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하라를 기억하며 [사람]

너를 잊지 않을게
글 입력 2019.12.0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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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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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요일 저녁이었다. 믿을 수 없는 기사가 속보로 올라왔다.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던 말이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비보가 다시 날아들었다. 오보라는 후속기사가 올라오길 바랐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슬픔을 머금은 잔인한 일요일이 되었다.

 


 

한류 아이돌이 된 어린 소녀


 

구하라는 2008년 7월 카라의 첫 번째 미니 앨범 ‘Rock U’로 데뷔한다. 작은 얼굴에 큰 눈망울, 인형 같은 외모의 구하라는 인터넷 상에서 금방 화제가 되었다. 예능을 통해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여주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데뷔 이듬해인 2009년, 구하라는 카라의 성공과 뛰어난 예능감으로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이후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 해외 여성 아티스트 최초 오리콘 차트 1위, 도쿄돔 단독콘서트를 비롯 큰 인기를 누렸다.

 

소속사인 DSP와 계약이 종료된 후 구하라는 연기와 예능 활동을 이어나갔고, 2019년에는 일본의 프로덕션과 전속계약을 하면서 11월 중순 싱글앨범 '미드나잇 퀸' 발매와 제프투어로 본격적인 일본 활동을 시작하려는 듯 했다.

 

 

 

악성루머의 시작


 

전 남자친구인 최모씨와 폭력 논란에 휘말렸다. 하지만 진단서와 피해사진, 최모씨가 구하라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구하라가 데이트 폭력 피해자임이 금방 드러났다. 그러나 상세한 피해 내역이 담긴 진단서와 폭행사건 당일CCTV 영상 등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공개되었지만 진실과 무관하게 구하라에게는 악플이 쏟아졌고 언론은 상황을 자극적으로 소비했다. 증거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구하라를 의심했고 법정 공방이 이어지던 중 구하라는 한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재판부는 1심에서 최모씨에게 리벤지 포르노와 관련된 성범죄에서 대해서 무죄를 부여했고,구하라측은 형량이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이에 항소했다. 구하라의 사망 이후, 구하라 측에서 2차 가해를 이유로 해당 동영상 공개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사실확인을 위해 영상 제출을 요구하고 영상을 확인했다는 점과 판결문에 성관계 장소와 횟수까지 기록되었다는 게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최모씨에게 성범죄 무죄를 부여한 오덕식 부장판사가 그동안 성추행 혐의, 음란물 유포, 불법촬영 등의 성범죄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에 둔감하고 2차 가해에 무감한 사법부에 분노하였다.

 

구하라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지만, ‘정준영 단톡방’ 사건을 보도한 강경윤 기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 했다. 세상은 여성이고 연예인인 구하라를 멸시하려 들었지만, 구하라는 현실을 이겨내려 했다.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적 문제


 

사람들은 남자에게 관대하다. 여자에게는 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고, 여자가 피해자인 상황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오히려 가해자인 남성을 두둔한다. 사법부도 남자에게 관대하다. 그래서 때로는 판사가 여자에게만 가혹한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로워야 할 위치에 있더라도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여성이 성범죄 피해자인 경우 가해자 변호인 측에서는 피해자는 완전 무결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두고 피해자 흠결찾기를 하곤 한다. 연예인-일반인 사건의 경우 일반인은 신상노출을 우려하고, 연예인인 경우 이미지 때문에 사소한 일이라도 기사화되지 않길 바라는 점을 이용한다. 그러나 세상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가해자 변호인 마냥 집요하게 피해자를 파헤친다. 당연히 잘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피해자가 아닐 거라 생각한다.

 

‘피해자의 입장에 서보지 않은 사람들이 다스리는 세계의 모습은 폭력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법원의 구성원 대부분이 남자이기 때문에 여성의 폭력문제의 대한 인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인식에 문제가 있으니 보호 받아야 할 약자에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를 행하는 것이다.

 

연예기사의 댓글창을 없애거나 악플러나 언론을 고소하거나 새로운 법안을 상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여성멸시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은 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특정 집단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인식을 바꿔나가야 함을 인지해야만 한다.

 

 

 

하라야, 너를 잊지 않을게


 

나는 카라를, 구하라를 좋아해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하라의 죽음이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고 하라를 과거형으로 얘기해야 한다는걸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사람들이 하라의 모든 커리어와 장점을 뒤로하고 ‘그 남자친구랑.. 걔…’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있자니 너무 속상했다. 나에겐 멋있고 예쁘고 소중하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존재였는데 사람들은 하라를 힘들게 한 일로 하라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라를 기억하고 싶어서 쓰고자 마음 먹은 글에 하라에 대한 이야기보다 사회문제를 더 많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라는 단순히 폭행사건과 악플의 피해자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혐오와 멸시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걸말하고 싶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더 너그러웠다면, 여성연예인에게도 관대했더라면 하라가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걸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었다.

 

하라는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힘들어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가 그랬듯이 우리도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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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고 아름다웠던 하라가

이제는 편히 쉬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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