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제17회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_그 후

단편 영화의 매력
글 입력 2019.11.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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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에 다녀왔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9번째 국제경쟁 영화들을 보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다.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에 도착하자 상영관 앞 작은 로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미리 공지했던 영화인 소장품 경매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안성기, 손숙 등 영화인들의 애장품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뜻 좋은 행사였다. 안성기 배우의 선글라스 경매에 참가할까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서 구경만 하다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국제경쟁9에 속했던 영화는 <미스 샤젤>, <송 스패로우>, <러스트>, <렌탈 밴의 세 가지 이야기>, <라즈베리 맛>까지 새로운 연출과 각본이 돋보이는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 3줄짜리 짧은 영화 소개만 보고 이 시간대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일요일 오후 6시에 시작하는 국제경쟁9의 영화들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시간대가 내게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타이밍이 이 영화 속으로 이끌었고 결론적으로는 내게 황금 같은 타이밍이 되었다.

 

5개의 작품 모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내용의 영화였지만 90분의 시간 동안 연달아 본 5개의 단편 영화 중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미스 샤젤>과 <라즈베리 맛>이었다. 우연히도 영화가 끝난 뒤 마련된 GV 타임에 이 두 작품의 감독이 초대되어 함께 얘기를 나눠볼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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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영화인 <미스 샤젤>은 프랑스 감독의 대학 졸업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카메라의 시선이나 연출보다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 영화였다. 우선 두 여주인공의 관계가 이목을 끌었다. 미인대회에서 1,2위를 다투는 라이벌 관계이자 서로의 친구, 가족 모두 경계하는 숙적과 같은 존재로 비쳤던 두 사람은 영화 중반부에 보여주는 서로를 향한 모호한 눈빛과 감정으로 혼란을 만든다.

 

외적으로 지켜야 할 또는 당연히 그럴 법한 모습을 지키면서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남몰래 표현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들의 서사가 더욱 궁금해진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클라라와 마리는 마리의 가족에게 그 장면을 들키면서 강제로 헤어진다. 클라라는 밤새 걸어서 다시 친구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녀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옅은 미소를 내보인다.

 

후에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이 미소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토마 베르네 감독은 클라라가 언젠가 극복해야 할 일이었고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라 그것을 겪고 넘어설 것이라는 의미의 미소라고 대답해주었다. 영화 내내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던 클라라가 그 새벽에 보여준 옅은 미소는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내게 씌워진 사회적 프레임대로 행동하면서 그 프레임 안에서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밖에서 즐기는 게다가 두 여자의 감정을 사랑인지 우정인지 알 수 없게 애틋 미묘하게 그려낸 것이 흥미로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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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즈베리 맛>은 마지막에 상영되었다. 화성 기지 건설을 위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우주행을 택한 아슬란과 마지막 밤을 보내는 그녀의 언니의 모습을 담은 연출이 기가 막힌 영화였다. 상업 우주 영화였던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처럼 광활한 우주의 모습을 단 한 컷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차 안에서 잠든 아슬란의 꿈속에서 나는 그 어떤 우주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우주로 떠나는 여행을 체험했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하루라는 설정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침울하고 차분하게 만들었지만 아슬란의 꿈속에서만큼은 우주에 대한 그녀의 설렘과 약간의 공포까지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영화가 끝난 뒤 Q&A 타임에서 조카를 임신한 언니를 지구에 두고 화성에 가서 그녀는 후회하지 않고 잘 살고 있을지에 대해 감독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아주 잠깐씩은 지구를 그리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잠들기 직전 임신한 언니의 배를 쓰다듬는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지만 얼굴도 보지 못한 조카에 대한 애틋함과 혼자 남겨진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한 번씩 그녀에게 왔다 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

 

여러모로 제17회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는 단편 영화에 대해 쉽게 가질 수 있는 편견을 깰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단편 영화 혹은 독립 영화는 관객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상업 영화와는 달리 서사를 풀어내는데 불친절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그만의 세계에 도취해 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사실 내가 그랬다. 어쩌면 그런 오만한 편견들은 내가 단편 영화의 세계를 그 속에서가 아니라 한걸음 밖에서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에 생겼던 것 같다.

 

실제로 그 속에 들어와서 본 단편 영화는 너무나 간단명료하고 또 흥미로운 인상을 주는 영화들로 가득했다. 오히려 상업영화보다 훨씬 작은 디테일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느껴질 정도로 세심했다. 이 영화제를 계기로 매년 작은 편견들을 하나씩 깨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 속에 직접 들어와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밖에서 보는 그 세계와 안에서 느끼는 이 세계의 매력의 천지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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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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