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유를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Part 2 - "페르소나"로 보는 콘텐츠제작에 대한 젠더문제 인식 [영화]

<페르소나> 중 「러브세트」, 「썩지않게 아주 오래」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19.11.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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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Opinion] 아이유를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Part 1 - 문화콘텐츠와 비평의 의무 [문화전반]과 이어집니다.

* 글을 읽기 전 '아이유를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Part 1'과 <페르소나>를 감상하고 오시길 권장합니다.

* 본 분석글에는 작품의 내용(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러브세트」 - 촬영 기법과 메타포를 중심으로



러브세트 테니스.jpg

 

 

「러브세트」는 기본적으로 테니스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테니스를 선택한 이유는 테니스의 독특한 점수 계산 방식 때문일 것이다. 테니스에서 한 게임을 따내기 위해서는 4포인트를 따야하는데 이때 4개의 포인트를 각각 0(러브), 15(피프틴), 30(써티), 40(포티)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 선수가 4포인트를 따낼 때까지 포인트를 따지 못해 4(포티): 0(러브)로 게임을 내줬을 때 ‘러브세트’라고 부른다.

 

러브세트라는 제목은 일차원적으로 보면 이 에피소드에서 아이유가 상대 역(배두나)와의 테니스에서 러브세트로 게임을 내주기 때문이다. ‘0 = 러브‘로 표현하는 테니스의 재밌는 점수계산법은 '테니스 = 사랑’이라는 메타포로 활용되기 좋다. 이경미 감독의 본 작품에서도 테니스는 사랑 내지 성관계로 은유된다. 그리고 촬영 기법과 연출, 미장센, 몽타쥬 등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오프닝.jpg

 

 

작품의 오프닝은 첫 쇼트에서 아이유가 자두를 씹는 입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성욕과 식욕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비속어이기는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은연중에 이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을 ‘과일을 (따)먹는다’는 것과 동일하게 ‘(따)먹는다‘고 표현한다.

 

 

복숭아.jpg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도 복숭아가 여성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활용되며 배우 하정우가 과즙이 터지는 복숭아를 먹는 장면을 은유적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복숭아는 여성, 특히 둔부를 상징하는 요소로 쓰인다. 자두는 복숭아가 가지는 클리셰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주한 변칙적인 형태의 성적 욕망에 대한 은유로 해석된다. 이어서 다음쇼트는 아이유가 아빠와 두나의 테니스를 바라보며 불만족스럽게 자두를 씹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의 사례를 참고하면 이 장면은 성적 욕망에 대한 불만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 <페르소나>에서 아이유가 자두를 깨무는 행위도 <아가씨>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성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까? 흔히 과일을 먹는 메타포는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해보자. 아이유가 이런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아빠와 두나의 테니스이다. 그런데 이때 들려오는 소리는 일반적인 테니스를 할 때 들릴법한 소리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 마치 성관계시의 신음소리를 연상시킨다. 작품은 테니스를 성관계의 은유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아이유는 왜 둘의 사랑(내지는 성관계)를 바라보며 둘의 관계에 불만족을 표출할까? 아빠와의 테니스를 마친 후 아이유는 “저 여자랑 결혼하지 마. 아빠”라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빠를 뺏어가는(결혼하는) 두나에게 질투를 느끼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아이유와 아빠와 테니스는 순조롭지 않았다. 테니스를 좀 치려고 하면 네트에 걸리고, 또 네트에 걸린다. 사랑 내지 성관계로 은유되는 테니스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그런 아이유에게 두나는 다가와 “나랑 한 판 할래?”라고 말한다. 이 역시 ’테니스=성관계’를 뜻하는 중의적인 대사이다. 둘은 아빠와의 관계를 두고 내기를 하는데 두나가 아이유에게 패배조건으로 ‘네 남자친구랑 결혼‘할 것을 내세우자 아이유는 지나치게 반발한다. 남자친구가 아님을 해명하기 위해 반발한다기에는 어딘가 지나쳐 보인다. 이건 단순히 재미요소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불필요하게 삽입되는 장면은 없다(없어야한다). 불필요해 보이더라도 항상 그 안에 감독의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화장.jpg

 

 

아이유는 테니스(=성관계)를 시작하기 전 화장을 고친다.

