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시실 지킴이를 하면서 반성하게 된 나의 관람 태도 [사람]

전시실을 지키면서 평소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글 입력 2019.10.1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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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시실 지킴이 노릇을 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작품을 만지려는 관람객이 있으면 제지하는 것이다. 간혹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화장실이나 다음 전시실은 어디인지 등의 물음에 대답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몸을 쓰는 일도 아니고 머리가 아픈 일도 아니니까 딱히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시간씩 두 차례, 총 4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짝다리를 짚지 않고 차렷 자세로 서 있는 건 물론이고, 가끔 관람객이 없을 때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것조차도 의외로 쉽지 않았다. 꼿꼿이 앉아 있다가도 잠깐 딴생각을 하면 무심코 다리를 꼬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10분은 지났겠지 싶어서 시계를 보면 5분도 안 지나 있고, 이젠 지났겠지 싶어서 다시 시계를 보면 겨우 5분이 지나 있곤 했다. 시간을 빨리 때우려고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관객 수를 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보거나, 혹은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영상 작품 앞에 배치되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길이가 긴 영상 작품을 곁눈질로 보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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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14>

 

 

그래서 전시실을 지키면서 하나의 영상 작품을 여러 번 보는 건 자연스러워졌다. 전시를 보러 방문했을 때에는 끝까지 보지도 못했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니 당연하게도 더 풍부한 감상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내가 ‘전시를 보기 위한’ 관람객의 입장에서 티켓을 끊고 전시실을 돌았을 때에는 그 작품을 기껏해야 5분 정도 감상하고 자리를 옮겼다는 점이다. 제대로 마음을 먹고 앉으면 타이밍을 못 맞춰 영상이 끝나 버리고, 그렇다고 시작 부분부터 다시 보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전시를 보는 관람객이 아닌 ‘전시장을 지키는’ 지킴이일 때의 나는 한 작품을 여러 차례 거듭 감상했고, 심지어는 다른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설명하는 도슨트 설명에도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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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코미술관, <미디어프로젝트 : 아카이브 리뷰>

 

 

그래서 설렁설렁 전시를 봤던 평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월텍스트나 리플렛의 설명문은 적당히 읽고, 작품이 난해하면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고, 도슨트 설명이 유익하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을 맞추기가 귀찮아서, 혹은 한 번 들으면 한 시간 삼십 분 가량은 투자해야 한다는 이유로 피해 버렸던 내 모습들 말이다.

 

미술 이론 관련 학과를 전공해서인지 나에게 전시는 보고 싶다는 감정만큼이나 봐야 한다는 감정도 컸다. 가끔은 후자의 감정이 더 클 때도 있었다. “이번에 어디어디 미술관에서 무슨무슨 전시 한대.” “그럼 봐야겠네. 시간 없는데 언제 가지?”라는 식의 대화는 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내가 그런 식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남았던 감상은 전시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전시가 내려가기 전에 관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별로라고 느껴지는 전시였다면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짧게 단정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집중해서 봤던 전시들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의 <확장된 매뉴얼>이나 세화미술관의 <유연한 공간> 등이다. 이때에는 전시가 관람객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최대한 느끼고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전시를 관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그저 그 전시들의 주제가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에 가졌던 태도였다. 즉 평소의 나는 전시 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전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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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미술관, <확장된 매뉴얼>

 

 

이런 나에게 누군가는 그럼 재미있어 보이는 전시만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전시 관람은 취미이면서 공부이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전시만 골라 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전시를 접하고 관문을 넓혀야 풍부한 밑거름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다짐한 것은, 뭔가에 대해 비판거리를 찾고 싶다면 그 대상에 대해 최대한 면밀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뭔가에 대해 아쉬움을 표할 때에는, 어떤 대상을 칭찬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칭찬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비판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쉬움의 근거를 쌓기 위해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과정에서도 그 속의 색다른 매력, 내가 알지 못했던 장점을 포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집중한 영상 작품 속에서 느낀 새로운 감정들처럼 말이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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