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은 ‘맛있는’ 독서가 당긴다면 – 독서 주방 [도서]

<독서 주방> 리뷰
글 입력 2019.10.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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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차 호텔리어 셰프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책의

맛은 어떨까?

 

 

희고 높은 모자와 흰 조리복을 입은 셰프들이 뜨겁고 날카로운 기기들을 이용해 누군가의 식사를 준비하는 호텔 주방은 베일에 싸여진 공간이다. 날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이 주어지지만 한결 같은 맛과 서비스를 위해 주방에서는 매일의 전쟁이 치러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외길을 걸어온 중년의 셰프는 주방일 틈틈이 책을 읽고 칼럼을 썼다. 셰프가 고른 책은 대부분 음식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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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살아가며 음식만큼 많이, 또 자주 접하는 것이 있을까? 스마트폰이라는 신통방통한 현대문물을 제외한다면 아마 음식은 기본 하루 세 번, 적어도 하루 두 번은 우리 곁에 꼭 찾아와 함께하기에 가장 자주 접하게 된다.

 

‘음식(飮食)’이라는 단어를 뜯어서 살펴보면 '음(飮)'과 '식(食)', 즉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짐승의 먹이와는 달리 인간의 음식은 단순히 ‘먹고 마신다’는 행위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쓰디쓴 약처럼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로 폄하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대로 의식주 중에서도 ‘식’을 중요시해왔다. 또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은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대식(大食)’의 나라였다고 하며, 가벼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밥 한 번 먹자’일 정도로 문화가 ‘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족을 지칭하는 동의어가 ‘식구(食口)’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식구’는 글자라는 껍데기만 남고 의미라는 알맹이는 사라진 단어인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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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셰프의 시대다. 미디어를 들썩이게 했던 ‘쿡방’, ‘먹방’의 열풍은 조금 수그러들었을지 몰라도 당시 매체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던 셰프들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 영향으로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최근 급부상한 유튜버, 아이돌처럼 셰프가 크게 치고 올라갔을 정도다. 여러 조리기구를 능숙하게 이용하면서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모습이 멋있었기 때문일까?

 

이 책의 저자 또한 셰프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셰프도, 요리사도 아닌 ‘음식가’로 규정되기를 바란다. 음식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 아니, 먹는 사람인가? 절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 말은 저자 스스로가 아닌 저자의 지인이 저자에게 붙여준 명칭이다.

    

 

“너는 요리사보다는 음식가가 아닌가 싶어. … (중략) …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대신 음식은 위대하잖아. 요리는 맛을 추구하지만 음식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 p.187

 

 

‘음식은 삶을 추구한다’. 그 누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있을까. 문득 내가 오늘 먹은 음식이 떠오른다. 눈 뜨자마자 먹는 나의 첫 끼는 늘 그렇듯 시리얼이었다. 알바를 가야하기에 점심은 밥으로 든든하게, 저녁은 시간에 쫓기며 허겁지겁 먹는다.

 

생각해보니 나의 저녁식사는 늘 조급했다. 그래서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전적인 내 선택이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 평소 먹는 양의 절반도 먹지 않았던 것도, 알바시간과 저녁시간이 겹쳐 다이어트용으로 사두었던 쉐이크를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었던 것도, 하물며 귀찮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대충 사먹었던 것 모두 내가 만든 나의 음식, 나의 식사였다.

 

인간의 음식은, 그리고 그것을 먹고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살기 위한 것만은 아닌데, 문득 돌보지 못했던 나의 ‘음식 삶’에 대해 한없이 미안해졌다. 그때 내가 먹었던 것은 정말 ‘먹이’였던 것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의 소중한 ‘한 끼’가 그런 식으로 버려졌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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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가지와 피망 정도?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음식을 해주거나 어느 음식점에 갔을 때 맛없다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가격에 비해 음식의 질이 낮거나 양이 턱없이 적을 때나 투덜거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단순히 ‘잘’ 먹은 것과 ‘기분 좋게 잘’ 먹은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음식에도 마음이 담겨 있다는 말, 뻔한 말이지만 그 말이 갖는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TV에 나온 인기 맛집을 두고 동네 끝자락에 위치한 낡고 오래된 음식점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또 오랜 시간 타지에 머무른다 해도 엄마표 집밥이 생각나지 않을 테고. 그런데 동네 맛집과 집밥은 언제나 불쑥 그리워지곤 한다. ‘마음 음식’이 주는 마력이다.

 

결국 음식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접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작이 되고, 함께한 기억이 곧 추억이 되며,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생(生)’을 이룬다. 어찌 보면 독서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독서는 매일 하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음식에 대한 추억처럼 독서에 대한 추억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저자는 매 글마다 독서를 강조하고 권장한다. 셰프가 요리도 아닌 독서를 장려하는 것이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에게 있어 ‘독서’와 그로 인한 ‘집필’에 대한 진심은 매 페이지마다 녹아있다. 어쩌면 저자는 전문 작가도,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들 하는데, 셰프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에게도 펜은 (식)칼만큼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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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게 그렇다. 중독성이 참 강하다. 그리고 음식과 결합한 독서의 시너지는 예상보다 훨씬 더 놀라웠다. 이 책의 독서는 참으로 ‘맛있는’ 독서였다.

 

 

독서 주방

-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

 

유재덕 지음

펴낸곳 나무발전소

발행일 2019년 9월 20일

문학_에세이

판형 신국판(148*210)

252페이지

정가 14,000원

ISBN 979-11-86536-65-0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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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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