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삶의 반추, 글쓰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방법
글 입력 2019.11.0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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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큼 되돌아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삶을 반추하는 일의 중요성은 당위적이고 일반론적이지만, 그 원인과 과정은 당연한 방법이 없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타인이 될 수도, 특정한 사건의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마주했기 때문에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 나르키소스가 조금 더 불투명한 상을 마주했다면 사랑의 충동은 조금 줄어들지 않았을까.


우리는 타인의 이미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단편적인 이미지부터 복합적인 부분까지, 타인의 영향력은 우리를 파고든다. 상대방의 이미지가 투사되어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자신의 이미지에 투사하는 과정의 끝은 돌고 돌아 자신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흔히 타인과의 '비교'라고 한다. 정의는 비교로부터 시작된다. 개별적인 개체들의 차이가 개체를 설명해주고, 그것은 곧 정의가 된다. 뜨거움은 차가움의 부재다. 차가움이라는 비교 대상이 없다면 뜨거움이란 개념도 없다. 그래서 이미지의 충돌은 곧 타자와의 비교를 끌어내고, 자연스럽게 자아를 정의한다.


이미지를 통한 자극 뒤에 오는 성찰은 상당히 짜릿하면서도 쓴맛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는 실재하기 때문에 이미지의 총체는 포괄적인 모습부터 구체적인 부분까지 한순간에 다가온다.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은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내가 저렇게 되면 어쩌지' 정도의 생각으로 시작된다. 이미지가 부여한 미래의 모습은 이미지 자체로서 실현되었지만, 자신을 정의할 가능성은 상상으로 그친다. 이미지가 부여하는 운명의 모습이 어떠한 형태로 결정될지 모른 채로 절망하기도 하며,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우리는 그 성찰을 삶의 과정에서 끝없이 접한다. 실재하는 만큼 명확하지만, 허상의 크기도 거대해진다. 이미지의 자극은 확실하지만, 이미지의 운명은 불완전하다.


성찰의 빈도나 깊이만큼 중요한 것은, 찾아오는 성찰의 방법이다. 이것은 성찰에 대한 일반론 이상으로 고민할 부분이다. 불편한 느낌이 찾아온 후 한숨을 한번 뱉어내 공기 중으로 걱정을 태우는 사람도 있으며,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을 짚어 돌아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알고 가는 것은 누구나 중요한 숙제이자 삶의 과업이지만, 각자의 방법은 다르다.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돌아볼 것인가. 스스로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이고, 흔히 과거에 대한 기억과 기억을 보완할 상상을 사용하곤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거의 행동을 기억하며, 그것을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상상은 자신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 과거의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계속되는 변명은 결국 확증편향에 머무른다. 이미지의 자극은 자아를 완성할 수 없지만, 스스로 파고들기만 하는 성찰은 자아를 망가트린다. 이미지는 너무 가볍고 과거의 성찰은 외부를 둘러보지 못한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시간과 생각을 정리한다. 이미지가 너무 가벼워지지 않고, 나의 성찰을 좀 더 객관적으로 남길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삶의 시간을 보내고 남는 것은 몇 문장뿐이지만, 글쓰기가 주는 삶의 충실함과 유익은 충분히 선택할만한 방법이다. 일기는 난잡한 방을 정리하며 누울 수 있는 한 귀퉁이를 찾는 과정이다. 내가 아닌 것에 끌려 지내다 난잡해진 머릿속과 삶을 정리하는 방법이다. 일기를 쓰는 순간은 절망 속 희망이 되기도, 고요가 되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의 삶, 사유할 대상은 이미지로 해소하기엔 불완전하며 스스로 해결하기엔 안전하지 못하다. 글쓰기는 마음의 운동이었다. 어떠한 글쓰기라도 꾸준히 한다면 삶을 밀고 나갈 힘을 준다.


글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삶을 살아가는 도구가 된다. 삶의 도구로써 글쓰기는 자아를 외부로 꺼내고 다시 소화하는 반추의 과정을 거친다. 그동안 아트인 사이트에서 4개월 동안 거쳐온 글쓰기는 너무나도 황급히 지나갔다. 그동안 지나간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는 당장 알 수 없다. 하지만 4개월 동안의 글을 반추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삶을 반추하는 방법은 글쓰기라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지낼 시간을 조금 더 알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알기 위해서 나는 계속 글을 써 나간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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