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비우고 채우는 차(茶)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11.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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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겨울엔 찻잔을 든다.


 

겨울이 찾아왔다. 매서운 바람에 끝이 시린 손과 발. 체온이 내려가는 이유인지 마음까지 덩달아 허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시린 날씨가 찾아오면 차에 저절로 손이 간다. 나는 차 뿐만 아니라 마시고 즐기는 그 시간 역시 사랑한다. 이런 나에게 다시 돌아온 ‘본격 차 즐기기 계절', 겨울을 맞이하여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요즘 내 손에는 매일 텀블러와 찻잔이 들린다. 커피 공화국으로 변해버린 대한민국에서 차가 웬 말인가 싶겠지만, 심심치 않게 우리 주변에는 차를 즐기는 사람이 보이곤 한다. 그들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차를 마실까?

 

어릴 적 즐겨보던 드라마에는 일본식 차 의식인 다도를 하는 인물이 있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았던 다도의 모습은 고결하고, 정갈하며, 담백해 보였다. 왠지 차를 즐기면 멋진 사람인 듯 선망의 대상처럼 보였다. 그 후 중학생이었던 나는 찬바람이 불던 이른 아침,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엄마가 가져다준 꽃잎이 생생한 국화차를 마시곤 했다. 교실의 소음이 채우기 전, 국화차와 함께 늘 마음의 평온을 다졌다. 그렇게 차와 함께 겨울을 나던 어린 나의 모습도 선명히 남아있다.

 

하지만 관심이 곧장 취미로 연결되지 않기도 한다. 지난 몇 년의 20대는 커피로 인한 ‘카페인’의 늪에 제대로 빠져버렸다. 지친 일상 속에서 한 잔 값의 지불은 몇 배의 안온한 마음은 선사했다. 엄격히 따지자면 에스프레소는 본디 그저 ‘쓴맛’이다. 자신에게 산미가 느껴지든, 고소함이 느껴지든 에스프레소가 본디 단 음식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것을 희석해 만든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나는 ‘맛있다’는 이유로 매일 빠짐없이 마셨으니 그야말로 중독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몸에 과한 쓴맛이 맴돌면 계절과 상관없이 나는 다시 차를 찾았다. 물을 뜨겁게 데워 티백을 우리고 몇 분을 기다려 조금씩 맛보는 차는 내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오히려 커피보다 더 나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기도 했다. 음료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의미를 넘어, 내게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정신적 휴식이며 지친 나를 달래주는 일종의 위로의 행위였다.

 

 

 

동양과 서양의 차 문화


 

이렇게나 커피 중독자였던 나도 이따금 즐기는 차를 즐기면 평온한 마음에 휩싸여 커피를 줄이고 더욱 차를 즐기고자 결심을 하곤 했다. 차는 커피만큼이나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차’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내게 두 가지로 존재한다. 동양식 차 문화와 서양식 차 문화다. 동양식 차 문화라고 하면 왠지 대나무 숲 가운데서 ‘무위’를 추구하며 명상하는 마음으로 마셔야 할 것만 같고, 서양식 차 문화라고 하면 꽃 장식이 화려하고 금박 테두리가 예쁘게 감싼 찻잔에 홍차 한 잔을 마셔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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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맛차차'에서 마신 우롱차

 

 

어느 문화든 세계 각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차를 즐기고 있음은 사실이다. 먼저 동양식 차 문화는 기원전 2700년 경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도자’ 문화와 함께 어우러져 견고한 생활양식 중 하나였던 중국의 차 문화는 지금까지도 일상생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여름에 따뜻한 차를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기름기 많은 음식이 상에 자주 오르는 중국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4~5세기 경, 차는 양쯔강 유역의 주민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현대적 표기인 ‘차(茶)’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는데, 분명 고대의 도(荼)가 와전된 것이리라. …. 그러나 이 시기에 차를 마시는 방식은 지극히 원시적이었다. 잎을 쪄서 절구로 찧어 떡으로 빚어서는 쌀이나 생강, 소금, 귤껍질, 향신료, 우유, 때로는 양파까지 넣어서 함께 삶는 그런 방식이었다. …. 그렇게 조잡한 방식으로부터 차를 해방시키고 또 이상적인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당 왕조의 천재들이 필요했다. 8세기 중엽에 등장한 육우(陸羽, 727?~803?)는 차의 개조(開祖)다. 육우는 불교와 도교, 유교가 서로 통합을 모색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다신교적인 그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에 보편적인 것이 투영되어 있음을 알게 하였다. 시인이었던 육우는 차 마시는 일에서 만물을 지배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조화와 질서를 보았다. 육우는 탁월한 저작 ‘다경(茶經)’에서 차의 규범을 체계화하였다. 그 후로 육우는 중국의 차 장사꾼들 사이에서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책 ‘차의 책’, 오카쿠라 텐신 저)

