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을 담아낸 스크린 -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제17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1 리뷰
글 입력 2019.11.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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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담아낸 스크린

제17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1 리뷰


Review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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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광화문 광장 사거리, 광화문과 서대문, 시청, 종로로 갈 수 있는 갈림 길에서 서대문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쉽게 ‘씨네큐브’를 찾을 수 있다. 주말이라 영화관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원래 씨네큐브의 분위기와는 달리 시끌벅적했지만, 분명 문 밖 광화문의 시끌벅적함에 비교하면 조용한 적막처럼 느껴졌다.

 

상상이라는 스크린에 담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기 위해 국제 경쟁작보다는 국내 경쟁작을 골랐다. 단편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경험 자체도 처음이기 때문에 그냥 일반 극장에 앉는 것보다도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내년의 단편영화제를 기대하며 마냥 편하게만 볼 수는 없었던 국내경쟁작들을 차근차근 훑어보자.

 

*

 

#1 탈날 탈(頉) (Breakdown)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남자는 잠을 깬다. 익숙한 것들이 잘못 연결되어 있다. 현관문을 열면 화장실 불이 켜지고, 화장실 불을 켜면 텔레비전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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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다섯 편의 작품 중 가장 의문이 많이 생기는 작품이었다. 소리부터 시작해 어두운 배경까지 스릴러의 긴장을 넘어서 공포까지 느껴졌다. 홈쇼핑을 보다가 잠이 든 듯한 모습의 남자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일상이 해체되는 과정을 생생한 배우의 표정으로 알 수 있다. “근데..” 하고 마무리 짓는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뭘까. 가끔 너무나도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낯선 일상이 탈나고 고장(Breakdown)난다는 건 어떤 소재보다도 공포스러웠다.

 


#2 움직임의 사전 (Movements)


“어떤 아프리카 바오밥 나무는 10분 동안 0.008mm자란다. 그사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개 그레이하운드는 12km를 달리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18000km돈다. 이 작품의 상영 시간은 10분이고 나는 하루에 2초를 만들었다. 우리는 함께 걷고, 보고, 일하고, 달리고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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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존재하는 각자의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느리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바오밥 나무, 그레이하운드, 사람, 고목 등이 등장한다. 각자 다른 속도로 같은 곳으로 향하는 첫 번째 씬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준다. 이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역할’이라는 소제목이 기억에 남는다.

 

벽을 하얗게 페인트 칠을 하는 젊은 여자와 노목과 그레이하운드. 그레이하운드는 빠르게 이곳 저곳을 난잡하게 칠하지만 금세 지쳐 화면 밖으로 나간다. 젊은 여자는 열심히 이곳 저곳을 칠하다가 적당히 대부분 다 채우자 퇴장한다. 고목은 가장 느린 속도지만, 모든 벽을 완벽하게 칠하고 나서야 밖으로 퇴장한다. 각자의 속도만큼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3 주근깨 (Freckles)


“억지로 다이어트캠프에 끌려온 십대 영신. 룸메이트 주희와의 입맞춤 후 지겨웠던 캠프생활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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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영신의 주근깨를 유심히 쳐다본다. 흔들리는 영신의 눈은 주희를 응시한다. 늘 잿빛이었던 영신의 일상은 분홍색으로 요동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조금 다르게 인식한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누군가는 일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처럼. 영신의 일상은 주희에 따라 변화한다. 분홍빛에서 다시 잿빛, 그리고 마지막은 회색 빛으로 변한다. 자신의 분홍색 일상을 누군가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4 K대_oo닮음_93년생.avi (Lookalike( )_22yo_Koreancollegegirl.avi)


“26살 혜원은 자신의 섹스동영상이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전 남자친구 지호를 고소하고, 살던 곳을 떠나 새 알바자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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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몇 글자와 동영상 정도로 내 삶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K와 oo는 특정 인물이 아닌 대한민국에 사는 누구나를 뜻한다. 영화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혜원의 심정과 그로부터 파괴된 일상을 화면으로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평온해보이는 일상,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과 주변 풍경은 혜원을 더 압박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질문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그녀가 살아가는 일상은 공기가 사라진듯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화성에 떨어진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변은 아무렇지 않지만 그녀의 일상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무참하게 파괴된다.

 


#5 노량대첩 (Noryang Battle)


“임용고시 5수생 연주는 답답한 속을 뚫기 위해 매일 일탈을 저지른다. 고시 합격을 방해하는 적을 만나게 된 날, 일탈을 하다 경찰에게 잡히는 위기에 처한다.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연주의 인생. 하지만 바로잡을 기회가 곧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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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지만 이들이 담아내는 노량진의 일상은 무너져있다. 극에 등장하는 고시생 연주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 흠집을 내는 취미가 있다. 조용한 영화관에서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른다거나 버스 앞자리에 앉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가위로 잘라버린다. 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일상에 흠집을 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과 내 일상에 어떤 흠집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을 고시생이라는 신분과 그 일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옥죄고 압박한다.


*

 

국내경쟁1이 상상이라는 스크린에 담았던 현실은 우리의 ‘일상’이다. 일상은 여러가지 형태로 공기처럼 존재한다. 가끔 그 공기는 숨을 옥죄어 오기도 하고, 비 냄새 가득하다가도 어느날 맑게 개기도 한다. 마치 공기처럼 잡을래야 잡을 수 없지만 늘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을 단편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단편영화가 주는 매력은 이런 것이다. 일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삶의 단면을 조금더 날카롭고 매끄럽게 절단하여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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