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책만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 문장의 일

글 입력 2019.11.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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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 모두가 감탄할 만한 대단한 문장을 쓰고 싶다. 그런 문장들로 한 권의 책을 완성하고 싶다. 그 책 표지에 당당하게 내 이름을 올리고 싶다. 독자들은 내 책을 읽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곧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 그렇게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어 작가 지망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강의하고 싶다. 사후에는 고전의 반열에 내 책을 올려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

 

나도 안다. 헛된 꿈이다. 처음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어린 시절, 내게 글쓰기의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었다. 책을 읽으면 나도 언젠가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책 속의 문장과 내가 공책에 끼적인 문장이 어딘가 다르다는 건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바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책에서 뛰어난 문장을 발견할 땐 ‘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지?’라는 경외심이 일었고, 그와 반대로 내가 글을 쓸 땐 ‘대체 나는 왜 이런 문장밖에 안 떠오르는 거지?’라며 자책했다. 훌륭한 책을 읽거나 전문가로부터 수업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지만, 실전에서는 항상 절망적인 마음으로 고개 숙인 채 무기력하게 키보드를 두드려야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옛날에 쓴 처참한 수준의 글이었다. 그것을 보면 그래도 내 글 실력이 늘긴 늘었구나,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어볼 수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전문분야가 있다. 누군가는 노래를 잘 부르고 누군가는 연기를 잘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군가는 프로그램을 잘 만든다. 나는 그중에서 왜 하필 글쓰기의 분야에 뛰어든 걸까. 어떤 분야든 전문가의 경지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글은 한글을 안다면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그 과정이 험난하다. 간혹 SNS에 지인들이 쓴 글이 올라오면 뛰어난 필력에 감탄하곤 한다. 그럴 때면 대체 나는 무슨 전문성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어 자괴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글을 잘 쓰고 싶다. 아무리 자책감이 들어도 글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내세울 만한 다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재밌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지겹게 하는데도 질리지도 않은 걸 보면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글쟁이다. 그런 속된 글쟁이에게 나타난 한 권의 책 <문장의 일>은 한 줄기 동아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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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문장의 일>을 읽겠다고 결심했을 때 내 마음은 상당히 불순했다. 이 책만 읽으면 당장이라도 더 나은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글이라는 게 음식과 같아서 그대로 표현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적절한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주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그 그릇에 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최근 문장과 관련된 강의를 들으면서 그 어려움은 더욱 배가 되었다. 그렇기에 ‘누구나 독자이자 작가인 때, 읽고 싶은 문장을 쓰는 법’이라는 소개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의에 찬 상태로 책을 펼쳐 1장 ‘왜 문장인가?’를 읽었다. 첫 장에서부터 시중에 넘쳐흐르는 글쓰기 비법서와 달리 오로지 문장에만 집중하는 이 책의 정체성의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래, 글은 결국 문장의 조합이지. 책에서 설파되는 문장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책장을 넘겼다. 어서 좋은 문장을 구사할 비법이 나오길 바라는 조급함과 함께.

 

2장 ‘스트렁크와 화이트에게 답이 없는 이유’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글쓰기 비법서를 비판하면서 문장에 대해 A부터 Z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러 품사나 행위자와 행위 등의 개념이 언급되는 걸 보며 아주 오랜만에 영어 교과서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읽는 글도, 쓸 글도 모두 한글인데 이런 영어 문장이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약간 들었지만, 최대한 저자를 믿고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3장 ‘생각(내용)은 중요하지 않다’에선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세상에.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니. 대단한 필력은 없지만, 독자들에게 전할 진심만 충분하다면 된다고 믿었던 내 순진한 (편의적인) 생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 장 한 장마다 나를 뛰어난 작가로 만들어줄 구원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느끼는 건 자괴감뿐이었다. 한 문장에 대한 저자의 집요한 분석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내 감상과 글쓰기를 원망했다. 책에서 전달하는 가르침을 모두 흡수해야지, 라는 다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4장, 5장, 6장… 책장을 아무리 넘겨도 이 책을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엔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이 책을 읽고 글쓰기 실력을 올리고 말 것이라는 조급함이 떠나간 자리를 다양한 문장을 접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부류의 책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저자의 말을 따라 내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스스로 그 강박에 나를 가두었다. 강박의 굴레에서 조심스레 발을 꺼내자 그동안 놓치고 지나갔던 책의 매력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내게 있어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아주 많은 명문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독자가 일부 발췌된 명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까 봐 저자의 깊은 분석까지 함께 담았다. 어떤 문장을 읽을 땐 긴장됐고 어떤 문장을 읽을 땐 감동적이었다. 그 긴장과 감동은 작가가 어떻게 독자한테서 감정을 이끌어내는지에 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더욱더 깊어졌다. 8장과 9장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부분에선 완전한 감상자의 태도로 대가들의 문장에 흠뻑 취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에 새삼 감탄했다. 교수이자 작가인 사람에게 그런 독서량은 놀라운 것도 아니지만, 책 속 수많은 인용은 초라한 독서경력의 나에겐 몹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방대한 독서를 독자와 공유해준 그가 고마웠다. 나는 그를 통해 조지 엘리엇을, 거트루드 스타인을, 필립 로스를, 윌리엄 포크너를 만날 수 있었다. 극히 일부일지라도 위대한 그들의 글은 잠시나마 내 마음에 머물러 큰 파동을 남겼다.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내 글쓰기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다. 솔직히 한 권의 책으로 실력 향상을 기대한 것 자체가 도둑심보였다. 그래도 실망스럽거나 허탈하진 않다. 나는 글을 좋아하고, 그 글을 이루는 문장을 사랑하는 인간이란 걸 새삼 깨달았으니까. 그 애정을 토대로 주의 깊게, 지속해서 읽고 쓴다면 언젠가는 향상되겠지, 라는 작은 낙관도 생겼으니까.

 

결국 <문장의 일>이 알려준 좋은 문장을 쓰는 법은 답이 정해진 공식이 아닌 깊이 있게 분석하고 읽을 수 있게 하는 문장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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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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