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장을 읽고 쓰는 법에 대하여: 도서 "문장의 일"

글 입력 2019.11.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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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말이 되든 되지 않든 간에 글은 마구잡이로 써도 완성이 되니 쓰는 행위 자체는 쉬운 게 맞다. 그러나 글 다운 글, 정말 읽어봄직한 글을 쓰는 것은 결단코 쉽지 않다. 글의 서두에서 말미까지, 그 사이사이의 문단들의 완결성과 연결성이 갖추어져야 하고 문장 하나하나까지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형식뿐만이 아니라 내용까지도 갖춘 채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뛰어난 글을 흠모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문장의 일"이라는 책 제목은 그야말로 월척감이다.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라는 부제는 참을 수 없는 미끼다. 게다가 책 표지 하단부에 쓰인 "누구나 독자이자 작가인 때, 읽고 싶은 문장을 쓰는 법"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이 책을 읽고 싶은 욕구에 기름을 들이붓는다. 문장을 잘 쓰기를 희망하는 수많은 여타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던 내가, 도서 "문장의 일"을 만난 것은 이토록 사소하고도 운명적인 조우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것은 문장에 달려 있다 

 

글이 넘쳐나는 시대다. 문장 또한 세상을 떠다닌다. 문장이 문장을 공격하고, 예기치 못한 문장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을 한 편의 글로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미덕을 실천하는 일이 되었다. 페이크나 가짜가 만연한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팩트’를 넘어 ‘진실’을 담은 글을 쓰는 일은 모두의 욕망이기도 하다.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문학이론가이자 비평가이며 법률학자이기도 한 스탠리 피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담론이건 담론이 표현하는 것은 전부 한 문장 안에 담겨 있다”고 한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문장이 ‘많은 일’을 해낸다. 문장에 애정이 없는 사람은 글쟁이가 될 수 없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묻는다. “문장을 좋아하나요?”

 

책에는 문장의 개념부터 각종 문장 형식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쓰는 법까지, 글쓰기 방법이 단계별로 나와 있다. 다만, 스탠리 피시의 문장 강의는 그 효과가 확실한 요령이나 팁을 제시하는 가이드북이나 매뉴얼이 아니다. 위대한 작가들이 쓴 문장들을 실례로 들며 왜 그 문장이 인상적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문장을 읽는 안목’을 키워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스타일로 문장 쓰는 힘’을 길러주는 책이다.

 

피시 교수에 따르면, 글을 잘 쓰려면 훌륭한 문장을 많이 읽어야 한다. 원론적으로 들리지만, 그게 시작이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생각하면 그 원론적 주장의 실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선정적이고 말초적이며 담론 없이 그럴듯한 문장만 나열하는 글이 널렸으니까. 피시 교수가 엄선한 문장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글쓰기 공부’가 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 책은, 초장부터 일반적인 기대감을 무너뜨린다. 목차를 1장에서 '왜 문장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놓고는 3장에 '생각(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려는데 문장이 중요하지 않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글쓰기는 형식과 내용이 다 중요한 일이 아니던가. 왜 저자 스탠리 피시가 이렇게 초장부터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건가 의아했다.


이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서, 본문을 바로 읽어내리지 않고 먼저 이 책의 원제(原題)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조금은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번역판 제목이 "문장의 일"인 것과는 달리, 원서 제목은 "How to write a sentenceㅡAnd how to read one"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 책은 글을 써내려가는 것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구성하는 문장을 어떻게 쓰고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방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문장을 분석하고 이해해서 뛰어난 문장 형식을 구현해낼 수 있을 때 결과적으로 글의 완성도 역시 높아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번역판의 부제가 오역이거나 과장은 아니다. 다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분명 있다.


