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망이 익숙한 사람과, 은신처가 되겠다는 잡지 - hideaway(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2

글 입력 2019.11.04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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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망치고 싶은 건 어떻게 알고


 

잡지 속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켰다. 스피커로 마음까지 울리도록 크게. 그리고 잡지를 다 읽어버렸다. 마음이 찡했다. 어딘가로 향하고 싶었다. 바르셀로나 해변의 노을이 그리웠다. 겨울에 떠난 여행의 기억이 뭉클했다. 나의 도망들이 안쓰러웠다. 잡지 안에 담긴 이야기와 사진, 흘러나오는 음악에 푹 파묻혀 오늘 만은 생각 속으로 도망을 쳤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숨을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라 자신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번호의 주제는 ‘The Runaway’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음에 닿았나보다. 그래서 꼭 보고 싶었다. 도망을 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담았는지. 도망이라는 단어는 내게 끔찍하게 싫은 단어이면서도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단어를 떠올리면 불현 듯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연민의 마음을 만들어버린다. 그 단어에게 느끼는 복합적인 마음은 하이드어웨이 잡지를 ‘나의 잡지 리스트’로 삼도록 만들었다.

 

포기하고 현실을 ‘일시 정지’시킨 채 어딘가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나의 모진 습성이었다. 그냥 단지 여기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떠나곤 했다. 바다로, 도시로, 해외로, 침대 속으로, 깊이 아주 깊이. 그곳이 어디든 도망을 친다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뒤로 저버릴 수 있는 명분이 생겼고, 나는 비일상 속에서 짜릿함과 함께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곤 했었다.

 

그렇다. 돌아온 현실에는 또다시 해야 할 것들이 마주하고 있었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내가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벌어지는 도망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꽤나 즐겼던 것이 틀림없다. 늘 어디론가 떠나 그 속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도망이 좋다. 하지만 싫다. 도망은 늘 이런 양가감정이 뒤따라온다. 평온하고 온전한 도망을 원했다. 그리고 하이드어웨이 잡지는 내게 그 편안함을 선사했다.

 

에디터라는 사람을, 잡지를 펴내는 사람을 깊이 동경한다. 그들이 가진 일상을 바라보는 눈, 누군가에게 지극히 평범할지도 모르는 세상을 주제로 삼는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깊이 파고드는 통찰력을 존경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만난 잡지 중 가장 나를 위로해주고, 나에게 말을 건네주었다. 나는 지금 꽤, 많이 도망을 치고 싶었으니까.

 

  

 

그럼요, 은신처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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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숨을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입니다. 한 권의 잡지 안에 하나의 삶의 태도를 담으며, 친숙하지만 그래서 전형적인 이미지에 갇혀버린 일상적 가치를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로 다루고자 합니다. 더 많이, 더 풍부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모든 것들, 말하자면 놓치기 쉬운 일상의 이면들을 모아 hideaway(은신처)를 마련합니다.

 

두 번째 이슈 [The Runaway]는 '모든 도망자들을 위한 은신처'라는 슬로건 아래, 도망이라는 행위와 사건을 둘러싼 다층적인 결들을 다각도로 들여다봅니다.

 

   

은신처가 되겠다고 스스로 말하는 잡지, 그 속의 내용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차근차근 그 내용을 훑어보고, 이번 호의 주제인 도망은 어떤 식으로 풀어냈는지 살펴보았다. 책을 덮으며 스스로 생각해본 도망은 저 마다의 ‘비일상’에 대해서 다룬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혹은 대한민국에서 조금은 ‘별나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하고, 대학에 들어와 또다시 비슷한 시험을 준비하고 전형화된 직업을 꿈꾼다. 틀에 박힌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의 모습은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히 퍼져있다. 이렇게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회색빛으로 획일화된 시대인 반면 또 그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개성이 삶의 끝까지 더 나아가 ‘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 시대가 되었다. 과거보다 매체와 기술이 발전했고, 일상의 모습도 눈부시게 변화했다.

 

하이드어웨이 vol.2 [The Runaway]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의 도망은 지쳐서, 회피하고 싶어서, 패배자의 마음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회 속에 자신의 자아를 끼워 맞추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펼치며 살고 있으며 ‘평균’ 속에 그저 그런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변두리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모습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잡지는 간결하고 탄탄하다.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잡지를 집어든 이유는 도망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고 싶었고, 사색하고 싶었고, 타인의 도망을 염탐하여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목마름을 들은 듯 잡지는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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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마지막 일몰

 

도망자 B “먼 곳으로 떠나왔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니까요. 내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머나먼 곳에서 내가 지나온 한 해를 돌아봅니다. 마냥 후련하지만은 않은 기분입니다.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일상의 문제들이 떠오르네요. 어둠이 찾아든 뒤에도 명쾌한 답은 떠오르지 않겠죠.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내 쓸쓸한 마음을 굳이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해가 기울어 갑니다. 조금만 더 천천히 사라져주면 좋을 텐데요.”

