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즘 기계들은 왜 이렇게 싹수가 없어? [영화]

글 입력 2019.11.0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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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계들은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

 

- 영화 ‘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 대사 中

 


내비게이션, 지도, 날씨, 냉장고 속 물품, 식당 안 주문, 면접까지 기계들이 인간의 일을 도맡아 하는 일은 많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일을 대신에 한다.’라는 현재 진행형인 진부한 도식, 그 이후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생각해보았다. 안드로이드(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나를 대신한다면 하는 가정을 말이다. 벗어나고 싶고 귀찮은 일들은 기계가 하면 편하겠다 싶었다. 감정노동을 할 필요도 없고, 단순한 일들은 알아서 해준다니 생각만 해도 달콤했다. 내 상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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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있고, 기계 있다’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어느 카페의 직원들이다. 파란 눈을 한 남자(카페 매니저)는 형광등을 쳐다본다. 이내 불이 꺼진다. 카페 안, 밖. 어떠한 몸짓 없이 눈으로 조명을 끈 남자는 곧 빈 의자를 찾아 앉고는 눈을 감는다. 가슴에는 스마일 충전 마크가 표시된다.

 

다음날 카페를 찾은 손님이 케이크가 맛이 없다며 종업원을 불렀다. 파란 눈을 한 주인공 안다가 일정한 리듬으로 걸어온다.


 

주인공 안다 曰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손님?

손님 曰 흐음... 이 케이크가 맛이 없네, 한번 먹어볼래?

안다 曰 손님, 원하신다면 케이크를 다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손님 曰 아니 먹어보라고, 이것 좀. 먹어봐.

안다 曰 …. 손님, 원하신다면 케이크를 다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손님 曰 하, 요즘 기계들은 왜 이렇게 싹수가 없어? 뭐야, 너 지금 웃어? 지금 비웃는 거야?

 


손님은 왜 그랬을까? 무엇을 바란 걸까? 파란 눈을 한 주인공 안다에게는 감정이 없다. 그저 적당한 웃음기를 띄고 반복되는 문장만 읊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기계는 문제만 해결하면 될 뿐이었다. 적당한 답변에도 손님은 화를 내었다.


우린 종종 기계를 부른다. 그들은 이름이 있다. 브랜드별로 앙증맞고 썩 괜찮은 이름들이 붙고, 우리는 그들을 부른다. 날씨나 미세먼지를 묻고, 노래 또는 스케줄을 읊어달라고 요구한다. 상냥한 목소리의 그들은 친절하며, 흐뭇한 존재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서로 대화한다고 느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 번, 나도 그들을 부른 적이 있었다. 시작은 저녁 메뉴 추천이었지만 얼마 안 가 나는 핸드폰을 침대로 집어 던졌다.


대화는 대충 이러했더랬다. 뭐하냐고 물으니 핸드폰의 목소리는 당신과 대화한다고 했다. 추천 질문이 하단에 떴다. 뭘 좋아하냐는 질문을 클릭하니 자전거 소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끝말잇기를 하자 하니 다음에 뵈자며 손을 흔든다. 웃는 이모티콘이 날 비웃는 것 같아 코웃음이 났다. 살짝 오기가 생겼다. 심심하다고 말하니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다. 에라이. 


메롱~하니 그게 뭐냐고 물으며 하하 웃는다. 하단의 추천 질문 중에 최대한으로 아니꼬운 질문을 클릭했다. 감정 없는 기계야, 이거나 받아라. …. 답이 없다. 숨 막히는 정적 이후, 그는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못 알아듣겠어요~.” 땀을 삐질 흘리는 이모티콘을 내게 날려 보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를 골리려는 건지, 화가 났고, 남은 건 저 멀리 내던져진 핸드폰뿐. 나는 영화 속 손님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뭐 이리 싹수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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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손님이 원한 건 무엇일까? 시작은 단순 호기심이었다. 기계가 사람처럼 대답하는 게 웃기고 흥미로웠으니까. 그런데, 묻는 말에 바보 같은 대답만 한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피한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는 건 알지만, 인간이 만든 기계 주제에 이상하게 인격이 부여된 것만 같다. 기계와의 관계에서 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어쩌면 정말 당연한 생각이기도 하다.) ‘사람’은, 은근슬쩍 인간성을 가지게 된 것만 같은 기계가 아니꼬운 것이다.

 

 

너 지금 웃어? 지금 비웃는 거야?

