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1월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블라디보스토크의 순간순간들
글 입력 2019.11.17 05: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VLADIVOSTOK

블라디보스토크


 

가지 않은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카피에 혹하고, 다녀온 사람들은 볼 게 많지 않은 시골 동네라고 하는 곳. 해군기지가 있는 인구 60만의 항구도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 작지만 알찬 관광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나에게 블라디보스토크는 뜻밖의 문화명소였다.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마린스키 극장과 연해주 필하모닉 극장, 그리고 연해주 국립 미술관. 나는 이 중에 필하모닉을 제외한 두 곳에 다녀왔다. 세 시간이 넘는 발레공연을 보고, 두 가지 전시를 관람했다. 하루가 더 있었으면 우수리스크 투어를 가고, 반나절이 더 있었으면 필하모닉에서 음악회를 가고 싶었다.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사이에 문화명소가 쏙쏙 들어가 있었다. 관광지를 다니는 여행객들에겐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풍족한 여행지였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만족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순간들을 소개하려 한다.

 

 

 

1.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마린스키 연해주 극장


 

5.jpg

 

 

인터넷에서 발레 동영상 클립을 본 적은 있었지만,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 중 마린스키에서 발레 공연 한 번은 꼭 보고 싶어서 10월 초부터 매일 같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일정이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홈페이지 러시아어 버전이 갱신이 제일 빠르다는 걸 알고 그다음부터는 매일 구글 크롬 번역에 의지해 일정을 확인했다. 10월 16일, 드디어 11월 일정이 올라왔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 공연이 있는 걸 보고 바로 예매를 마쳤다.

 

기대감은 마음을 부풀게 만들었지만,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숙소에 도착하여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일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연장의 낮은 조도가 몸과 마음을 늘어지게 했다. 사람의 말소리가 오가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건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는데, 내 체력엔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xsleeping_beauty_1gs_8924.jpg.pagespeed.ic.XhXrNQILkG.jpg

 

 

왕과 왕비가 오로라 공주의 탄생일을 축제로 지정하고 요정과 사람들이 공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색색깔의 옷을 입은 요정들이 나와 저마다의 색깔로 공주의 생일을 축하하는데 내내 이어지니 지루하게 느껴졌고, 눈꺼풀은 무거워졌다. 긴긴 축하가 끝나고 초대받지 못한 말리피센트가 등장하며 분위기가 달라질 때쯤 집중력이 돌아왔다. 오로라는 열여섯이 되고 구혼자들이 모여 오로라와 춤을 춘다. 어느 노파가 꽃다발을 들고 오로라를 찾아오고, 오로라는 가시에 찔려 긴 잠에 빠진다. 여기까지가 1부 한 시간의 분량이었다.

 

인터미션은 한 번 더 남았고,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라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졌다. 집중력이 되살아나고 흥미로워지던 찰나, 필립 왕자가 너무나도 쉽게 말리피센트를 무찌르고 공주를 잠에서 깨운다. 2부가 시작되고 불과 20~30분 만에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맞은 두 번째 인터미션, 3부를 보지 않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3부는 왕자와 공주의 성대한 결혼식이었고 온갖 동화의 주인공들이 나와 둘의 결혼을 축하했다. 고전적인 스타일과 동화 특유의 감성, 그리고 신선함이 있었지만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초심자에게 어려웠다.

 

한국에 돌아와 무용수 정보를 알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공연 정보를 살펴보니 1막부터 3막까지의 시놉시스가 나와 있었다. 예매 당시 해당 정보가 업데이트가 안 돼 있었던 건지, 내가 놓친 건지 모르겠다만 관람 전 사전정보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2. 연해주 국립 미술관


 

ART.jpg

 

 

여행 가기 전, 미술관의 전시 일정을 찾아보니 ‘보티첼리’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느긋하게 관람하려다가 미술관은 보통 월요일이 휴관일이고, 돌아오는 월요일이 국경일이었기 때문에 구글에서 미술관 영업시간에 월요일 휴무라고 적힌 걸 발견했다. 카페에서 티타임을 즐기다가, 다음 일정으로 미술관을 급하게 넣었다.