 

 

베드신 연출.jpg

 

 

곧이어 둘의 테니스를 보여주는 촬영 기법이 바로 이 작품의 묘미인데, 단순한 테니스를 보여준다기엔 불필요해보이는 앵글이나 구도로 촬영한 장면이 많다. 이러한 촬영기법은 ‘테니스=성관계‘라는 은유를 확정짓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둘의 숨소리와 신체 일부를 감각적으로 담아내는 이 카메라 연출과 흔히 베드신을 연출할 때 사용되는 기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유는 굉장히 서툰 테니스(성관계)를 한다. 두나는 속옷 안쪽에서 공을 꺼내며 그런 아이유를 고혹적인 몸짓으로 유혹한다.

 

 

유혹.jpg

 

 

오프닝 시퀀스의 자두를 깨무는 장면은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그것도 둘의 테니스(성관계)가 점점 달아올라 절정에 이를 때쯤 테니스를 치는 장면과 교차 편집되는데 이것은 테니스의 성적함의와 자두의 성적함의를 서로 상호보완해주는 증거가 된다.

 

 

아이유 복숭아.jpg

 

 

게다가 아이유의 다리를 의도적으로 잡아낸 쇼트에서 아이유는 발목까지 피가 흘러내려와 있다. 눈이 빨개진 상태로 다리사이에 피를 흘리는 모습은 여성의 첫경험을 상징한다.

 

 

발목 피.jpg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러브세트」는 일종의 퀴어서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유의 성적지향을 동성애로 읽으면 앞에서의 제기한 질문들에도 나름의 답을 달 수 있다. 아빠와의 테니스(사랑 내지 성관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남자친구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 지나치게 반발한것도 설명이 된다. 아이유가 두나와 아빠와의 관계의 불만을 느끼며 반대했던 이유도 사실은 두나에 대한 질투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에 아이유는 친구(남자)에게 두나를 꼬셔달라고 제안한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아이유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처음부터 자각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표면서사가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사랑대결’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겠지만 이야기 내부에서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뭔지 모를 욕구 불만을 겪던 아이유의 모습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노력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아빠와의 관계가 이런 사실을 방증한다. 그래서 마지막 대화에서 “아니.. 그게 아니고”라고 말을 흐리는 모습은 성적 지향의 자각을, “감사합니다”라는 대사는 막연한 욕구불만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자각시켜준 두나에 대한 감사인사를 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과일을 먹는다는 행위가 일반적인 성적 욕구를 함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여성을 향해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설명이 된다. 자두를 먹은 인물은 총 세 명으로 아이유, 아이유의 친구, 두나이다. 아이유의 친구는 여성(아마도 아이유)를 좋아하고, 두나는 양성애를 자각하고 있었으므로 평온하게 자두를 먹지만, 아이유는 자신의 성적지향을 아직 자각하지 못했으므로 욕구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러브세트」는 점수 차 뿐 아니라 러브(성적지향)을 자각한다는 의미에서 러브세트이다.

 

 

 

「썩지않게 아주 오래」 – 캐릭터를 중심으로


 

임필성 감독의 「썩지않게 아주 오래」는 아이유를 독특한 캐릭터로 형상화시킨다. 작품의 오프닝은 제목 중 ‘오‘의 ’ㅇ’으로 고양이자세로 요가를 하고 있는 아이유를 동그라미 치며 ‘collector’라고 소개한다.

 

 

콜렉터.jpg

 

 

그녀는 무엇을 수집하는 걸까. 고양이 자세는 보통 ‘후배위’를 연상시키므로 성적인 함의를 가진 상징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양이는 중세 이후로 사악한 존재 내지는 이상한 힘을 가진 존재로 형상화되며 전통적인 마녀와 함께 등장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아이유는 마녀가 아닌 ‘팜프파탈’의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파악 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능력, 사람을 파멸시키는 불길함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고양이의 이미지와 연결될 여지가 있다. 이처럼 오프닝에서는 고양이를 통해 성적인 함의와 불길함을 가진 캐릭터, 무언가를 수집하는 캐릭터로 암시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유는 남자의 ‘심장(마음)’을 수집해 ‘썩지않게 아주 오래’ 보관하는 팜므파탈의 캐릭터이다.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팜프파탈은 저항할 수 없는 치명적인 관능성으로 남성들을 성적으로 종속시킬 뿐만 아니라 불행을 야기시키는 악녀의 이미지”이며 하나의 개념적 정의로 내리기는 불가능하나 ‘첫째, 평범한 여성과 구분되어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둘째, 남성 캐릭터를 매혹시켜 삶에 치명적이고 중대한 변형을 일으키고 셋째, 사회에서 논쟁거리를 만든다’고 분석된다. 문제적인 것은 팜프파탈이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형성된 차별적인 담론이라는 점이다. 팜므파탈은 ‘남성보다 능력이 우월하거나 도전하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차별의 시선으로 정숙한 여성과 대비시켜 부정성을 강조하고 징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티프로, 유혹-통찰-징벌/파멸의 구조로 이뤄지기도 한다’고 선행 담론들은 정리한다.