 

 

이 문장들에 사로잡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바르셀로나의 해변이 떠올랐다. 꿈도 공부도 내 자신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그저 떠나고 싶었던, 어쩌면 도피였을지도 모르는 첫 유럽의 기억은 지금은 먼 기억이 되어 가끔씩만 꺼내보는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일몰이라는 단어와 도망이라는 단어를 함께 보는 순간, 그때의 유럽의 해변과 노을이 떠올랐다. 그때의 마음이 이 글과 같았으리라. 1월의 겨울 여행에서 지난 해를 돌아보며 미완의 문제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여행을 마음 속에선 도망으로 생각했으리라.

 

음악을 들으니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깊이 잡지에 파고들었다. 하이드어웨이 이번 호의 구성은 이렇게 도망자들의 플레이 리스트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안식처가 된 여행, 예술에 대한 하이드어웨이만의 해석, 주제와 관련된 감정을 자신의 방식으로 나타낸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었다.

 

평소 사진과 미술 작품에 대해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이슈의 큰 맥락이 도망, 안식처, 결핍과 같은 감정들로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작품들이 그저 공감이 되고 먹먹히 다가올 뿐이었다. ‘도망치고 싶어서 침대에 파묻혀 누워있던 내 마음이 이랬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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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잡지 안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또한 한 주제로도 다른 형태로 예술은 표현되고 있었으며, 기존에 알고 있던 문학 작품을 다르게 볼 수 있던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잡지의 일’이란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채롭고 새로운 시각을 새롭게 선사해주는 일을 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생각에 딱 부합하는 소박하지만 탄탄한 잡지가 하이드어웨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몸은 쉬면서도 마음은 한시도 쉬지 못했고, 매일 어딘가에 쫓기는 듯 바빴다. 그런 나에게 당신의 도망의 순간들은 어땠냐며 물어보는 이 잡지에게 속마음을 들킨 듯 그리고 내 과거의 모습을 들킨 듯 했다.

 

도망을 치고 싶었다. 그냥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싶었다. 녹초가 된 일상에 들어온 작은 책 한 권은 그들의 바람처럼 나의 은신처가 되었고 마음에는 따뜻함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들이 만든 음악 플레이 리스트는 지금도 나의 방을 울리며 잠시의 도망의 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어쩌면 도망은 진정한 마음의 휴식이 아닐까. 오늘의 나는 생각해본다. 이 잡지가 계속되면 좋겠다. 나의 안전한 은신처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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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어웨이 매거진
- Vol.2 The Runaway -
 

모든 도망자들을 위한 은신처

 

 

<기획 노트>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숨을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입니다. 한 권의 잡지 안에 하나의 삶의 태도를 담으며, 친숙하지만 그래서 전형적인 이미지에 갇혀버린 일상적 가치를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로 다루고자 합니다. 더 많이, 더 풍부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모든 것들, 말하자면 놓치기 쉬운 일상의 이면들을 모아 hideaway(은신처)를 마련합니다.
 
두 번째 이슈 [The Runaway]는 '모든 도망자들을 위한 은신처'라는 슬로건 아래, 도망이라는 행위와 사건을 둘러싼 다층적인 결들을 다각도로 들여다봅니다.
 
도망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도망의 동기와 양상, 결과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니까요.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2호에는 도망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기존의 고루한 이미지들을 걷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담겨 있습니다. 도망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더 나아가 도망 앞에서 느끼는 익숙하지만 낯선 감정들을 여러 형식과 내용의 콘텐츠로 담아봤습니다.
 
'도망치고 달아나는 태도'는 인간관계, 공간, 예술, 여행, 패션 등 다양한 삶의 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죄악의 낙인인 죄수복, 고양이가 가르쳐준 인간관계에 관한 작은 통찰, 내면의 깊은 불안을 증오하면서도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어느 유화 작가의 세계관,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를 통한 '사라짐'에 대한 단상, 아이슬란드 여행, 마감에 쫓기며 살아가는 잡지 에디터들이 사랑한 여러 도시들까지. 패션, 여행, 화보, 에세이, 인터뷰, 칼럼 등 때로는 촘촘하고 때로는 느슨하게, 도망의 여러 의미를 반추해볼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마련했습니다.
 
더 풍성하게 이야기될 필요가 있는 것들의 hideaway(은신처)를 지향하는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이야말로, 모든 도망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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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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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정하다
    • 오!!읽어보구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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