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앉아서 우주 여행, 연극 "우리별"

손, 잡아도 돼?
글 입력 2019.11.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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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_포스터.jpg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빛이 생기고,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행성이 생기면서 우주가 만들어진다. 우주 안에 우리 은하가 만들어지고, 태양계가 생긴다. 태양계 안에 지구가 있고, 그 지구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 태양계, 우리 은하, 우주, 모두가 우리 별이다.

 

연극 <우리별>은 이런 우주의 탄생과 별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 관해 말하라고 할 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별>에 대해 설명하려고 해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몇 분에 우주의 탄생과 소멸, 삶을 압축해 놓는가 하면 이를 길게 늘이고,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여전히 짧게 압축해 풀어나간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과 맞닿는다. 랩과 라이브 DJ라는 실험적인 형식을 취해 공연 시간 내내 속으로 들썩이게 만든다. 감동적이기도 하다. 달님이와 지구가 긴 시간을 지나 할머니가 되었을 때, 둘의 삶을 알아버려 자꾸만 눈물이 났다.

 

당최 무슨 말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번 본 사람은 매료된다. ‘우리별 앓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렇다 보니 뭐라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줄거리나 어떤 극인지 알릴 방법이 없다. 대신, 생을 회상하는 사람처럼 인상적인 부분을 읊어보기로 한다.

 

 


 

 

알레그로, 빠르게



앞서 말했듯 <우리별>은 랩이라는 실험적 형식을 취하는 연극이다. 랩 하면 비트에 몸을 맡겨 라임 가득한 가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왜곡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공연을 보기 전까진 래퍼가 나와 극 사이에 상황을 랩으로 표현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그런 식으로 진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별>의 랩은 조금 달랐다. 리듬감이 톡톡 튀는 대사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다. 다 같이 같은 구절을 반복해 말할 때는 힘이 느껴져 집중하게 되고 모두가 다른 구절을 읊을 때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랩의 가장 큰 단점은 빠르게 진행되는 탓에 걸핏하면 대사를 놓친다는 점에 있다. <우리별>을 보기 전에도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같은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하고, 후에 천천히 풀어주기도 하는 데다가 대사 자체가 삶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이나 상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낯선 단어에 혼란스러운 일이 없다. 신기하게도 같은 음률과 대사를 반복하는데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느껴진다. 한 번 읽은 책과 두 번째 읽은 책이 다른 감상평을 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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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은 크게 세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우주와 공연을 요약하는 랩 부분,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 부분, 별을 보고 있는 사람의 대화로 나누어진 부분이다. 세 장면에 모두 랩이 들어가는데, 그중 별을 보고 있는 사람의 대화하는 장면에서 랩의 활용이 재미있다.

 

두 남자가 무대의 꼭짓점에 대각선으로 서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선생과 제자다. 제자는 계속해서 별을 보고, 선생은 제자를 바라본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4초가 지나면 대화를 이어지지만, 서로의 위치가 바뀐다. 아까는 A가 제자가 되어 질문했는데, 삐, 삐, 삐, 삐- 정각을 알리는 4초가 지나면 A가 선생이 되어 답하고, 대답하려던 B는 망원경을 올려 우주를 바라보는 식이다. 대화는 일상 대화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4초 만에 문장을 모두 끝마쳐야 하기 때문인데, 그 덕에 대사에 운율이 느껴진다.

 

제자는 우주에 가고 싶어 하고, 선생은 그런 제자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근데요, 만약에요. 제자가 말한다. 무대 밖의 배우들도 다 같이 외친다. 점점 소리가 커진다. 근데요, 만약에요. 음률이 관객을 압도한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과 과학이 발전하는 것을 효과적이고 집중력 있게 보여주는 데다가,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단 두 마디로 모두 표현한다. 정각을 알리는 4초 비트가 빠지거나 근데요, 만약에요, 라는 말이 반복되어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면 이만큼 효과적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모으기 힘들 것이다.

 

 


나는 지구


 

 

난 지구. 여기는 코스모스 아파트 19단지. 우리 가족은 오늘 여기로 이사를 왔다. 난 태어나서 6억 년간 혼자였는데 이제는 주변이 꽤 떠들썩한 거 같다.

 

엄마와 함께 옆집에 인사를 간다. 나보다 조금 작은 여자애가 나온다. 이름은 달님이. 단짝 친구가 된다. 매일매일 붙어있지만,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조금씩. 우린 언젠가 헤어지는 걸까...

 

 

시놉시스에 적힌 글이다. <우리별>은 우주를 말하는 동시에 지금 나, 내가 있는 공간, 인생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바로 여기 지구가 등장한다. 지구는 행성을 의인화한 지구 안의 아이를 말하면서 지구 그 자체를 말한다.

