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함을 평범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평범한 연극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말하는 이유
글 입력 2019.10.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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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_공연사진_16_c김희지.jpg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젠더 담론을 이야기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다. '페미니스트'라는 의미의 일부는 신념이 아닌 정치가 되었다. 페미니즘은 갈등 속 투쟁이 되었고,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폭력성을 역으로 비난한다. 그리고 그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느 누구도 갈등의 현장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가치에 대한 방관이 되며, 용기를 내 주장하는 것은 집단적 이익을 위한 폭력과 궤변이 되어버린다. 젠더 담론은 아주 듣기 쉬운 이데올로기가 되었으며, 진영논리로 '무엇이 젠더인지' 알기 전에, '누가 젠더인지' 찾기 급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격렬한 갈등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을 계몽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너무 커져 버린 목소리는 갈등에 대한 염증을 만들어 다시 무관심으로 끝난다. 담론은 갈등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되며, 이데올로기의 염증은 무관심으로 끝난다.


아직은 관심의 온도가 높아지는 단계다. 대중들의 관심이 식기 전에 담론을 계속 유지하는 위해서는 갈등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갈등은 너무 빨리 달아오르고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 담론의 뜨거움은 너무 허무하게 사라진다. 담론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보호하려 했던 사람을 지키지 못한 채로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예술은 투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에 흘러 들어가 행동을 자연스럽게 바꾸기 때문이다. 갈등으로 목소리를 높인 경각심도 필요하지만, 이해와 공감을 유도해 협력을 촉구하는 방법도 유효하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담론은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차별과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며,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중들과 함께하는 담론은 일방적인 계몽이 아닌 공감과 이해의 방법으로 다가가야 한다. 자연스러운 예술은 인식의 부드러운 부분을 건드려 고민을 함께하도록 한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지금까지 이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을 제공한다. 운동은, 농구는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연극이다. 하지만 작품은 농구대회에 도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플롯에서 등장하는 위기는 팀워크에 대한 이야기다. 농구를 그만두게 된 이유, 농구 연습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모두 농구와 다섯 명의 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부상으로 농구를 포기했다 다시 시작하는 환희,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농구를 시작한 연미, 마지막 고3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재영과 혜준,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시작하다 농구를 통해 자신을 확인해가는 연정까지. 이들의 농구는 자연스럽고 평범하다. 농구를 시작하는 이유, 농구를 하는 과정까지 모두 농구에 의한 이야기다. 연극은 젠더적 불평과 차별을 내세우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보다는 노력과 팀워크를 그린다.

 

 

오늘은 성균관 대학교 농구코트에서 연습을 했다. 낮에 오면 코트가 뜨거워서 사람이 없다. 해 질 무렵 모여드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다. 어떤 아저씨들은 빈 몸으로 농구코트에 와서 우리한테 농구공을 빌려달라고 한다. 우리는 농구코트가 쩌렁쩌렁 울리게 대사를 한다. 지나가다 들은 애인이 뻔뻔하게도 잘한다 했다.

 


그들이 보여준 기울어진 운동장은 작품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견된다. 현실보다 오히려 작품이 자연스럽고 평범함을 느낄 때, 우리는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은 더욱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스포츠를 그렸다. 현실로 돌아와 더 기울음을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작품은 기울어짐을 외치거나 계몽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연극을 보고 운동장의 기울기를 느낄 수 있는 때는, 세상의 농구코트를 직접 확인했을 때다.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혐오가 만연하는 분위기에서 논란거리를 다루는 '방법'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전달하는 대화는 혐오로 인해 멀어진 대화의 거리를 좁힌다. 이해를 강요하는 것은 어긋난 계몽과 교육이 된다. 어긋난 계몽은 반발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해는 가장 가깝고 친숙한 모습에서 나온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현실의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평범하게 그려낸다. 평범하지 않은 것을 평범하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평범함이 현실보다는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이 평범한 농구 이야기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여자들이 농구하는 연극을 만들어보자는 말 한마디에 덥석 하겠다고 했다. 운동하는 남자 옆에서 손뼉 치고 응원하는 여자는 그만. 여자들도 어렸을 때부터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 그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다. 스포츠는 모두의 것.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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