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안은 가라앉고, 안심은 떠오르는 날들이 되길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도서]

글 입력 2019.11.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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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빠진 문장이지만, 어쩌면


 

늦지 않았다는 말이 귀에 앉은 딱지처럼 지루했다. 흔해 빠진 ‘자기 계발서’가 게으른 나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들려 사탕 발린 위로를 하는 기분이었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엇인가 시작할 때 행동의 관성을 가지기까지 밀려오는 불안감과 마음의 휘청거림은 나에게 늘 높은 문턱과 같았으니까.

 

휴학 생활을 2년 했던 나는 작년부터 이따금 밀려오는 불안감이 한 편에 존재했었다. 졸업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만의 세상과 내면의 정원을 가꾸듯 삶을 꾸려가고 있는 모양새지만, 복학을 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그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늦은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지금이 큰 세상의 시작일까, 아니면 그저 뒤처지는 20대 중 한 명일 뿐인 것인가.

 

여러 복잡한 마음이 맴돌 때 그 기점으로 시작을 한 일도, 그저 계획에 머문 일도 있다. 어느 것이 더 많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2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래도’ 한 것에 대해서 저마다의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디딤돌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조언과 멋진 문장들을 흔해 빠진 위로의 글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난, 사실 그것들의 진정성을 알면서도 행동하기 두려웠기에 그 말들이 지루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욱 마음의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소개를 처음 보고서는 더욱.

 

 

 

결코 늦지 않았던 할머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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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는 ‘모지스 할머니’의 자서전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모지스 할머니’였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그녀가 76세에 처음 붓을 들어 단독 전시까지 여는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소개말 때문이었다. ‘76세라고?!’ 나이부터 머리에 박혔다. 아직 젊음밖에 누려보지 못한 나는 76세라는 나이가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 어떤 감정을 느낄지, 어떤 마음으로 살지, 어떤 세월을 겪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이이다.

  

그런 76세라는 나이에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린 지 5년 만에 단독 전시로 데뷔를 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등장하며, <타임>지 커버까지 장식했다. 미국인이 사랑한 ‘모지스 할머니’ 그녀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그녀가 들려주는 삶과 시도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20대 중반인 내가 이토록 많은 생각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이런 나에게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런 궁금증들은 이 책을 펴게 했다. 책은 마치 ‘빨간 머리 앤’과 같이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듯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능동적이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멋진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의 자서전에서 얻었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책은 작가 ‘모지스 할머니’가 직접 쓴 자서전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최근 이야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의 기억이 담겨있고, 이야기의 사이에는 할머니의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표지와 같이 따뜻한 분위기의 마을과 일상을 잘 담은 풍경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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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삶은 그 시절을 살았던 여성의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며 살고 가족을 보살피고 일을 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갔다. 가족들과 남편과 자식과 늘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았지만, 할머니의 삶은 오랜 시간 그림과는 먼 일들이 삶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묘사하는 세상은 삭막하기보다 다채롭고 정겨우며 포근한 느낌이 든다.

 

 

봄이 되면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이른 봄, 아직 눈발이 흩날릴 때 숲으로 가서 그 해 처음으로 피어난 아르부투스 꽃을,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그 꽃을 찾아다니거나 갯버들을 꺾던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그럴 때면 하느님의 뜻 가까이, 대자연 가까이에 다가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요. 생각해보면, 대자연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고 아름다움과 평온을 간직한 곳이며, 삶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해지기 위해 간절히 가고픈 그런 곳이 아닐까요.

 

 

내가 그녀의 글에서 동화 속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연륜에서 나오는 넉넉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타고난 성품일까. 그녀의 성격과 어린 시절을 우리는 묘사로써 밖에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직접 그려낸 어린 시절을 보면 가족과도 이웃과도 정이 깊게 오가는 사이였음이 느껴진다. 또한 그녀는 늘 사랑이 가득했다.

  

 

나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신나게 놀 수 있을 때 놀게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일들이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되니까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우리 집은 항상 떠들썩하고 행복한 집이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하고 똑같아서, 그 틈에 섞여 재밌게 놀았습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삶을 보듬고 있던 그녀가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녀는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인해 실을 도무지 자수 바늘 구멍에 맞게 끼울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대신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위해 붓을 들게 된 것이다. 어쩌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비관적으로 살 수도 있었을 나이다. 하지만 그 계기는 그녀를 많은 사랑 받는 화가로 만들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늦은 나이처럼 보이는 70대라는 나이에 말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세요. 때로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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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시선과 능동적인 삶을 향한 자세, 그리고 시작하는 용기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삶의 소중함과 마음의 부드러움을 일깨워주었다. 추운 겨울,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만큼이나 요즘의 현실이 냉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 이웃과의 교류가 없고, 가족과의 대화 단절이 만연하며, 현대인의 삶은 우울을 동반한다. 꿈과 희망 대신 오늘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우리에게 백 년을 가까이 살아온 ‘모지스 할머니’의 삶과 글과 그림은 희망을 주고 매서운 바람 속에서 다시 일어설 온기를 준다. 그녀의 도전은 아직 젊음의 한 가운데에 선 내게 무엇이든 시작할 용기를 심어준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들어가며 쓴 글의 마지막 문단을 공유한다. 처음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 좋아하는 문장들이다.

  

이 작은 책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찾기를 바랍니다. 침착하고 태연하게 매일을 맞이하시길, 불안은 가라앉고 안심은 떠오르는 나날이 되시길, 모지스 할머니의 글과 그림을 실력 없는 솜씨로 전하며 할머니의 영혼이 수많은 이들에게 가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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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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