 

마린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미술관도 외투를 보관하는 서비스가 있었다. 외투는 맡기고, 가방과 귀중품은 락커에 보관하는 형식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지 한국어로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직원이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플래시는 안 된다고 안내를 해줬다. 별 생각 없이 정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티켓을 구매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들어간 곳은 상설전시가 열리는 곳이었고 보티첼리 전은 바로 옆(다른 입구)에서 열리고 있었다.

 

러시아 미술이라곤 칸딘스키밖에 모르는 상태로 의도치 않게 무작정 들어갔는데, 취향에 맞는 두 화가를 발견했다. 전시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만 있어도 성공한 관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둘이나 있다니.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길이 줄어들던 요즘이었는데 모처럼 좋은 자극이 되었다.

 

 

mikhail.jpg

 

mi_2.jpg

Mikhail Nikolaevich Yakovlev (1880-1942)

Carpet of August. Sketch. 1909

 

 

러시아의 인상파 작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한 미하일의 이 작품은 풍부한 색감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시선을 사로잡았다. 캔버스에 두껍게 발린 유화 특유의 질감과 색채가 전달하는 에너지가 좋았다. 제목을 보니 꽃으로 뒤덮인 풍경과 8월이 어떤 상관관계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맘에 들었다.

 

 

ivan.jpg

 

ivan_2.jpg

Aivazovsky Ivan (1817-1900)

The sunrise on the Black Sea. 1850-1860s

 

 

이반 아이바조프스키는 러시아 유일의 해양 화가로, 그의 6000여 점이 넘는 작품 중 절반 이상이 바다 풍경으로, 크림반도에 거주하며 흑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커다란 캔버스와 바다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과 함께 이야기가 전해져 시선이 한 번 더 갔다. 큰 배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사람들의 애타는 뒷모습과 큰 배에 오른 제복을 입은 해군(어쩌면 선원)이 보인다. 내가 이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다.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게 포말을 표현한 유화는 처음이었다.

 

보티첼리의 전시는 작은 전시장에 보티첼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딱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그림 앞에 여러 사람이 모여있었고 나도 그 앞에서 유심히 그림을 봤지만 인상에 남지 않았다. 나는 작은 그림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상설전시에서 굉장히 만족하고 온 터라 전시와 작품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전시를 보고 돈이 아깝다고 느낀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3. 혁명 광장(중앙 광장)



KakaoTalk_20191116_224402827_02.jpg

 

 

여행 기간 내내 운이 좋게도 광장이 쉬는 날이 없었다. 주말에는 장이 열렸고, 월요일에는 국경일 행사가 있었다. 킹크랩과 곰새우로 유명한 중국 시장까지 가지 않고, 주말 시장에서 해산물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곰새우를 파는 곳이 거의 없었고 있어도 크기가 너무 작았다.

 

제품과 꿀을 파는 매대가 많았지만, 여행지에서 유제품 섭취는 피하는 편이고 꿀은 특유의 향을 좋아하지 않아 구경만 했다. 시장에도 관광객이 많이 오기 때문인지 몇몇 곳에서는 한국어로 품목을 적어두기도 했다. 여행객들은 주로 납작 복숭아를 사 먹지만 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미니 사과를 사서 여행 기간 내내 먹었다.

 

 

6.jpg

 

 

여행 기간에 공휴일이 있어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국경일이라 광장에서 행사가 크게 열렸다. 무대에서는 합창단이 공연이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스포츠 경기가 열렸다. 푸드트럭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아이들은 풍선과 인형 탈을 따라다녔다. 어른들은 물론 아주 어린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어 활기가 넘쳤다.

 

 

 

4. 밥마샤, 수프라


 

첫날 유명한 식당들을 찾아가 식사를 했는데 맛있긴 하지만 현지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이튿날부터는 현지 음식을 찾았고, 이번 여행에서 내가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두 곳을 소개하려 한다.

 

 

babmasha.jpg

 

bab.jpg

 

 

밥마샤는 ‘마샤 할머니’라는 뜻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일하게 러시아 가정식을 하는 곳이다. 예쁘고 아늑하게 꾸며진 곳으로 식당 안에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손님들이 있었다. 나는 보르시와 비프 스트로가노프, 그리고 기억이 안 나는 메뉴 하나와 라즈베리 음료를 주문했다.

