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화가 할머니의 잔잔하고 포근한 이야기
글 입력 2019.11.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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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조급함을 달고 사는 성격이었다. 성취 욕심이 많았고 이 나이가 되면 당연히 이 정도는 이뤄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정해놓은 형체 없는 틀 속에서 무언의 압박을 느끼며 바쁘게 살아왔다. 목표를 어느 정도 이뤘다 생각할 때 즈음 또 다른 것들이 생기고 또 그것을 쫓다 보면 다른 것들이 생기고를 반복하는 기계적인 삶을 살았고 내 행복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며 감정을 억누르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적어도 올해 봄까지는 말이다.

 

스스로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된다 깨닫고 부담감을 내려놓은 시기는 정확히 올해 봄이었다. 스무 살 이후로 처음 찾아온 아무 소속이 없는 내 신변이 불안함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지레짐작과는 달리 의외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자아 성찰의 시간이 천천히 채워지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정말 나를 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맞는지, 난생처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체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해결하지 못한 채 꼬리에 꼬리를 물며 쌓였던 고민을 한데 모아 부모님께 자문을 구하거나 할머니와 교수님 그리고 나보다 앞선 인생을 살았던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도 보았다. 적절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 서점에 가서 철학책들을 읽었다. 어느 날은 그들이 일궈놓은 삶의 지혜를 모두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무모한 욕심으로 방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동안 책 속에서 파묻혀 지내기도 했던,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내적으로 꽤나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몇 개월이 흘렀다.

 

모지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그때였다. 지금 새로운 길을 시작해도 될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표제어를 내세우며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가 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는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는 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그때의 나는 딱딱한 고대·중세의 철학자와 위인들에게서 조금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잠시 머리를 식혀보자는 생각에 집어들은 모지스 할머니의 책은 표지에서부터 할머니의 포근함이 전해져 한동안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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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모리스 할머니의 삶에 대한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애환을 덤덤하게 풀어낸 감정이 글을 타고 독자인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1860년에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느긋하게, 따뜻한 한잔의 차를 마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듯 잔잔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링컨 대통령의 암살사건, 전쟁 대치 중의 에피소드들,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됐던 사건과 같은 굵직한 역사적인 순간들을 직접 겪으며 본인이 느낀 감정을 그림과 함께 엮어 멋진 책을 만들어냈다.

 

누구나 살면서 느꼈던 것들과 그렇지만 생각을 정립하지 못해 표현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모지스 할머니는 친한 친구에게, 가족에게 말하듯 술술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어려운 용어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가 가능한 문장도 없다. 그렇기에 독자에게 더 포근하게, 친근하게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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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의 글 속에서 기억에 남는 몇 문단을 가져와봤다.

 

 

나는 이모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내가 그리면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나는 나무토막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듬해 여름에는 석판이나 유리창 조각을 구해서 거기다가 그림을 그렸고요. 예쁜 그림들이었어요. 그때 오빠들이 나를 놀리곤 했는데, 내가 ‘예쁜 램스케이프를 그렸다고 자랑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내 그림을 보고는“잘 그렸네!”라고 말해주곤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좀 더 현실적인 분이어서, 내가 그림을 그릴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 P.55

 

사람은 흥분을 하게 되면, 몇 분만 지나도 안 할 말과 행동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벌컥 화를 내버리는 게 앙심을 품고 꽁해 있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습니다. 꽁해 있다 보면 자기 속만 썩어 들어가니까요. - P.193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듭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세상이 달랐어요. 지금보다는 여러모로 더 느린 삶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좋은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더 즐겼고, 더 행복해했어요. 요즘엔 다들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 P.274

 

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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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어른이 되기까지 주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 많았다. 현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만 책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나에게 긍정의 가르침을 전해준 모지스 할머니처럼,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떤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가 된다.

 


[전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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