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의 단면 -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글 입력 2019.11.1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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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FF2019_공식포스터_01.jpg

 

 

사실 그냥 짧은 영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 한꺼풀 더 들춰내고 보면 미처 장편이 되지 못한 이야기의 열매가 데굴데굴 모여 단편이라도 되어 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닌가 생각하기까지 했다. 시나리오 전개의 문제든, 예산의 문제든 장편이 될 수 없는 이야기가 단편 영화로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그 이름에는 조금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처럼 여겨졌다. 무언가 미완의 작품이라고 감히 생각했달까.

 

사실 앞서 말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제작 기한이나 예산에 대한 문제라던지. 근데 그것만이라기엔 단편 영화만의 매력이 너무도 뚜렷했다. 2019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를 통해 난 그 편협한 고정관념을 깨버릴 수 있었다. 단편 영화에는 단편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봤던 프로그램은 11월 3일 15시 30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진행된 국내경쟁3 섹션이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인 소셜 네트워크의 보안에 대한 논의부터 청소년기 성 가치관에 대한 주제 등을 비롯해, 개인의 내면 세계를 존중하게 만드는 영화 등 러닝타임은 짧지만 메세지는 강렬했다.

 

단편 영화는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삼사십분 가량의 시간 동안 스토리를 전개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편 영화와 호흡 자체가 달랐다. 짧게 스쳐지나갈 만한 장면도 시간이 멈춘 듯 아주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고, 그래서인지 영화의 모든 면면이 아주 또렷이 다가오는 느낌. 메세지를 더욱 심도 있게 전달한다.

 

이어서 간단하게 돌아보는 인상 깊었던 영화 둘.

 

 

 

Joan 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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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안이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들여다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녀는 변덕스럽고, 그때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며, 늘 새로운 것을 찾아헤맨다. 그러던 중 데이팅 어플을 받아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밝은 날 만나서 해가 질 때까지 대화가 물 흐르듯 흐른다. 그러나 헤어지기 전 남자의 몇마디 말에서 섬뜩함을 느끼는 조안. 집 주소를 말했는지, 본명을 말한 적이 있는지 기억나지 않음에도 어째서인지 눈 앞의 남자는 이를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냥한 듯 건조한 한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이는 그녀의 핸드폰 시스템. 그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시스템은 그녀의 일상을 보조하는 데서 나아가 삶을 조종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늘상 손에 들고 다니는 이 스마트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인지. 너무 오랜 시간을 들이고 자신을 조그만 화면의 프레임에 가두면서 멍하니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Because We Don’t Know Who We are 왜냐하면 오늘 사랑니를 뽑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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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울고 웃으며 보다가 인생 영화로 등극했다. 영화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감정에 주목한다. 제목 그대로, 사랑니를 뽑은 아픔에 대해 논한다. 사실 누구나 한번쯤 앓고 지나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랑니. 하지만 누군가에는 뻔한 일일지 모르는 사건이 나 자신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일수도 있고, 마음이 아릴 만큼 큰 아픔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슬픈 얼굴로 말한다. 제가 오늘 사랑니를 뽑았다구요. 그리고 치과에서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치료 과정을 거쳤는지 말하고, 또 말한다. 그 말한다는 게 가히 전국적인 규모를 원하는 정도라 관람객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만다. 뉴스데스크에서도 오늘 사랑니 발치 과정을 논하고, 영화관에서 마주한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위로해주고. 이 와중에 가장 가까운 관계인 남자친구는 자신의 취업 준비로 그녀의 아픔을 타자화하자 여주인공은 건물 방송실에 들어가 사랑니를 뽑았다고 방송까지 한다.

 

한없이 장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아픔에 누군가 공감해주기 원하는 사소한 욕심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터. 사람은 결국 자기가 먼저인 존재라,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라, 누군가의 아픔을 진심으로 품어주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아파하는 사람이나 위로하려는 사람이나 다 인간이니 결코 상대방이 내 아픔을 나처럼 이해해줄 수 없음을, 제 것처럼 다독여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프고, 위로받기 원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서 공감받기 원한다. 인간이란 무슨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 뭔진 몰라도 땅 파서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홀로 감정을 끌어안고 자급자족 하는 것은 끝끝내 못하는 약한 종족인 것 같아. 사랑니 뽑은 자리가 너무 아프다고 엉엉 울다가 끝내 입이 아파 수화로 열변을 토하는 여주인공을 보며, 결국 사랑니가 너무 아프다고 말할 뿐인 사소하고 우스운 상황을 보며 난 그렇게 울었다. Because We Don't Know Who We are. 영화가 끝나고 왜 영문 제목이 이런지 깨달았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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