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치유미술관, 생생 방문기 [도서]

아픔이 낳은 명화이야기, 치유미술관
글 입력 2019.11.1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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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 <물랭루주에서의 춤>, 1890

 

 

치유미술관에 다녀온 후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평소 동경하던 예술의 한 영역인 미술, 이름만 들어도 단번에 대표작이 함께 연상되는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들이 미술관의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소위 '명화'라고 불리는 그 작품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예술로 각인되지만 그들에겐 자신을 온전히 투영하는 피사체이자 일상을 담아내는 소중한 도구였다.

 

미술관 투어를 마친 후 익히 잘 알고 있던 화가들의 더욱 깊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조금 생소했던 화가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경험을 선물로 받았다. 무엇보다 이 미술관에서의 시간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주 남다른 전시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총책임자, 닥터 소울은 아픔과 고민이 있는 화가들을 내담자로써 초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도 그의 미술관으로 불러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치유미술관은 가상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를 묶은 한권의 책으로 여기서 내담자들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유명화가들인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혹은 조금은 낯설 수 있는 베르트 모리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의 여류화가들이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화가들의 실제 이야기들과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말을 필요한 상황을 설정하여 재구성한 미술사 판타지, 치유미술관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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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다소 특이한 설정에 적응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갑자기 등장한 닥터소울은 누구이며 예상치도 못했던 화가들의 고민상담 일지라니, 위험한 모험이고 과감한 도전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이 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게 된 이유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형식으로 미술작품과 화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신선함이었다. 덕분에 화가들의 이야기가 더욱 깊게 와닿았고, 저자가 그들을 상담해주는 과정을 읽는 동안 나의 내면의 상처들도 깨어나 치유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이렇게 생생함이 살아숨쉬는 상담일지를 작성했다는 것이었다.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말에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상담이 아닌, 진솔한 대화를 통하여 그들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치유로서의 상담'이 맞았다.

 

 

 

그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화가들에게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불타는 물감이자 치유받고자 하는 하는 염원을 수놓은 슬픈 팔레트였다. 우리에게 절규로 알려져 있는 화가, 뭉크. 5살 때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누나와 남동생의 죽음을 겪었던 그는 죽음을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천사들이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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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아픈 아이>, 1886

 

 

그의 작품 <아픈 아이>는 누나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가 눈물을 삼키며 그렸던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와 비슷하게 모네는 <임종을 맞은 카미유>에서 죽어가는 부인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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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1879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의 생명이 끊어져 가는 그 순간에까지 죽어가는 그들의 손이 아닌, 붓을 들었던 그들은 예술에 미친 인정사정 없는 화가들인가? 어쩌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이 두 화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당시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빛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슬픔으로 가득한 마지막 문턱에서까지도 사랑하는 사람과 한몸이길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생전 단한번도 사랑받지 못했던 화가의 작품, 그러나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앞다투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그림.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가 담았던 마음은 또 어땠을까.

  

 

단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화가였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고,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격렬하게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내가 어느 날 창밖으로 별빛을 보게 된다면 이런 풍경이 나를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

 

 

책에서 발췌한 그의 생각이다. 별이 빛나는 밤을 수없이 보며 구름과 바람의 파도가 연상되는 밤하늘의 바다, 그리고 바다를 휘감은 달과 별의 근사한 황금빛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곤 했다. 또 뉴욕 여행 당시 MOMA에서 직접 그 그림을 눈에 담을 수 있었던 황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림 속의 뾰족한 나무에 관한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사람들이 하늘에 닿고자 건축한 교회의 높은 첨탑보다도 더욱 크게 묘사된 것은, 하늘의 별과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것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후라는 고흐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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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1889

 

 

별이 빛나는 밤을 직접 보았을 당시 제일 먼저 들었던 인상은 내가 예상했던 '아름답다'라는 형용사가 아니라 '슬프다'였다. 살아생전 팔린 딱 한점의 그림, <붉은 포도밭>을 제외하고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고흐,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돈이 필요해 만물상에 작품을 팔곤 했던 그가 별이 빛나는 밤에 담았던 소망이 이뤄지는 눈부신 순간이었다.

 

당시 이 작품을 둘러쌌던 수많은 사람들과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고흐가 직접 봤다면, 또한 그의 그림으로 치유받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닦을수조차 없는 슬프고도 행복한 눈물을 얼마나 수없이 흘렸을까.

 

혹독한 추위라는 말을 능가할 정도로 추웠던 그 해 겨울, 별이 빛나는 밤은 여전히 뜨거웠고 하늘을 수놓은 별빛은 세상 어느 노랑보다도 반짝였다. 그가 생전 즐겨 마셨던 압생트가 고독한 고흐에게 건넸던 노란 높은 음, 작품 <해바라기>에서 볼 수 있는 금색의 노랑빛보다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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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해바라기>, 1888

 

 

 

친구이자 연인, 영감을 주고받는 우리들



책 속에 등장하는 화가들에게 아주 찰떡같은 제목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 고집세고 괴팍하다고 소문났던 고흐에게 고갱과 로트렉은 몇안되는 친구였고, 때론 이 화가들은 우정의 선물로 서로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물론 드가의 경우 건넸던 마음에 되려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일화를 접하며 드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또 그와 화가 마네의 관계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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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마네 부부의 초상>, 1869