 

보르시는 낯설지 않은 따뜻한 국물 요리(수프)로 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이 없을 메뉴이고,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딱 전형적인 맛있는 가정식이라고 느껴지는 고기 요리였다. 러시아 음식을 먹어보고 싶지만 모험이 꺼려지는 이들에게 보르시와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추천하고 싶다. 음료마저 집에서 만든 듯한 자극적이지 않은 느낌에 식사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spra.jpg

 

 

수프라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블라디보스토크 음식점 중 한 곳으로, 조지아(그루지야) 식당이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힌깔리, 하차푸리, 샤슬릭 그리고 케밥을 시켰다. 힝까리는 송아지, 샤슬릭은 돼지고기, 그리고 케밥은 양고기로 시켰는데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서 메뉴가 제대로 나온 게 맞는지 의심했을 정도였다.

 

여행객들이 꼭 가는 음식점 중에 유일하게 예약이 되지 않는 곳이라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했는데, 누군가 블라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조금 수고롭더라도 일찍 가거나 웨이팅을 하더라도 대표 메뉴는 꼭 먹고 오라고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5. 숙소, 날씨, 교통편 등


 

azimut.jpg

 

 

아지무트를 좋은 호텔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가 묵은 스탠다드 트윈룸은 6평이 채 되지 않는 좁은 객실로, 수납장이 없고 침대와 벽 사이에 캐리어를 펼쳐두면 여유공간이 없는 평범한 비즈니스 호텔이다. 수납장이 없어도 옷과 소지품을 보관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객실에 커피포트가 없어 로비의 정수기를 이용해야 하는 것은 불편했다. 객실이 청결하고 조식이 괜찮기 때문에 재방문 의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형적인 호텔을 생각한다면 5성급으로 분류되는 롯데 호텔을 추천한다.

 

러시아에선 덜 추운 겨울 휴양지라지만 한국에 비하면 춥기 때문에 날씨를 걱정했는데 11월 초는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교차가 큰 날씨였다. 낮에는 코트도 덥게 느껴지지만 밤에는 차고 강한 바람이 불었다. 러시아 11월은 한국의 12월 한겨울 날씨라고 하는데 내가 경험한 블라디의 11월 초는 한국의 11월 중순 정도이다. 루스키 섬은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발열내의에 두꺼운 니트, 경량패딩과 코트까지 꼭꼭 챙겨 입고 모자, 목도리, 장갑을 다 챙기고도 추워서 경치를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루스키 섬을 가고 싶다면 늦어도 10월 중순이 적기가 아닐까 싶다.

MAXIM.jpg

시내에서는 막심 앱을 사용했는데 대부분의 관광스팟이 도보로 이동 가능한 곳이라 택시를 많이 타지 않았다. 막심으로 택시가 잡히지 않을 때는 얀덱스를 사용했는데, 얀덱스로 택시를 잡지 못한 적은 없었다. 마린스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막심으로 택시 잡기가 어려워 두 세배는 줘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삼베리 마트에서 장을 보고 얀덱스로 택시를 불러 어렵지 않게 돌아왔다. 택시 기사에 따라 영어로 소통이 안 될 수 있으니 택시 탑승 후 목적지를 지도 앱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좋다.

 

독수리 전망대 갔다 오는 길에 중간에 택시기사의 호객행위에 넘어갔는데, 5분도 걸리지 않는 단거리에 200루블을 넘게 불렀다. 아지무트에서 마린스키까지 5.1km 이동하는데 180루블이었는데 1km 남짓한 거리에 200루블이 넘었으니 전형적인 외국인 바가지요금이었다. 된통 당하고선 아무리 귀찮아도 꼭꼭 택시 앱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면 킹크랩과 곰새우라지만 둘을 제외하고도 먹을 게 많았기 때문에 나는 야식으로 곰새우를 먹고 킹크랩은 포기했다. 현지에서 먹는 곰새우 크고 알도 많았지만 이러나저러나 아는 맛이었기 때문에 해산물을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꼭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인 업체에서 귀국용 보냉팩 포장과 배달 서비스도 제공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날 포장하여 한국에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