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의 재발견, 덕수궁 야경 투어 [문화 공간]

글 입력 2019.11.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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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지그시 바라보는 일 


 

지나치는 일상을 새롭게 보는 행위는 삶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매일 바라보는 버스 밖 풍경은 빛과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매일 듣던 노래가 행복한 순간에 더해진다면 그 노래는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매일 혼자 걷던 길을 누군가와 같이 걸으면 그 길에 새로운 이야기가 입혀지고, 스쳐 지나가던 장소들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면 나의 삶 속에서 중요한 하나의 점으로 남는다.

     

이렇게 일상을 이루고 있지만 흘려보내던 것을 지그시 바라보게 되면, 하루의 권태를 이기고 감정이 풍부해진다. 토요일 밤, 덕수궁 야경 투어를 선택한 것은 그런 의미였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현재의 나는 서울이 여행지이기도,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광화문과 시청, 종로를 걸으며 빡빡한 도시 속 살아가는 익명의 누군가가 되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마음이 여유로워 궁의 담벼락을 걷기도 하고, 유적지를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광객 모드로 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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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아름답다. 옛것과 현재의 조화가 점점 더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밤에 거니는 궁의 담벼락은 서울의 중심에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의 숨 막힘을 잠시나마 덜어준다. 산책을 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특히 경복궁에서 삼청동 일대로 이어지는 길은 내게 늘 설렘을 주는 장소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런 거리들을 매일 바라보면서도 궁의 옛이야기는 생각해본 적이 드물 것이다.

    

해외에는 일일 투어가 참 잘 갖추어져있다. 구속받는 여행이 싫어 자유여행을 선택하더라도 파리 오르세 미술관 투어,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등 특정 주제를 2-3시간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알찬 여행으로 남기 충분하다. 여행에서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하는 기분을 느끼기보다 사람들과 모여 같이 걷고, 하루 정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특이한 건물이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예술적 의미가 담긴 중요하고 위대한 건물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기억이 몸에 좋은 느낌으로 남아, 가장 가까운 여행지이자 일상인 서울을 재발견하고자 했다. 생각보다 많은 서울 속 투어가 존재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고, 산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다. 이렇게 걷기 좋고 아름다운 계절에 궁을 거닐며 서울의 현재와 과거를 자세히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여러 가지 투어가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역사이자 대한제국의 숨은 비화를 들을 수 있는 덕수궁 야경 투어를 선택했다.

 

 

 

그저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


 

시청역 출구에서 사람들과 모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청해서 꽤 놀라웠다. 가족끼리 오기도 하고, 커플끼리 오기도 해서 보기 좋았다.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역사를 생각하면 괜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극이야 흥미로운 스토리와 예쁘고 멋진 연예인들이 등장하니 역사와 관련 없이 드라마로 받아들이지만 학창 시절 배웠던 한국의 역사는 암기 과목이라는 인식과, 연도까지 알아야 하는 그야말로 빡센 과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몇 백 년도 넘는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 초기의 일들은 너무나 까마득해 신화를 듣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고종의 이야기는 내게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커피를 즐겨 마셨고, 그의 임기 중 전기가 조선 곳곳에 들어오기도 했고, 지금의 생활과 비슷한 신식 문물이 퍼지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막연하고 어려운 역사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가장 가까운 뿌리이자 시작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기 전,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 역시 고종이다. 서양식 제복을 입기도 하고 현대화된 풍경도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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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고종의 모습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커피를 즐기는 고종의 모습

 

 

이렇게 격동의 시기이자 변화의 시기를 겪었던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절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덕수궁 야경 투어였다.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 길에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환한 낮에 거리 공연이 있었고, 여름의 푸름이 가득한 청량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랗고 빨갛게 나무들이 물들었고, 길은 조명으로 고즈넉했으며, 맑은 밤하늘 밑을 거닐었다. 똑같은 장소였지만 또 다르게 펼쳐진 풍경은 나에게 일상의 재발견을 선사했다.

   

 

 

덕수궁 야경 산책, 그리고 역사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가이드님과 함께 덕수궁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껏 한 번도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계 같았다. 아름다운 길과 고즈넉한 건물들이 펼쳐졌다. 또한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예술 조형물들이 전시되고 있어 과거와 현대의 어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덕수궁은 어떤 곳일까? 가이드님의 설명을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덕수궁은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을 머문 뒤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머문 거처이다. 이때를 전후하여 궁내에는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일부는 서양식으로 지어지기도 하였다.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가이드님께 들으며 창살의 색, 천장의 문양, 계단의 높이까지 하나하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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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알게 된 지식은 언젠가 증발하기 마련이다. 아편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미사변, 아관파천, 명성황후, 순종, 이토 히로부미 등 모든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우리가 청소년기에 두세 번은 필기를 하고 외우며 머릿속에 넣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보고 난 뒤 나의 일상과 관련이 없어지고 지식의 쓰임이 사라지자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런데 일일 투어를 통해서 역사 공부를 통해 알고 있던 지식들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역사적 인물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머릿속에서 엮어낼 수 있었다.

    

또한 덕수궁 안으로 들어서자 서양식 건축물과 조선의 전통 기와가 함께 어우러져 오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산책길을 거닐며 이곳에서 사색하며 국가의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진 않았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가 신청한 투어뿐만 아니라 여러 팀들이 모여 덕수궁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즐기고 있었다.

    

역사란 내게 '알고 보면' 재미있는 과목이었다. 이렇게 공부가 아닌 내 삶과 연결되었을 때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높은 빌딩이 많고, 사람들은 편리한 아파트에 살며, 삶의 질을 추구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불과 백여 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은 국가를 잃을 위기에 처해있었고, 개인의 자유는 보장받지 못했으며, 한 나라의 수장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한 서양의 문물과 조선의 전통이 뒤섞여 혼란과 격동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거의 서울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답고 과학적인 건축물들이 불타기도, 빼앗기기도 했다는 사실에 비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덕수궁 투어의 큰 맥락은 고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저 힘이 없고 나라를 빼앗긴 왕으로만 내게 남아있던 그에 대한 인식이 덕수궁 투어를 통해서 조금은 바뀌었다. 그의 손길과 국가의 수장으로 행한 결단력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한 딸 덕혜옹주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건물에서 엿보이기도 한다. 아마 투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사실들이다. 시청 앞을 몇 번이나 걸었지만 내가 들어갔던 그 문이 덕수궁의 입구인지도, 안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는 지도 지금껏 몰랐다. 한 번의 호기심이 준 새로운 경험은 내게 일상인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보게 한 재발견의 시간이었다.

  

외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땅을 밟고 있는 우리네 역사를 자세히 느껴본다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결국 살아가는 공간은 여행지가 아닌, 바로 이곳에서의 일상이니 말이다. 말로만 듣던 덕수궁 돌담길은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 속 장소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하나의 점이 되었다. 노랗고 빨갛고 푸르던 밤, 2019년의 가을 속 한 페이지는 덕수궁의 아름다움으로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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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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