의 사건의 장면을 교대로 보여주는 편집을 의미한다. <좀비와 함께>를 설명하는 9장부터의 부분에서는 영화 묘사와 함께, 중간중간 기괴한 장면의 묘사가 이탤릭체로 등장한다.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러운 장면을 묘사하는 이 이탤릭체 부분은 독자들에게 영화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여 시각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더하여 이 삽입구의 장면 묘사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미래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적 요소가 강한데 작가는 왜 영화가 아닌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을까?

 

소설의 저자인 마누엘 푸익은 한 인터뷰에서 “문제들이 복잡할수록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뤄줄 소설이 필요하다. 나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소설이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소설은 영화와 달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게 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서의 특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보다 훨씬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며 자유롭게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문자 자체가 지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특성과 문자를 통한 연상 작용을 통해서 다양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표범여인>에서 이레나가 표범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설명하는 “그녀는 표범을 그리는 데 열중해 있었다.”라는 문장에는 ‘wrap’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둘러싸다, 열중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이레나의 모습을 묘사하는 동시에 앞으로 발렌틴이 거미여인인 몰리나의 거미줄에 둘러싸여질 것을 상징한다.


또 5장에서 이탤릭체로 서술되는 몰리나의 여러 생각이나 16장에서 서술되는 발렌틴의 의식은 심리상태,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영화보다 문자로 썼을 때 더 효과적이고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더불어 『거미여인의 키스』는 비유법, 생략법 등의 전통적인 문학 기법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더욱 풍부한 표현력으로 소설 속 영화와 인물의 심리를 묘사했다. 이는 독자들을 능동적으로 상상하게 하여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한다.

 

 

거미여인의키스1.jpg

 

 

『거미여인의 키스』는 영화적인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독자들에게 영화를 보는 듯이 생생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소설적 요소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세세히 상상하게 하여 풍부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문화가 자연이 된 이 시대에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문 『거미여인의 키스』와 같이 상호텍스트성이 짙은 작품들로 더욱 풍성하고 풍요로운 자연의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정다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