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즐비한 복고풍, 창작의 대장정 속 휴식 [문화 전반]

지금은 복고의 시대이다
글 입력 2019.11.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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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이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과거에 방영했던 프로그램이 다시 내보내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공중파에서 운영하는 공식 채널에서 <무한도전>, <1박2일>과 같이 이전에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예능이 다시 업로드 되는 것을 볼 수 있고, TV에서는 <허준>이라거나 <야인시대>와 같이 과거 많은 사람들의 안방을 책임졌던 굵직한 작품들이 편성되어 내보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역할을 맡았던 김영철 배우는 옛 드라마의 대사로 광고 출연까지 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을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경연에 참여하는 각 그룹들이 타 가수의 노래를 재해석하여 퍼포먼스를 꾸린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중, 프로그램의 참여 팀 중 하나인 ‘러블리즈’가 2011년 곡인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의 노래 ‘식스 센스(Sixth Sense)’를 커버하여 화제가 됐었다. 그 영향으로 나온 지 8년이나 지난 노래가 다시금 주목 받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의 한 시리즈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는 ‘스타 로드’라는 캐릭터를 통해 아예 6-70년대 유행했던 팝송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이 등장할 때는 어김없이 옛날 팝송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고, 뜬금없이 스파이더맨의 입을 통해 오래 된 영화 작품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국내외 공통적으로, 또한 음악과 영화 심지어는 웹툰까지(‘네이버 웹툰’에서는 <치즈인더트랩>이나 <살인자ㅇ난감> 등 한 때 크게 인기 있었던 만화 몇 작품을 재연재하고 있다) 넓은 문화 장르에서 과거의 것을 되찾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들이 자신의 추억을 기념하려는 행동일까? 유난히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들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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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복고풍’이 하나의 시류로서 전반적인 문화에 걸쳐 유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tvn’에서 굉장한 히트를 쳤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가수 ‘선미’의 ‘주인공’, ‘사이렌’과 같은 레트로 감성의 노래들처럼 말이다. 하나의 트렌드로서의 ‘복고’는 잊히고 있는 명곡과 명화들을 어린 세대에게 전해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혹은 옛날의 그 감성을 선호하는 창작가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가능성 있는 또 하나의 추측이 있다. 그 추측이란, 대중 문화계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체된 시점에 도달했기에,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기를 포기하고 기존에 있는 컨텐츠에 약간의 변형만 주어 효율적으로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을 거란 것이다.

 

사실 음악이든 영화든 방송이든 완전히 순수 창작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란 존재하기 힘들다. 어떤 경로로든 다른 창작자들의 산물에 영향을 받게 되어있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학습하고 응용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표절’이라고 규정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각 작품 간의 ‘차이점’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며 그것들을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하려고 한다. 어떤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경우 하나의 ‘틀’로 굳혀져 여러 방면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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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으로 지금은 종영된 전설급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있다. <무한도전>은 2006년부터 방영을 시작하여 약 12년간 563편을 송출하며 다양한 아이템, 에피소드를 선보였다. 그 아이템들 중에는 현재 독립된 하나의 프로그램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들도 있다.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초창기 에피소드 ‘무인도 특집’과 유사한 내용으로 <정글의 법칙>이 있고, 뉴욕까지 찾아가 한국 요리를 직접 요리하여 홍보했던 ‘식객 특집’과 유사한 <현지에서 먹힐까?>, <윤식당> 등의 쿡방(‘cook’과 ‘방송’의 합성어로 ‘요리하는 방송’을 뜻한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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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한 때, ‘타임슬립’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2012년 봄 ‘SBS’에서 방영되었던 <옥탑방 왕세자>는 조선의 왕세자가 현대의 서울로 타임슬립을 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SBS는 <신의>라는 또 하나의 타임슬립 드라마를 내놓는다. 이번에는 여주인공이 고려시대로 타임슬립을 하는 것이었다. SBS에서 두 편의 타임슬립 드라마를 방영했던 그 해, MBC에서도 마찬가지로 타임슬립 내용이 담긴 <닥터 진>을 송출하였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자체는 여타의 장르와 작품들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이다. 과거와 현재와의 만남은 이야기의 흥미도를 높일 수 있는 유리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임슬립은 가까운 과거로 행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중년인 주인공이 청소년기로 간다거나 하는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2012년에 방영되었던 세 작품은 모두 먼 과거, 즉 문헌과 유물로만 남아있는 ‘역사’의 시대와 교류하는 것이었다. 세 작품 모두 현대와 동떨어진 인물과 지극히 현대적인 인물의 만남을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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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작품과 작품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맥락이 놓여있다. 작품의 한 소재가 큰 인기를 얻으면 그에 따라 큰 영향력이 부여되고, 그것이 다른 창작가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지금의 복고풍 유행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20대가 어렸을 때 봤던 TV 만화라거나 예능들을 유튜브나 여타의 분야에서 주요 컨텐츠로 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계기는 사소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단순 추억팔이 게시글에 많은 댓글이 달리는 것을 목격했거나, 유튜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옛날 예능 영상을 찾아본다는―그것이 저작권 침해임을 알면서도―사실을 알았거나 하는 등의 관찰로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

 

복고는 옛날 것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주관에 따라 변형이 있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새로운 창작물의 밑거름이 되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고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복고의 본질은 여전히 ‘익숙한 것’, ‘안락한 것’에 놓여있다. 복고풍을 찾는 이들은 그것이 익숙해 보여서 찾는 것이지 새로워 보여서 찾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는 ‘복고’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블 영화를 보며 듣게 된 올드 팝이 신세대에게는 아주 낯선 것으로 여겨지듯이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복고는 세대 간의 소통을 유도하는 훌륭한 매체이다.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그들 사이에 연결 지점을 심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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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는 양면성을 지닌 것이다. 복고는 한 세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귀하고 세대 간의 화합을 도모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반면에 복고는 본질적으로 ‘이미 있던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창작 세계에 있어 큰 정체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러 문화 분야가 포화 상태에 이른 것에 대한 답으로 복고가 제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복고풍을 즐기며 쉬어가는 시기가 필연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쁜 하루에 쉬는 시간이 필요하고 한 사람의 인생에 휴식기가 필요하듯이,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추억할 시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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