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우리가 마주한 삶의 모순 앞에서
글 입력 2019.11.13 14: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1월의 첫날, 씨네큐브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씨네큐브로 향했다. 나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친구는 퇴근을 하고 만나는 일정이었던지라 그 날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국제경쟁4’ 하나였다. 총 6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그 중 3편의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Mice, a Small Story 생쥐, 작은 이야기


 

주인공 생쥐들, 올빼미, 그리고 올빼미의 부하 생쥐들만 등장하는 생쥐 애니메이션이며 스토리 또한 매우 간결하다. 철로에 놓인 통조림 따개에 특별한 힘을 느낀 주인공 생쥐들이 따개를 손에 넣는다. 올빼미 또한 따개에 탐이 났고 그는 그의 부하들을 시켜 주인공 생쥐들을 추격하게 한다.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 넘치는 생쥐들의 추격전 끝에, 결국 주인공 생쥐들이 따개를 놓치고 올빼미가 그것을 차지하려고 날아오르는 순간, 열차에 치여 죽으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커’ 보이고, 나는 너무 작고 찌질해서 견딜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그들은 크고 나는 작다고 느끼는 것은 매우 선천적인 조건들에 기인한다.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재능, 부, 권력, 아름다움과 같은. 이미 세상에 나온 이상 어찌할 바가 없는 것들. 잠깐 돌아가서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 중요한 면접이나 시험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중요한 뭔가를 집에 두고 왔을 때 느끼는 당혹감, 비행기 시간을 잘못 알고 있다가 탑승 2시간 전에야 발견했을 때 느끼는 아찔함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싸늘한 감정들로 인해, 밤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았다. 아침에 눈 뜨는 건 더 괴로웠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나가야 하는데 그냥 나가기가 싫어서 일부러 더 자거나 늦장을 부려서 지각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지내면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날까 싶어 시와 소설을 읽어보고 영화광들에게 인생 영화라 꼽히는 영화들을 찾아봤다.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외우고 라이브영상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참 어른이라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인생선배들을 만나 조언을 구해도 봤다. 이해력이 좋지 않은 나는 조금 더디게 깨닫는 중이다. 가끔 긴가민가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다 인간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4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보여준 메시지도 이러했다. 희소한 무언가를 탐하고 이를 두고 싸우기도 하겠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이다. 특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IC_29_Mice, a Small Story.jpg

 

 

 

Mother-in-law 마더 인 로


 

‘국제경쟁4’의 영화들 중 유일하게 자막을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였다. 대학생인 딸 현서의 자취방에 김치를 주러 방문한 형숙은 자취방에서 딸이 아닌 딸의 친구인 민진을 처음 만나게 된다. 형숙은 딸의 자취방에 꽤 전부터 얹혀살기 시작했다는 민진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현서는 들어오지 않고 민진은 형숙을 깍듯이 모시려고 하지만,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민진과 대화를 나눌수록 형숙은 마음을 열게 되고, 민진에게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해주려 한다. 그때,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술에 잔뜩 취한 현서가 돌아온다. 민진에게 뽀뽀를 한다. 또 “자기야”라고 부른다. 어렵게 쌓아왔던 친밀감이 무색하게 눈물이 맺힌 표정으로 형숙과 민진이 다시 마주한다.

 

영화 감상이 끝나고 작품의 감독, 배우 분들이 무대에 올라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 작품의 감독님이신 신승은 감독님도 올라오셨다. 감독님께서는 한국 사회의 성별 이분법적인 호칭에 대해 지적하셨다. 한국 사회가 성에 대해 얼마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는지는 가족 호칭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남편이 아내의 형제자매들을 부르는 호칭은 처남, 처제, 처형이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의 형제자매들을 부르는 호칭은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이다. 영어로는 남편의 어머니나 아내의 어머니 모두 ‘Mother-in-law’인데 반해, 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시어머니와 장모님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레즈비언 커플이 서로의 어머니를 부를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지적한다.

 

다행히도 이 영화의 형숙은 이 커플의 앞날이 그리 모질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영어영문을 전공하고 있는 민진은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다. 현서가 오기 전, 대화를 통해 민진과 친밀감을 쌓아가던 형숙은 잠깐이나마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민진은 장모님과 시어머니의 영어 표현을 묻는 형숙의 질문에 모두‘Mother-in-law’라고 답하며 종이에 적어준다. 그리고 형숙은 둘의 관계를 알게 된 후 다시 어색하게 자취방을 떠나며 그 종이를 가져간다. 전체적으로 유쾌한 대사와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이 돋보이는 영화였지만 얇은 종이에 손가락 끝이 베인 듯이 따갑기도 하였다.

 


IC_31_Mother-in-law.jpg

 

 

 

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 선택의 기로


 

‘국제경쟁4’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이 영화는 덴마크의 어느 모녀를 담고 있었다. 또 치매가 점점 악화되어 가는 노모가 다운 증후군을 앓는 딸을 보호시설로 떠나보내야 하는 어느 날의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몸과 마음을 붙잡고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고는 7살에 멈춰 버린 딸의 얼굴을 보고, 목덜미를 닦아주고, 또 입으로 후 바람을 불어주기 위해 딸의 방으로 들어간다. 자꾸만 딸이 어릴 때의 엽기적인 에피소드를 늘어놓고 웃고 서로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장난을 친다. 그러다 딸을 시설로 데려갈 자원봉사자가 찾아오고 함께 식사를 하며 시설로 떠날 준비를 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이제껏 함께 해온 딸을 시설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잔잔한 배경음악과 따뜻한 색감, 배경과 달리 그녀의 마음은 요동친다. 아침에 눈을 떠 약속한 시간에 딸을 작은 차에 태워 보낼 때까지 쉴 새 없이 헤맨다. 사실 그녀의 모든 삶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 이 영화의 제목처럼 지독한 딜레마이고 모순이다. 그럼에도 딸을 떠나보낸 그녀가 작지만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또 이 미소를 우리가 발견한 것처럼 우리 삶에도 선택에 대한 확신보다는 의미를 찾길 바랄 뿐이다.

 

 

IC_08_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jpg

 

 

짧은 영화들이었지만, 그래서 그 여백들을 혼자서 채우느라 훨씬 길게 감상 할 수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까지 모두 마치고 친구와 영화관을 나와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우리가 만나면 맨날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과 나는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살면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렇게 살다가 헤어지고 또 생명이 소멸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다를 수 없다.

 

 

[최희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