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가 내게 준 의무와 의미, P.S. 비에게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마감하면서
글 입력 2019.10.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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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트인사이트가 내게 준 의무와 의미



4개월 전,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욕심이 많았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었고, 토익 점수도 만들고 싶었고, 대외활동도 하고 싶었다. 아트인사이트는 단순히 그중 하나, 대외활동이었다. 아트인사이트를 고른 건 사실 문화초대 때문이었다. 사람이 마음 가는 데에 돈 간다는 데 내가 한 달에 쓰는 돈을 잘 살펴보면, 영화 책 전시회 소비가 은근 컸다. 문화초대만 받아도 돈 버는거다 싶었다. 지원분야는 1. 일주일에 한 번씩 작품(그림, 웹툰, 캘리그라피 등)을 기고할 사람, 2. 문화예술과 관련한 오피니언을 기고할 사람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나는 그때 한창 그림에 빠져 있었지만 작품이라 하기에는 많이 무안했다. 그래서 오피니언을 기고하는 에디터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을 많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보고 전시회 보고 책 읽고 하면서 나 너무 노는거 아닐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하에 좋아하는 것을 잔뜩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정당성을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혼자 마음속에, 아니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조그맣게 끄적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성된 글 한 편을 공식 언론 사이트의 불투명 다수에게 내보인다는 것이 두근거리고 좋았다.

 

그다음에는 좋은 게 왜 좋은지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글을 쓰려면 좋다에서 멈추면 안 됐다. 내 개인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라면 그래도 됐지만, 다음/구글/네이버 뉴스 탭에 뜨는 사이트에 올리는 글이라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더 꼼꼼한 글을 쓰게 했다. 예를 들어 우연히 카페에서 본 폴 세잔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글을 쓰려면 그 그림이 왜 좋은지, 슬퍼서 좋다면 왜 슬픔이 그림에 묻어나있는지 세잔의 인생까지 낱낱이 조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세잔에 대한 영화까지 보게 되고, 세잔의 절친한 친구이자 위대한 작가인 에밀 졸라까지 알게 되었다. 좋은 것에 대한 내 시야가 꼼꼼해지고 넓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은 어느새 의무가 되어 꿈에서마저 활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의무는 나에게 하나의 안전장치로 작동했다. 끝없이 잠으로 도망가고 싶을 때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의자에 앉은 적이 많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에도 기어코 무언가를 하게 만들었다. 그런 날에는 글을 쓰면서, 아 나 이래 봬도 생산적인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 나를 기다리는 토요일 자정 마감시간과 글을 올리는 즉시 봐주는 사람들, 내 글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책상으로 앉히고 커피를 마시게 하고 좋은 것들을 보고 생각하고 쓰게 해줬다. 의무는 의미가 됐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들여다보게 해줬다. 내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지 아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쓸쓸하고 외로울 때 내 곁에서 나를 가장 잘 위로해줄 수 있는 단짝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언제의 일기장 속에는 오늘은 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이 빼곡했다. 나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오늘은 뭘 했고 뭘 먹었고 내일은 뭘 해야지 쓰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묶어 숨겨 놓았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그게 왜 좋은지 내가 언제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지 그때 내가 무슨 기분이었는지 더 이상 우물 속에 가둬두지 않고 조금씩 강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것들이 바다로 가는 길 그 어딘가로 가고 있다 믿는다. 반짝이는 소금 같은 잔여물이 되리라 믿는다.

 

 

 

2. 추신 비에게



안녕 비야. 그 동안 편지는 꽤 써봤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너한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것 같아. 언제나 너를 몰아세워 온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아프네. 네가 좋아하는 여름은 벌써 지나고, 바닥엔 밟혀 터진 은행알들이 잔뜩인 가을이 창 밖으로 지나가고 있어. 그렇지만 너는 가을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르고 예쁜지 알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별좀 보라고 선뜻 말할 수 있지.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좋아. 싫어하는 것 속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넌 어렸을 때 항상 쫑알 쫑알 입을 쉬지 않고 놀린다고, 가족여행이라도 가면 고속도로에서 야무지게 창문을 내리고 노래를 쉴틈없이 불러제낀다고 별명이 참새였는데 어쩐지 지금은 차분해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어. 조용히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너를 보면 서글프고 안쓰럽고 애틋해져.

 

너는 궁금하댔어.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도대체 이 견디기 힘든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혹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끔찍함을 어떻게들 견디고 살아가는지.

 

그치만 비야, 언제나 도망치고 싶다고 입버릇 처럼 말해도 끝끝내 남는 건 너였잖아. 모두가 네 곁을 떠난다고 해도 너는 네 곁에 남아 열심히 너를 지킬 거잖아. 이렇게 단언하는 건 너의 좋은 점들이 끔찍한 점보다 훨씬 많다는 거야. 설령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아. 내가 알고 있어.

 

내가 아는 너는 버스를 탈 때마다 기사님께 인사를 잊지 않는 애야. 수업을 마친 교수님께 박수를 드리며 고생하셨다고 말할 줄 아는 애야. 교수님의 시시껄렁한 농담에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애야. 우산 속으로 몰래 들어온 아이에게 웃으며 곁을 내줄 줄 아는 애야. 아는 데 모르는 척 못할 애야. 눈물을 잃어버리지 않은 애야. 슬픔이 갖는 개별성과 존엄성에 대해 아는 애야. 남을 괴롭히기보다는 차라리 책상에 앉아 혼자 견디는 애야. 겁은 많아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용감한 사람이잖아. 그거 기억나? 네가 좋아했던 애 면회 가려는데 눈 때문에 더 이상 차 못 올라간다는 택시 아저씨 말에 내려서 그 날씨에 멋있게 등산한 애잖아. 네가 사랑했던 애 아파서 병원까지 안고 울며불며 달려간 애잖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애잖아. 이해해보려는 편에 서려는 사람이잖아.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네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고통 끝의 행복 짜릿해" 힘들고 지치고 버거운 시간들에 쫓겼어도 그 끝에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 원망보다는 극복에 더 힘써왔잖아.

 

비야, 그러니까 내 말은 너 잘하고 있어. 언젠가 네가 남긴 흔적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거 의심치 않아. 그러니까 계속 힘내줘. 언젠가 그랬잖아. 투둑투둑 바닥을 두드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어 사람들이 기어코 창문을 열게 만드는 비가 되고 싶다고. 그러니까 힘내줘. 힘을 내서 바닥을 두드려줘.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창문은 열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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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정하다
    • 너무 멋져요!
    • 1 0
  •  
  • ㅎㅎ
    • 최근 글을 우연히 본 후로 비 님의 글을 계속 읽고 있어요. 글에 대해 잘 알지 못 하는 사람이지만 비 님의 글이 너무 좋아요.
      특히  ‘오늘은 이라고 시작한 일기들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묶어 숨겨 놓았다.’ 라는 말이 왈칵 눈물이 날 만큼 너무 와닿았어요.
       비 님의 글을 읽으면 되게 단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멋있으세요!  앞으로도 글 많이 써주세요 :)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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