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쓰기 재료, 국어사전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10.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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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재료, 국어사전


 

사람마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주제 선정이라 말할거다. 어떤 이에게는 글의 구성 방식일지 모른다. 나에게는 단어를 고르는 일이다. 앞서 말한 부분도 늘 고민하지만, 어휘는 글 쓰는 과정을 괴롭게 한다.

 

'그 단어가 뭐더라, 기억이 안 나네.'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생각을 정확한 낱말로 붙잡느라 애먹는다. 난관이다. 겨우 초고를 작성한 뒤 퇴고하는 단계에서도 문제점이 눈에 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안 그래도 빈곤한 언어 상자를 지녔는데 선택하는 낱말조차 한정되어 있다. 글이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문장력을 탐내기 전에 어휘력부터 키워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국어사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엄격한 원칙은 없지만 글쓰기에서 피해야 할 몇 가지는 있다. 이중 표현과 단어 반복이다. 이중 표현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수려한 미문, 대강의 개요, 완전히 근절, 미리 예측 등. '미문' 자체가 아름다운 글귀라는 뜻을 가진 명사다. '수려한'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형용사다. 즉 수려한 문장이나 미문이라고 말하는 게 알맞다. 둘을 한꺼번에 붙여 놓으면 의미가 겹친다. 다른 단어도 마찬가지다. 겹말을 줄여야 글이 정결해 보인다.

 

낱말을 되풀이하는 점도 문장을 진부하게 만든다. '선민은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를 보자. 같은 단어가 두 번 쓰인다. 두 번째 문장에 쓴 결정을 결단, 용단, 결심으로 대체하면 중복을 막을 수 있다.물론 아는 단어가 많다고 해서 좋은 글이 탄생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어휘력이 부족하면 표현력에도 한계가 생긴다. 그래서 낱말의 뜻, 유의어와 반의어를 분명히 파악하려고 한다. 많이 익혀둘수록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연결하기가 한층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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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가슴에 꽂히거나 밑줄을 긋게 되는 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간결하고 명확하다. 어렵고 희귀한 단어 사용을 자제한다. 대신 평범한 용어를 적재적소에 툭 얹는다. 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여운을 남긴다. 진솔하고 담백한 글은 저렇게 쓰고 싶다는 갈증을 부른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줌파 라히리의 단편 소설 길들지 않은 땅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작품은 한 인도계 미국 가정의 일상을 그린다. 주인공은 딸과 아버지다. 사건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은 아버지의 거취 문제를 놓고 벌어진다. 결혼한 딸은 인도 문화에 따라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자 한다.

 

위에 문장은 가족이란 집단에 소속되길 거부하는 아버지의 심경을 나타낸다. 복잡함, 불화, 잡동사니는 가족 구성원끼리 빚는 마찰, 벌어지는 감정의 골, 어수선한 공간을 표현한다. 주변, 그늘이란 단어는 화자가 느끼는 피로, 주체적 삶을 꾸리고자 하는 욕망을 전달한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자제하고 소박하지만 섬세하게 내면을 묘사한다.

 

글을 써보면 실감한다. 간결한 문장으로 울림을 주는 게 쉽지 않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구사하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마크 트웨인도 그런 말을 남겼다. 적절한 단어와 거의 적절한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라고. 그러니 국어사전을 검색하고 또 검색한다. 더 적합한 단어, 어울리는 낱말을 찾으려고 애쓴다. 아는 단어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책을 볼 때도 모르는 단어를 발견하면 노트에 적어뒀다 사전을 찾는다. 욕심을 버리고 먼저 어휘부터 잘 다뤄보자고 되뇐다. 결국 문장은 단어의 결합이니까. 그렇게 오늘도 한 줄씩 쓴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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