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의 흑역사", 반복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도서]

글 입력 2019.11.1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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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일을 말아먹는 재주에 관한 책


 

‘인간의 흑역사’의 저자인 톰 필립스는, 이 책을 ‘인간이 일을 말아먹는 재주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근대 이후의 인류는 인간 종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믿음과 휴머니즘, 계몽주의의 사상적 기반 아래 살아왔다. 그러나 저자가 압축해놓은 역사 속에서 인간은 믿을 수 없게 한심하고 멍청하다.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게다가 그 실수가 초래한 피해의 규모와 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 어떤 이들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사고 능력에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가?

 

끔찍한 인류의 실패들을 다루는 책이니 전반적인 필체나 어조가 무거울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그 예상과는 반대로, 저자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인간의 불완전성을 고백한다. 그 유쾌함 덕분에 지나친 좌절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지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반추해볼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문장이 톰 필립스의 문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우리 머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내지만, 가게에서 포테이토칩 하나를 살 때도 무슨 종류를 살지 족히 5분은 고민해야 겨우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은 한없이 위대할 수도, 한없이 비루할 수도 있다. 대단히 똑똑할 수도, 대단히 멍청할 수도 있다. 이 책은 후자의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간의 흑역사 중에서도 가장 경악스러운 몇 가지를 선정해서 소개해보려 한다.

 

 

 

#1. 마오쩌둥의 참새 소탕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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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생태계 교란’만큼 우리가 자주 범했던 오판도 흔치 않다. 생태계 속 먹이 사슬 일부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일은 높은 확률로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그중에서도 몇몇 사례의 경우, 피해의 규모가 천문학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오쩌둥의 참새 소탕 작전이다.


마오쩌둥은 참새가 벼 낱알을 쪼아먹기 때문에 ‘해로운 새’라고 규정했다. 이후 참새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지시했고, 노동자, 농민, 학생을 전부 동원하여 최대한 많은 참새를 제거하도록 했다. 명령이 내려진 1958년 한 해에만 2억 1000만 마리가 소탕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지도부는 참새가 제거되었으니 곡식의 수확량이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새의 천적인 메뚜기가 창궐하면서 도리어 대기근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대기근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참새 소탕만은 아닐 수 있지만,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은 확실하다. 역사적인 기근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1500만 명에서 30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마오쩌둥의 사례는 인간의 근시안적인 판단이 갖는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이면에 있는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단편적인 이해에 기초해 사실을 규정하려는 태도는 예상치 못한 파괴를 불러온다. 그 판단이 한 국가의 지도자에 의해 내려졌을 때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이다. 마오쩌둥 외에도, 동아프리카의 가장 큰 호수 빅토리아호에 나일퍼치라는 포식성 물고기를 들여와 500종이 넘는 어류를 멸종시킨 영국 제국주의자들도 있었다. 이 경우에 모든 피해는 물고기의 몫이었다.

 

 

 

#2. 레오폴드 2세의 콩고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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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국가들이 저지른 만행은 언제 들어도 끔찍하지만,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콩고에 끼친 악영향은 ‘인간이 어디까지 악독해질 수 있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그는 콩고의 거대한 땅덩어리를 사유지화한 뒤, 원주민을 전부 동원해서 고무 생산에 열을 올렸다. 고무 생산과 판매를 통해 창출된 이윤 중 콩고 원주민에게 돌아간 몫은 전혀 없었다. 원주민들에게는 고무 생산의 할당량이 부과되었고, 그 할당량이 지켜지지 않으면 처음엔 손을 잘랐으며 다음에는 팔을, 마지막에는 잔혹하게 목을 잘랐다.


레오폴드 2세가 콩고에 법과 질서를 전파할 ‘문명화의 사명’을 앞세웠던 것을 보면, 서구 국가들의 비서구에 대한 우월적 인식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문명화는 허울에 불과했고, 실상은 착취, 고문, 학살뿐이었다. 콩고에서 1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추정치에 불과하고, 콩고 인구가 3000만에서 900만까지 줄었다는 주장도 존재하기에 학살자의 규모가 훨씬 더 컸을 가능성도 있다.


이 모든 만행은 경악스럽게도 레오폴드 2세가 만든 ‘자선 단체’에서 출발했다. 한 인간의 잘못된 도덕 관념 및 욕망의 발현이 평화롭던 국가의 원주민들을 전부 생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그를 ‘인간도 아닌 짐승’이라고 헐뜯고 싶겠지만, 레오폴드 2세 역시 안타깝게도 우리와 같은 생김새를 한 인간이었다. 이러한 인간성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 괴물을 똑바로 마주 볼 때, 비로소 우리는 똑같은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3. 토머스 미즐리의 환경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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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미즐리는 “지구 역사상 환경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친 단일 생명체”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 미국의 과학기술자이다. 그는 생전에 100가지가 넘는 기술에 관한 특허를 취득하며 위대한 과학자로 칭송받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다. 이처럼, 당대적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형체를 드러낼 때도 많다.


그는 납이 포함된 유연 휘발유, 그리고 프레온 가스 두 가지를 발명, 발견하면서 인류 전체의 피해를 야기했다. 만일 토머스 미즐리가 생존해 있었다면, 프레온 가스에 대해서는 ‘오존층 파괴의 문제가 벌어질 줄 정말 몰랐다’라며 변명할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유연 휘발유는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다. 납은 유독성 물질로서 태아 기형 및 뇌 손상의 문제를 일으키기로 유명했다. 뛰어난 기술자인 그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미즐리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휘발유를 ‘에틸’이라 명명하며 납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1921년에 개발된 그의 휘발유는 자동차의 노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발명품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이 끔찍한 발명으로 인해 대기 중으로 다량의 납이 방출되었고, 공장에서 근무하던 수많은 노동자가 사망했다. 심지어는 미즐리 자신도 납 중독이 되어 오랜 요양 기간을 거쳤다. 유연 휘발유는 이름을 바꿔가며 세계 각국에서 활용되다가 1990년대가 되어서야 완전히 사용이 금지되었다. 장장 7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인류는 재앙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이 모든 재앙은 한 과학자의 멍청한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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