 

 

어느날 마네의 집을 찾은 드가는 마네와 그의 부인의 모습을 담은 <마네부부의 초상>을 선물했지만, 자신이 평소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를 이상한 모습으로 그린 드가의 속내를 마네는 간파했다. 어릴적 어머니의 외도에 충격을 받아 여성을 혐오하고 불신하는 드가가 마네 아버지의 정부이기도 했던 그의 아내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사실주의라고 말하면서 인상주의 전시회 8번 중 7차례에 걸쳐 작품을 출품한 드가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둥 말하는 마네나, 그의 또다른 뮤즈이자 그의 동생과 결혼한 화가 모리조. 모리조가 죽은 후 그녀의 딸의 후견인이 된 르누아르. 모네의 부인을 소개해주고 그가 힘들 때 그의 그림을 사주기도 한 바지유 등을 보며 이들은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는 이들은 같은 주제로 다른 풍의 그림을 그려내기도 하고 함께 일상을 공유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싸워야하는 당시의 전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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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독서>, 1858

 

 


나는 르누아르도 좋고, 고흐도 좋은데?



파리의 해피바이러스라고 불리는 화가, 르누아르는 실제로도 긍정적인 성격의 화가였지만 그의 작품철학 또한 그랬다. 현실의 삶만으로도 고달픈데 그림 속에서는 모두가 밝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다고. 그 예로 르누아르와 모네가 함께 작업실에서 작업할 당시의 일화를 제시한다. 모네가 '우리 마지막으로 밥먹은적이 언제지?'라고 물을정도로 궁핍했던 그 때, 르누아르는 모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또 자네와 같은 훌륭한 동료와 그림을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네. 문제는 이 130X173cm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지... 물감은 참 비싸... 이런 비싼 재료로 나는 행복한 모습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네.

 

 

한때 즐겨 먹었던 상품, 덴마크 우유의 겉면을 장식한 따뜻한 그림에 처음 반해 줄곧 좋아하게 된 화가, 르누아르. 그의 그림을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를 찾은 것 같다. 뉴욕 여행 당시 방문했던 Metropolitan Museum에서의 생생한 기억이 넌지시 문을 두드렸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큰 규모의 박물관에 한눈이 팔렸던 그때, 내 어수선한 발걸음을 잠재웠던 건 바로 평소 좋아했던 르누아르의 작품들로 사방이 채워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좋았던 나머지 격렬한 흥분이나 현기증을 보이진 않았지만,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고 황홀경 같은 강한 감정에 빠지는 현상을 일컫는 ‘스탕달 신드롬’을 직접 경험했던 것 같다.

 

작품으로만 따지면 내 마음은 고흐의 그림보단 르누아르의 그림에 훨씬 요동친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따뜻함과 사랑이 피어나는 듯한 밝은 에너지가 내 마음을 가득 메우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림에 대한 철학을 생각해봤을 땐 내가 사랑하는 르누아르가 아닌 고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르누아르가 그림에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진중한 주제가 아닌 행복한 모습만을 담고 싶어했던 것과는 달리, 고흐의 작품들에선 행복이라는 감정을 찾기가 어려운 정도를 넘어 왠지모를 무겁고 차분한 느낌이 제일 먼저 든다. 그가 생전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과 슬픔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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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구두 한 켤레>, 1886

 

 

책 속에서 닥터소울이 고흐에게 자신을 비유한 그림을 그려보라 했을 때 고흐가 그린 작품 <구두 한 켤레>. 이 작품엔 동생 테오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그의 처량한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낡은 신발에는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고달픈 발걸음이 담겨있다고 했다. 그 진실은 <감자 먹는 사람들> 속에 담긴 인생의 진솔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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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고흐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민 손,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한다고 했는데, 고흐가 말한 인생의 진솔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생각해보게 되었다.

 

삶이란 행복으로만 가득하기 어렵고 바람과는 다르게 역경과 고난을 마주해야 할 때가 많다는 진실?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믿음? 내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에는 아직 덜 성숙한 걸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고 그렇게 인생의 진솔함은 내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자리매김했다. 행복이라는 이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르누아르와, 꾸미지 않은 자화상으로 다가와 내게 쉽게 풀지 못할 문제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고흐. 둘 중 더욱 정이 가는 건 고흐의 그림에 담긴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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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칼로, <희망의 나무, 굳세거라>, 1946

 

 

글의 마지막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어릴적 소아마비를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18살 때 교통사고로 갈비뼈와 척추가 부러지고 골반이 세조각 나며 30여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살아남은게 기적이라고 여겨질 상태의 그녀에게 그림은 자신이 불행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잊게 해줬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후 여러 여자들, 심지어 자신의 동생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던 남편 리베라를 만난것이 인생에서 교통사고 보다 더 큰 고통이라고 호소하는 프리다 칼로는 <희망의 나무, 굳세거라>를 그린다.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 견뎌내기엔 너무나 큰 상처들의 연속이었던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것 같다는 이 그림. 자신이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자이자 영웅으로 표현했다는 그녀의 의연한 말이 내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앞으로도 계속 잘 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칼로의 강인한 정신. 그녀의 강인함은 내게도 뭔가를 불어넣어주었고, 이 책의 여러 화가들과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상처에도 치유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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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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