 

 

이렇게 역사적 사실로도 남아있는 차는 현재는 중국을 넘어 동양 각국에서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차 문화를 낳았다. 동양은 특히 발효를 하지 않거나 반만 발효한 차를 더욱 많이 마신다. 대표적인 예로 녹차와 우롱차가 있다. 현재 동양식 과자 중 ‘말차’를 넣은 형태도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런 확산은 일본의 차 문화 ‘다도’로 변형되기도 했는데 다도 혹은 차도란 말은 본래 일본에서 유래된 말이다. 검도(劍道), 유도(柔道), 서도(書道) 등에서와 같이 기술성과 정신성이 함께 요구되는 분야를 ‘도’라고 칭하는 것은 일본 문화의 한 가지 특색이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보며 선망했던 마음도 다도에서 느껴지는 ‘정신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반면 서양식 차 문화는 비교하자면 최근의 일이다. 1600년대 초, 식민지 개발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전 세계로 퍼지고 유럽의 상인들이 유럽으로 대량의 찻잎을 가져오며 시작된다. 그 당시 특히 영국은 한창 식민지에 영향력을 넓히고 강력한 권력을 가지며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에 영국이 성장함에 따라 영국식 차 문화가 퍼지고, 차에 대한 관심도 유럽과 전세계적으로 퍼져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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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무늬 장식의 찻잔

 

 

이제 유럽의 차 문화를 말하자면 영국을 빼놓을 수 없다. ‘애프터눈 티’와 함께 곁들이는 작고 우아한 디저트들은 영국을 떠올리는 생각나는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다. 그들은 동양으로부터 들여온 차를 그들의 문화로 승화시켜 또다시 세계로 퍼트렸다. 차와 커피의 등장은 사치를 일삼던 유럽인들이 교양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함께했다. 유럽의 소위 ‘교양인’들은 차를 마시며 살롱과 카페 문화를 즐겼고, 그 속에서 피어난 대화의 시간이 그들의 문화로 단단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유럽인들은 동양식 불발효차와 달리 발효를 한 ‘홍차’의 형태를 즐겨 마신다. 우리가 지금 익히 즐기고 있는 ‘얼그레이’와 같이 붉은색을 띠는 차가 바로 발효를 시킨 홍차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고,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향긋한 얼그레이와 담백한 스콘의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유럽에서 차가 귀족층에게 퍼지게 된 이유는 귀족 여성들이 차와 함께 들어온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다기들에 마음이 빼앗긴 것이다. 이처럼 아직까지도 홍차를 마실 때는 화려한 꽃 장식이나 금박 테두리의 멋진 주전자와 찻잔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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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함께 곁들이는 작은 디저트

 

 

영국 하면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애프터눈 티’ 문화는 점심을 간단하게 먹던 그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점심과 저녁 사이 허기가 진 것을 달래기 위해 차와 간단한 디저트를 먹던 것이 귀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고급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카페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애프터눈 티’ 세트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차와 디저트들이 함께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스콘과 케이크 조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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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휴식, 차를 마시는 시간


  

서로 다른 이미지의 차 문화를 가지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든 차는 사랑받고 있는 문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 역시도 현재 향긋한 얼그레이부터 팥을 우린 고소한 차까지 다양하게 매일 즐기고 있다. 똑같이 티백 안에 들어있지만 각기 다른 맛을 지니고 향 또한 달라 재미를 붙인다면 차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또한 내가 차를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휴식에 있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에 둘러싸여 있는 기간이 적지 않다. 몸은 쉬어도 정신은 쉬지 못하고 체한 듯 답답한 시간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마음의 여유를 만들고 한 숨을 고르며 내면의 휴식을 취한다. 차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삶은 그저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이다. 커피 한 잔을 덜 마시고, 잠깐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에 물을 끓여 잎을 우리면 될 뿐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행위는 쉴 틈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상 속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하고 몇 시간이 잔잔하게 지속되는 기쁨과 여유를 주니 큰 존재로 다가온다. 차를 마시기 위해 어울리는 컵을 고르는 행위마저 내게는 즐거움으로 느껴진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명상과 사색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런 인생의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뜨거운 물에 잎을 우려내 마시는 행위일 뿐이지만, 차로 휴식을 취하고 그 순간을 음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효리네 민박’을 통해 슈퍼스타의 삶에서 물러나 자연과 동물과 함께 삶을 즐기는 이효리의 모습이 많이 등장했다. 그녀는 차와 요가를 통해 기복이 심했던 자신을 달랬다고 한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차는 늘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쉼을 주는 존재였다. 차는 늘 정직하게 우리네 마음을 가라앉힌다.

 

어떤 차든 좋다.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골라 오늘 밤 작은 컵에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하루를 보내든 결국 오늘도 수고했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스스로를 위한 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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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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