*


스탠리 피시는, 물론 후반부에 가서는 내용 역시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장의 형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독자들은 우를 범하기 쉬워진다. 그렇다면 아마도 품사별로 나눠서 문장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설명하려고 하겠지 하고 예측하게 만드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언제나 금물이다. 저자는 2장 '스트렁크와 화이트에게 답이 없는 이유'에서 이처럼 품사별로 문장의 구성요소를 나누어 설명하려는 노력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문장은 논리관계의 구조임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 속에는 다양한 품사의 구성요소들이 항상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명사와 동사가 만나고, 이를 각각 수식하는 형용사와 부사, 이것이 길어질 때에는 수식어구나 절이 형성되어 문장을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그런데 스탠리 피시가 주목하고 있는 대목은 이 각 품사들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는 문장 속에 필요한 구성요소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논리 관계 자체는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그는 문장을 쓸 때 수많은 품사들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장이 논리적인가' 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만 유념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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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속에서 스탠리 피시는 종속 형식, 병렬 형식, 풍자 형식의 문장들을 살펴보고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대해 살펴보면서 다양한 문장의 형식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문학이론가이자 법학자라는 굉장히 특이한 타이틀 두 개를 동시에 보유한 사람다운, 아주 치밀하고 집요한 컬렉션들이었다. 저자가 예시로 든 문장들은 모두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실려 있었는데, 번역된 문장보다도 원문을 볼 때 스탠리 피시가 말하는 바가 더욱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영문을 읽다 보면, 가끔 그런 문장들이 있다. 문장 하나가 몇 줄이 되어 한 없이 길게 늘어져 있는, 바로 그런 문장들 말이다. 대부분 한글로 글을 쓰는 경우에는 이렇게 길게 늘어진 문장들을 만연체로 보고, 만연체보다는 가급적 간결체로 쓰도록 연습한다. 그리고 그건 맞는 말이다. 문장이 너무 길면 지저분하고 일목요연하지 않다. 그런데, 영문에서는 정말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꽉 채우는 경우가 있다. 전공서를 읽을 때, 그런 문장을 보면 부분 부분 쪼개서 읽다가 문장을 다 이해했을 즈음에는 열이 뻗치곤 했다. 왜 글을 이따위로 써서 읽는 사람 시간을 뺏는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한글이 만연체보다 간결체로 쓰는 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반면에 영어는 문장을 쪼개고 나누어 쓰기 보다는 한 문장으로 이어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 그렇게 문장의 구조가 형성되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영문은 확실히 아주 간결하거나 아주 복잡하거나 한 두 가지 형태로 문장이 나뉘어 있다. 그리고 스탠리 피시가 말하는 문장을 읽고 쓰는 법은, 바로 이 복잡한 영문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제격인 방식이다. 복잡한 문장의 형태를 아주 간소화해서 말이 되든 되지 않든 간에 적절한 품사만 우선 넣어 문장의 형태를 습득하게 한 다음, 이후에는 논리적 구조를 갖춰 문장을 만들도록 연습하게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올바른 품사와 최소한의 논리적 구조를 갖춘 문장에 살을 붙이는 데까지 독자들을 이끌고 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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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단번에 문장이 개선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움이 드는 책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문장의 일"은 지름길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 스탠리 피시가 오랜 시간동안 문장을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문장을 잘 쓰고 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정제된 연습 방법이 유구한 세월 속에 살아남은 뛰어난 명문들과 함께 담겨 있는 것은 맞다. 이 책은 분명 다 차려진 밥상이지만 이 밥상 위에 놓여있는 건 십분 이십분만에 뚝딱 끝내버리는 라면이 아니다. 수 시간에 걸쳐 대화하고 곱씹으며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프렌치 정식과도 같은 것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뛰어난 문장의 예시를 보고, 그것을 간소화해서 최소한의 요소(품사)만으로 문장을 만들어본 다음 본인이 실제로 쓰고 싶은 글에 이를 활용해 볼 때에 비로소 그 문장의 형태를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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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을 때 즈음 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책에서 지름길을 발견하길 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제된 문장들에 감탄하고 압도되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결국 또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는 것에 은근히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스스로니까 편하게 하는 말인데, 정말 도둑놈 심보가 아닐 수가 없다. 아무런 노력 없이 어떻게 값진 문장을 얻는단 말인가. 스탠리 피시가 책 속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 언어를 유차하게 구사하는 능력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에 관해 쓰느라 보낸 수많은 시간의 산물"인데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극이 되기도 했다. 한글로도, 영어로도 이렇게 정제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게 만드는 책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담은 문장을 써낼 수 있는 그 날까지, "문장의 일"을 보며 스탠리 피시에게 도전받고 싶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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