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보는 기생충, 기호와 마르크스 [영화]

다시보는 기생충
글 입력 2019.11.16 12: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maxresdefault.jpg

 

 

 

1. 제목이라는 기호



영화 <기생충>의 개봉 이전, 봉준호 감독은 영화가 벌레가 나오는 재난영화가 아니라는 해명을 해야 했다. 예고편의 제한된 정보만을 가진 관객들은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지닌 의미와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를 연결하기 어려워했고, 영화는 궁금증을 더욱 자아냈다. 일반적인 제목은 영화의 브랜드나 내용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기생충>의 제목은 영화의 메타포를 담고 있다.

 

영화 <기생충>의 기호는 다양하다. 건축적 기호, 사회적 배경 등 감독은 영화에 전달하고자 하는 기호를 숨겨놓았다. 제목 또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기생충의 기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차이’이다. 영화 속 기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상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대상들의 설명 끝에는 계급적 차이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가 숨겨져 있다. 

 

기생충이란 제목을 관통하는 주제는 영화 속 등장인물을 대변한다. 기생충이란 표면적 기호는 종이 다른 생물이 공생관계가 아닌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관계를 말한다. 기생충의 관계는 힘의 논리에서 숙주가 강자이며 기생충이 약자지만, 이득과 손실을 따졌을 땐 숙주가 피해자이며 기생충은 가해자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는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기택 가족, 박 사장 가족, 문광 부부는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를 형성한다.

 

영화 속 인물들을 기생충으로 설정한 것으로써 영화는 인물들을 다른 종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들을 공생할 수 없는 구도로 그려낸다. 영화는 기생충이란 주제 속에서 벌레를 묘사하는 기호들을 직간접적으로 사용한다. 영화 초반 곱등이를 튕기는 기택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제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박 사장 가족이 캠핑에서 돌아올 때 벌레처럼 숨는 모습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기생충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제목과 비유들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6.jpg

 

 

기생충의 조건 중 다른 ‘종’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냄새를 통해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이 있음을 사용해 등장인물들이 서로 공생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박 사장의 ‘선’을 넘지 않아야 하는 기준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배타적으로 설정하며, 자신과 공생관계가 될 수 있는 종의 조건을 설정한다. 박 사장이 기택의 냄새를 인식하며 의심하는 장면, 그리고 파티에서 근세의 냄새를 맡고 혐오감을 표시하는 장면은 같은 종으로서 존중하고 공생할 수 없는 차이를 보여준다.

 

기우는 파티 전 다혜와의 대화에서 “다들 쿨하고 자연스럽네”, “나 잘 어울려?”와 같은 표현을 통해 이 집에 어울릴 수 없는 다른 종임을 인식한다. 근세의 모스부호를 다송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 또한 소통할 수 없는 다른 종이란 사실을 드러낸다. 종의 차이는 당연하게도 거주지의 차이를 드러내고, 계단과 같은 수직적인 기호를 통해 계급 간 격차를 강화한다.

 

자연의 기생충은 숙주에게 비열하게 기생하지만, 숙주를 파괴할 만큼 탐욕적으로 착취하지 않는다. 숙주의 생명 보장은 자신의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기생 관계는 결국 기생충이 숙주를 파괴하는 것으로 끝난다. 인간이 유지할 수 없는 비정상적 기생 관계의 결말이다. 기생충의 조건이 될 종의 차이는 사회적 계층의 차이를 의미한다.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종의 차이는 계층의 차이이며, 감독이 묘사하고자 했던 계층 차이는 같은 사람이지만 종의 차이만큼 벌어져 기생 관계까지 되었다는 점을 그려낸다. 영화에서 기생충이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며, 서로 공생할 수 없는 비극을 암시한다.

 

 

01.19737759.1.jpg

 

 

 

2. 뒤집힌 역할 놀이



기생충은 비극이면서 희극이다. 비극적인 요소로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웃지 못할 사건들도 웃을 수 있게 만든다. 비록 웃음이 쓴웃음일지라도 우리는 기생충으로부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결국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웃게 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작품은 자본주의의 인간성 무시를 날카롭게 짚어내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현실을 더 날카롭게 대변한다. <기생충> 또한 같은 방법으로 사회를 담아낸다. 우스꽝스러운 전개에 우리는 웃을 수 있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영화는 전통적인 블랙코미디처럼 보인다.

 

<기생충>은 사회적 문제를 계층구조로 그려낸다. 최상위층에는 박사장 가족이 있고, 하층민인 기택 가족과 최하층인 문광 부부가 있다. 영화가 설계한 수직계층과 수직적 기호들은 이들의 계층구조를 더욱 강화한다. 집의 위치는 언덕 위, 반지하, 완전한 지하로 나뉘며 이들의 직업은 CEO, 무직, 경제활동이 불능한 상황으로 그려진다. <기생충>이 그려낸 이러한 구조는 흔한 자본주의적 토대를 다루는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사회구조의 역할만 부여할 뿐,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일을 현실처럼 그려내지 않았다.

 

<기생충>에는 계급이 있지만, 계급은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박사장은 기업의 CEO로서 자본가의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회사 장면에서 그려지는 박사장의 모습은 성공한 IT기업 CEO의 모습이다. 영화는 박사장이 자본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탐욕과 비인간성으로 그려지는 자본주의적 악인과는 거리를 두었다. 박사장의 지위의 정당성은 근세의 ‘리스펙’에 의해 부여된다. 근세가 바라보는 박사장은 유능하고 성실하며, 근세 부부의 녹을 주고 있는 물주의 모습이다. 근세가 부여하는 존경으로 박사장의 계층에 대한 부정을 스스로 차단한다.

 

 

MYH20190422017300038.jpg

 

 

기택 가족 또한 노동자 계층이지만,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피자 박스를 접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피자가게 사장이 부당하게 노동을 착취하는 모습이 아닌, 오히려 제작 과정의 실수를 뻔뻔하게 받아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그려진 기택 가족의 본격적인 생계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대학 입학 증서를 위조하며, 이름과 직업을 속이고 박 사장 가족의 자본에 기생한다.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을 획득하는 일은 노동자 계층의 역할이 아닌, 자본가 계층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된 일이다.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노동력 착취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이끈다. 하지만 <기생충>은 살인의 역할을 근세와 기택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살인의 대상은 하위 계층이 아닌 자신보다 상위의 계층이 된다. 영화의 살인은 개인적인 충동이 원인이었지만, 기택이 가진 구조적 불평등을 박 사장에게, 근세의 불평등을 기택 가족에게 살인으로 전가하는 과정이었다.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뒤집힌 역할 놀이다. 봉준호 감독은 현재의 계급을 역전시킨 모습을 보여준다. <모던타임즈>에서 보여주었던 근현대 자본주의 계층은 <기생충>의 시대로 와서 고정된 계급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당연하게 부정하게 될 때부터, 우리는 이미 계층의 역할을 고정된 계급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고정된 계급 역할을 부정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영화가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준 계급에 대한 부정 조차도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는 블랙코미디로 남는다.


 

[김용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