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딴소리 속 지혜, '딴소리 판'

글 입력 2019.11.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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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흥부의 제비가 가난하다면..?'

'춘향이가 이몽룡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고전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인공은 우리가 지켜야 할 혹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대명사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현재 이 사회에서 그들과 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기 다소 어렵다.

 

우리가 고전 소설을 읽는 이유는 바로 정의, 효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비록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추상적인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에 맞춰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위로 혹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여유 하나 있는 거지 중에 거지’

"딴소리 판"

 

 

포스터.jpg

 

 

본래 거지는 지갑도 없고 내일도 없고 염치도 없는 법. 세상 별거 있나? 놀면 그만, 먹으면 그만, 웃으면 그만인 것을! 가진 거라곤, 마음의 여유 하나 있는 거지, 광대거지들이 풍요 속 빈곤과 공허함에 허덕이는 우리네 삶을 해학적이고 유쾌한 탈놀음으로 시원하게 위로한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비틀어 제 멋대로 놀다면, 보는 이도 어느 새 거지들의 자유로운 몸짓과 마음에 한껏 어우러진다.

 

신명나게 놀아보자! 딴소리 하며 판 벌려보자!

 

- 공연 소개 中

 

 

총 5편의 고전소설을 모아, 현대적인 맛을 가미한 ‘딴소리 판’은 공연 제목과 같이 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판소리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이 공연은 보는 내내 눈과 귀가 즐거웠다. 배우들은 많은 소품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연기와 대사 전달은 총 5편의 이야기 속에서 직접 보고 있는 기분을 주었다.

 

대체로 한국 무용, 전통놀이에 관련된 소품도 최소한이었으며, 원 맨 쇼와 같은 형식으로 표정, 행동, 노래 그리고 춤을 통해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물품들이 최소한의 소품들이었으며, 그것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관객은 비슷한 내용과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면 쉽게 지루함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이 공연은 관객이 보는 내내, 같은 소품이 이번엔 어떻게 쓰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연습사진4.JPG

 

 

‘마음의 여유 하나 있는 거지 중에 상거지’. 이 노랫말을 반복하면서 서사의 내용을 뒤엎는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리고 자신들만의 논리로 고난을 해결해나간다.

 

특히 거지라는 신분이라는 점에서 관객이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느 누가 양반이 정해져 있는 서사나 규칙에 반항하려고 하겠는가. 오롯이 거지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지 집단은 각각의 이야기에서 남녀 간의 사랑과 충절을 막무가내로 지키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 처한 상황에 따라 알맞게 태도를 변화하는 것, 권력자의 행보를 폭로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복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들의 잔꾀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그리고 공감하면서 웃음으로 승화한다. 이러한 반응을 연희집단 The 광대에서 만들어내고자 이 공연을 기획한 듯 했다.

 

우리가 바꾸기 어려운 규칙과 사회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아파하고 쓰러지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조금이나마 그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하여 잠시나마 그것을 해소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 결국 인생은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 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딴소리 판’은 이러한 긴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웃픔(웃음과 슬픔의 신조어)을 선사해주며 아픔을 승화시킨다. 우리는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알 수 있게 되며, 지금 우리가 고려해볼 가치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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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보고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가끔 딴소리도 들어볼 만하겠구나’

‘딴소리에도 지혜가 있구나’

 

맞다, 상황에 따라 잘못된 딴소리가 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 딴소리를 할 때, 잠시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말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내뱉는 말이 단순히 잡소리의 딴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연희집단 The 광대.jpg

 

 

[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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