 

 

감정 없는 안다에게 손님은 감정 섞인 말을 내뱉는다. ‘웃는다’를 넘어 ‘비웃는다’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기계에 인간성을 부여한 말 같다. 안다가 웃음이 기본 장착된 안드로이드인 건 확실한데,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 사람과 안드로이드의 무너지는 경계


 

Break Time. 쉬는 시간이 되고 사람으로 돌아온 안다는 다른 매장으로 걸어갔다. 이번엔 일정한 리듬으로 걷지 않았다. 주문을 마치고 케이크를 먹던 안다는 파란 눈동자를 가진 직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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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曰 이 케이크 너무 단데. 한번, 먹어볼래?

직원 曰 케이크가 달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것으로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안다 曰 아니, 케이크가 너무 달다니까? 먹어봐.

직원 曰 손님, 케이크가 달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것으로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안다 曰 …. 하, 너 지금 웃어? 지금 비웃는 거야?

직원 曰 …. 케이크가 달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것으로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감정 없는 직원에게 화가 난 안다는 자신이 안드로이드 종업원이었던 그때, 손님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계인 직원에게 똑같이 내뱉는다. 비웃냐는 말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하며 말해주면 좋으련만 기계는 또다시 바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쯤 되니, 인간의 ‘기계를 사람 아래 두려는 생각’을 알아차린 기계가 오히려 사람을 화가 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생각 든다. 기계가 줏대를 가진 것만 같다.


기계였던 안다는 사람의 표정과 말을 보았고, 따라 했다. 사람의 말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현대의 기술이 익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의 말투, 표정, 어구를 조합하고 분석해서 따라 해 편의성을 준다. 안드로이드는 점점 인간을 미러링하고, 인간은 미러링 당한다. 서로가 닮아가며 결국 구분은 흐려진다.


머지않을 미래에는 10개의 일자리에 10명의 사람 대신, 10개의 안드로이드가 설치된다. 구분이 흐려진다면 10‘명’의 ‘안드로이드’가 들어설 것이다. 사람은 일자리를 잃으며 결국 사람은 안드로이드 화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설 곳이 없어지기에. 편리성과 친절함을 겸비한 안드로이드는 환영받는다. 사람에게 까탈스럽게 요구되는 것을 기계는 단순하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안다도 마찬가지였다. 설 곳을 찾기 위해 안드로이드가 된 것이다. 안드로이드와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일까?

 

 


# 사람은 감정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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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에게는 감정은 쓸데없다. 그저 손님에게 친절하기만 하면 된다. 결국 사람은 친절하나 감정이 없어진 안드로이드에 발맞춰 안드로이드화 되고, 이러한 인간, 아니 이제는 기계가 되어버린 그들을 매니저 역할이 부여된 기계는, 통제한다. 사람이 기계를 통제하는 것 같지만, 어느 틈에 서서히 기계가 사람을 통제한다.


살아남으려면 기계만큼 감정이 없어야 하며, 살아남으려면 기계만큼 예의 있으면 된다. 안다를 대했던 직원이 쉬는 시간에 케이크를 먹고 있자, 매니저는 다가와 말을 한다. “우리는 먹는 것으로 충전하지 않습니다. 배터리로 충전합니다.” 또다시 의자에 앉은 안드로이드 같은 사람들. 그들의 가슴엔 스마일 표시등이 켜지며 그들은 충전된다. 그들은 다시 적당한 웃음, 적당한 친절을 장착한다. 감정이 없어진 그들은, 인간은, 불행해진다.


이따금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인권보다 더 빨리 발전되어 감을. 인간의 인권향상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기술 발전은 결과로서 눈에 보인다. 콘센트가 필요 없는 청소기, 접히는 핸드폰, 액자형 TV와 스테레오, 무인 발권기 등. 보이지 않는 떠다니는 것을 붙잡기보다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손으로 잡는 것이 더 실체화되어있기에 그러한 발전에 더 목매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의 10년 전과 지금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기계와 편리한 안드로이드가 펼쳐져 있는가. 기계의 발전은 빠르게 계속된다. 혹시, 내게 퉁명하던 카페 직원의 목소리와 표정을 볼 바에는 무인 주문기가 낫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내가 직원이라면, 내 앞의 손님의 짜증과 화를 견딜 바에는 차라리 그들이 안드로이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안드로이드만 찾다가 머지않을 미래에 훌쩍 커 버린 기계에 잠식당하는 건 그리 어려운 상상은 아니다.


기술 발전이 여러모로 내게 편리로 다가올 줄만 알았던 딱, 거기까지의 나의 상상은 짧고 단순했다. 안드로이드처럼.

 

길고 깊은 감정을 가진 사람 대신, 단순한 안드로이드만이 답일까? 기계와 사람 간의 엉켜버린 약육강식과 미러링의 시대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 물을 것이다. ‘당신은, 안드로이드입니까?’

 

 

[서휘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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