 

 

잘린 목.jpg

 

 

「썩지않게 아주 오래」에서는 팜프파탈 캐릭터가 어떤식으로 형상화되는지 살펴보자. 여자는 오랫동안 사라졌다 나타나는데, “젊은 애들이 마약하고 섹스하는” 영화의 배경인 피피섬에 남자들과 가서 요가수트라(카마수트라)를 하고 왔다고 말한다. 파도에 몸을 맡기니까 설탕이 된것같아 짜릿하고 흥분됐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남자는 이해하는 척 하지만 목이 짤린듯한 기분을 느낀다. 여자의 눈(클로즈업)과 남자의 내면 장면을 연달아 편집하는 몽타주는 여자가 남자의 속마음을 모두 꿰뚫어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람.jpg

 

 

남자는 파혼까지 하고 여자를 만나고 있음에도 여자는 말도 없이 연락이 안 되거나, 데이트 내내 남자를 지겨워하고, 심지어는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기도 한다.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행을 야기시키는 전통적인 팜므파탈의 모습이다.

 

또, 둘의 과거 회상은 조금 다르게 기억되는데 남자는 둘의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반면, 여자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둘의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둘의 대화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남자는 여자를 남자보다 우월한 존재로 인식한다. 생명의 잉태 가능성이나 생리(예수님처럼 한 달에 한 번 피를 흘리는), 등의 이유를 들며 아름다고 강하고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존재인 여성이 신에 가깝다고까지 서술한다. 이건 여자 앞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은 그의 위선이다.오랫동안 사라졌다 나타난 그녀를 이해하는 ‘척’하는 그의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위선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을 ‘전통적인 관계에 매어두려는 존재’이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가부장으로 형상화된다. 작중의 여자가 이를 간파하지 못 할리 없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질린다. 여자는 요가의 신 ‘시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요가의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물속에서 호흡 없이 오랫동안 있을 수 있고 물고기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자유롭고 영원해지기를 원한다. 이는 가부장으로부터의 탈출을 형상화한다. 추억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남자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대한 긍정을, 냉소적인 여자는 회의와 탈출 욕망을 느낀다고 해석된다.

 

 

고양이눈.jpg

 

 

남자는 이제 떠나려는 여자를 붙잡고 드디어 화를 내기 시작하는데, 여자는 시큰둥하다. 남자는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지만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참사랑(마음)을 꺼내서 보여달라고 말한다. 작품의 절정인 이 부분에서 오프닝에 등장했던 ‘고양이’의 상징이 등장한다. 여자의 눈이 고양이처럼 물들자 그 눈을 바라보면 남자는 자신의 심장을 뜯어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는 심장을 ‘썩지않게 아주 오래‘ 보관하겠다며 떠나가고 처음에 선물받은 상자에는 남자의 내면세계가 들어있다. 이제 이 결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이유 심장.jpg

 

 

작품은 전형적인 팜프파탈의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자가 파혼하고 자신에게 매달리도록 만든 뒤 심장을 뜯어가는 형태로 남성을 파국으로 이끈다. 앞선 발화를 통해 이 여성은 가부장에 대해 냉소적이고, 탈출 욕망을 느끼는 캐릭터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 캐릭터는 억압적이고 고리타분한 가부장의 기대를 전복하고 탈출하는 통쾌한 역할로 해석해도 될까? 결말의 상자가 보여주는 것처럼 가부장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농력하는 존재 말이다. 게다가 유혹-통찰-징벌/파멸이라는 팜므파탈의 구조에 따라 파멸하거나 징벌받지 않고 유유히 떠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해석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결말부에서 그녀는 남자가 심장을 내놓도록 직접 관여하는 것으로 그려지고(눈동자), 여러명의 심장을 수집하는 상습범(collector)로 그려진다. 작품 속에서 단죄받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팜므파탈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에 대해 반기를 들어왔고, 순진한 남자(가부장으로 형상화되는)를 파국으로 이끔으로써 지탄받는 역할을 부여받는 캐릭터이다. 팜므파탈이 가부장적 차별의 시선에서 등장하게 된 문제적인 캐릭터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고 「썩지않게 아주 오래」는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므로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페르소나> 중 나머지 두 편(키스가 죄, 밤을 걷다)에 대한 해석과 결론은 Part 3에서 이어집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 김인규.jpg

 

 

[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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