 

의인화한 지구가 이사를 한다. 세탁기는 베란다에 두고 식용품은 부엌에 놔둔다. 천왕성은 해왕성 앞이고 목성은 좀 더 앞에 두어야한다. 공연은 이렇듯 사람들이 익숙하게 여기는 상황이나 물건을 먼저 표현하다가 뒤에 넌지시 우주의 물건을 데려온다. 일본과 한국의 경기가 벌어지던 텔레비전에서 어느 순간 태양과 지구의 경기가 벌어지는가 하면, 생일 선물을 받은 지구가 망원경으로 자연스럽게 공룡을 발견하기도 한다.

 

옆집 친구인 달님이와 만날 때도 그렇다. 지구의 어머니께서 부모님이 안 계시냐고 묻지 달님은 아무도 없다고 답한다. 아무것도 없다고. 지구가 자신에게 70억이나 있다면서 장난감을 빌려주는 척 닐 암스트롱과 아폴론을 건네준다. 달에 첫 착륙을 한 인류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꼭 아이가 카트에 은근슬쩍 넣은 장난감처럼 우주의 이야기가 놓여있지만 위화감 없이 잘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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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지구가 점점 멀어지는 상황도 인생과 연결한다. 어릴 때 매일 놀던 친구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각자의 공부에 전념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대학생이 되면 지역조차 달라진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 만나는 날이 뜸해지고 시간이 많이 흘러 죽는 날에는 직전에 겨우 만날 만큼 멀어진다.

 

사람의 생활이 그렇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각자의 인생 살기가 바빠 언젠가는 소원해지고 만나는 주기도 점점 길어진다. 달과 지구가 차츰 멀어지듯 사람과 사람도 멀어진다. 연극은 지구와 가족, 그리고 달님을 의인화하며 표현하면서 모든 삶이 곧 지구의 삶이라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쭉 보여지고 있었구나


 

 

죽어가는 내가 보고 있는 거야?

보고 있는 내가 태어나는 거야?

 

태어나는 내가 보고 있는 거야?

보고 있는 내가 죽어가는 거야?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 지구도 죽음을 맞이한다. 텔레비전에서 태양과 지구 간의 경기를 하는 날, 가족은 모두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더는 내일도 없고, 다음 생일도 없다. 지구는 가족들에게 손을 잡아 달라고 하고, 암전된다. 갑자기 불이 켜진다. 해피 버스 데이, 투 미. 다시 탄생이다. 사라진 소리가 나타나고 잃어버린 빛이 새롭게 탄생한다. 소멸과 탄생을 모두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별을 바라보던 제자다.

 

선생은 제자에게 미래를 볼 수도 있고, 과거를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보고 있는 별빛은 이미 죽은 빛이 이제 도착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보는 것이며, 원한다면 언젠가의 너는 별의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선생은 아직 과거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주에 빛나는 별을 망원경으로 보는 행위는 별의 과거를 보는 일이다. 선생이 죽어가는 지구에게 전화를 건다. 언젠가 그쪽으로 가서 도와주겠다고. 결국 제자는 별의 공간에서 지구와 만난다.

 

쭉 보고 있었구나. 보여지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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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지구와 달님은 타임캡슐을 묻는다. 그때, 지구는 세상의 빛을 모두 담아 넣는다. 아침 햇살, 저녁노을, 반딧불과 상영되는 영화관에서 나오는 빛 등. 지구가 소멸하기 전에 달님은 타임캡슐을 연다. 달의 몸에서 지구에게 있던 빛이 퍼져나간다. 사라지는 지구의 빛이 달에게 간다. 반짝이는 달은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 지구의 과거를 기억할 것이다. 탄생과 죽음, 빛과 어둠, 소음과 무음. 모든 것은 둥글게 반복된다.

 

한 공연에 지구와 우주의 모든 것을 담으라는 과제를 낸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우리별>은 모범적인 과제다. 지구의 시간, 공간, 빛, 소리, 물건, 행동이 모두 담겨있다. 가족 간의 갈등, 사랑, 죽음과 탄생, 친구와 우정,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호기심과 탐구심.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익숙해지면 즐겁고, 그러다 슬퍼지고 나중에는 감동적으로 변하는 관객의 감정까지 인생과 닮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신기하며 따뜻한 공연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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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단어를 한국에선 유난히 자주 쓴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 공동체 생활을 하던 문화 때문이겠지만, ‘내’가 주는 어감보다 따뜻하게 들린다. 공연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스모스 아파트 19단지, 여기가 우리 집, 우리 은하라고 말하는 지구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깃들어있다. <우리별>을 말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공연 내내 보아온 지구와 달님, 지구의 언니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 선생과 제자까지 모두 우리가 되어 우리 지구에 살고, 우리 은하에 존재한다.

 

언젠가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 지구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구인은 좀 더 외로워질 것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나 역시 모래알만큼 더 외로워졌는데, <우리별>을 보고 나니 외로움이 지워진다. 우리는 이미 늘 같이 있고, 보고 있으며 보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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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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