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판을 깨는 광대, 그들이 깨고 싶었던 신분의 벽 - 딴소리 판

글 입력 2019.11.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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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통 서사와 관련된 강의를 들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내가 얼마나 전통 서사에 관심이 없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말이다. 무관심한 것을 넘어 조금 싫어하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으로 권선징악만을 내세우는 것도, 그 안에 (안 좋은) 유교적 가치관이 묻어나는 것도 싫었다.

 

그런 내가 이 공연을 보기로 다짐한 것은 김애란 작가가 쓴 에세이의 영향이 컸다. 에세이는 판소리의 절정 부를 담은 공연과 그 공연을 본 이후 미처 몰랐던 새로운 주제 의식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김애란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판소리에 관한 글을 읽으니 함부로 무시했던 판소리의 가치가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타인의 글을 통해서 느끼는 것과 실제 공연을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문장에 갇힌 판소리의 가치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거지들이 판을 깬다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판소리 공연이 펼쳐질 것 같아 망설임 없이 공연을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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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리기 직전인 하늘을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남산국악당으로 향했다. 다른 예술극장처럼 현대적인 건물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남산 국악당은 이름에 걸맞게 전통미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었다. 경복궁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보기 전,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판소리의 세계에 발을 담근 것만 같았다.

 

자리에 앉자 설화의 삽화를 닮은 무대 세트가 보였다. 곧이어 북을 치는 고수와 소리꾼이 나타났다. 무대 구석에서 가만히 선 상태로 소리만 내는데도 나는 완전히 그 소리꾼에 압도되었다. 연극과는 또 다른 판소리만의 톤과 성량이 내 귀를 매혹했다.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시놉시스를 확인하고 가서 어떤 순서로 공연이 진행될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예측에 따라 첫 번째로 <춘향가>의 한 장면이 나왔다.

 

몇 개월 전, 강의를 통해 1994년에 드라마로 재현된 춘향전을 관람했었다. 원작을 그대로 반영한 드라마에는 2019년의 시각에선 불편한 부분이 매우 많았다. 남원 고을의 기생들을 한데 모아 상품처럼 고르는 변 사또, 수청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는 춘향, 자신을 향한 지조를 지키기 위해 고통받은 걸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춘향을 시험하는 몽룡까지.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청가>에서는 딸이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모습을 그저 ‘효심’이라는 두 글자로 간편하게 포장해버리고, <수궁가>에서는 권력자의 건강을 위해 약자인 토끼가 간을 요구받는 것과 부하직원인 자라가 고군분투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적벽가>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라지는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흥부가>에서는 권선징악을 일확천금으로 손쉽게 해결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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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공연은 그런 시대착오적인 면모를 전혀 답습하지 않았다. 애초에 거지들이 판을 깬다는 설정이 전제로 깔려있기 때문에 예상한 바였지만, 깨는 과정에서 나오는 비판의 솔직함은 예상을 넘는 수준이었다. 특히 수궁가의 판을 깨는 부분에서는 ‘갑질’이라는 현대적인 단어가 노골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부분은 웃긴 것과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판소리에서 나타나는, 과격하게 말하면 폭력적이기도 한 가치관이 지금 현대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판을 깨는 주인공은 당장 굶지 않는 게 삶의 목표인 거지들이다.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그들은 가장 밑바닥에 위치했다. 판소리 속 비합리적인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그때의 신분제는 한참 전에 폐지되었다. 이제 제도적으로 계급을 기준 삼아 사람을 차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돈이 최고 가치인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는 여전히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존재한다.

 

공연에서 ‘거지, 거지, 그런 거지’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거지’는 지금도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나 역시 안 좋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면 습관적으로 ‘거지 같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 ‘거지’라는 단어가 (역할일 뿐이지만) 실제 거지 입에서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거지, 거지, 그런 거지’를 반복하는 거지들의 웃음에서 자조와 해탈의 정서가 느껴졌다.

 

거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1.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 2.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 한 단어에 저 두 가지 뜻이 공존하는 것, 그리고 지금도 두 가지 뜻을 섞어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 내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막바지에 다다르자 공연은 다시 <춘향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이몽룡밖에 모르던 춘향은 원작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다.  춘향은 작품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인물이다. 권선징악의 주제가 지배적인 전통 서사에서 춘향은 나쁜 짓을 저지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춘향이 기생의 딸, 신분이 낮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딴소리 판>에서 다룬 판소리 중에 <춘향가>가 가장 가시적으로 신분제를 드러내기 때문에 처음과 끝을 장식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공연장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끝나고 손뼉을 치는 내 얼굴도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에 관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기분은 조금 심각하다. 수많은 전통 서사에서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하게 희생을 강요받았던 인물들이 계속해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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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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