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즈의 타이타닉, 그 거대함이 부서지다. [영화]

글 입력 2019.10.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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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는 걸 목격한다. 내 바램과 상관없이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일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본다. 한차례 그러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흔히 ‘휩쓸고 지나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인간관계부터 신념, 인생의 방향마저 재검토 대상이 된다. 원하지 않은 시간 후에 주어진 숙고의 시간은 마냥 달갑지 않다. 슬럼프의 시기에 우울과 성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하기 전과 후로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잭과 로즈의 사랑 전개도 순탄함 속에 장애물이 몇 있을 거라 예상되었으나, 생사의 기로라는 무거운 장애물은 심각한 질문거리를 던진다. 정략결혼이라는 무거운 짐 속에 로즈는 자신을 억누르며 살았다. 몰락해가는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목적인 결혼은 오로지 어머니만이 원했다. 부유층에 속한 여인이 행해야 할 몸가짐, 옷차림, 허세와 물욕만이 가득해 이기적이기만 한 대화들, 그 모든 시간은 로즈를 숨 막히게 했다.

 

잭은 그 반대의 인물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 카드 게임으로 타이타닉 호 3등석 티켓을 거머쥐고 포부만 가진 채 무계획으로 배에 올랐다. 정해진 관습들과 하루 일과가 원치 않은 수행 시간들이 되어버린 로즈와 다르다. 로즈는 잭의 자유로움에 억눌렀던 자신의 본 모습을 자극받는다. 갑판 위에서 침을 뱉어보거나, 3등석 칸 아래로 내려가 흥에 겨워 자유롭게 춤을 추는 등, 지금까지 지내온 자신의 세계가 무척이나 답답했고, 마침내 깨트려 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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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로즈가 잭과 함께 미국에 도착하여 도주 계획을 약속할 때 빙산 충돌로 분위기를 바꾼다. 왜 하필이면 그 타이밍이었을까. 미국에 안전하게 도착하고 난 후에 그들의 행보에 장애물이 있어도 충분히 긴장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동사하게 만들 차가운 대서양 바닷물 위에 타이타닉 호는 두 동강이 난다. 잭과 로즈도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다. 로즈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하기로 한 공간이 타이타닉 호이며, 동시에 그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 공간도 타이타닉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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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설의 공간에서 로즈는 잭과 함께 구조를 기다리는 신세로 나무판자 위에서 얼어 죽기로 한다. 그러나 로즈는 삶을 선택한다. 서로가 얼어붙어 아무 감각도 없는 두 손을 부여잡으며 말한 ‘약속을 지켜요, 포기하지 말아요’의 다짐이 마지막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잭은 로즈에게 자유로움을 계속 선물하려 했으나 생사의 기로에서 오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로즈는 잭을 따라 억눌렀던 자유 속에 살고자 했으나 잭은 이미 없었다. 이제 로즈가 홀로 바라왔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 깊은 속 바램을 일깨워준 잭은 로즈에게 있어 너무나 특별했다. 동사한 잭의 손을 놓으며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한 로즈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미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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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된 로즈의 침대 머리맡에는 숨을 조이는 코르셋과 드레스가 아닌 편한 복장으로 말을 타며 주체적 인격으로 지낸 시절의 사진이 놓여있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면서 자신을 옥죄던 정략결혼의 대상자와도 이별하고, 가족과도 이별했다. 만약 타이나틱 호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미국 도착 후에도 여전히 로즈를 가두려는 세계는 존재했기에 로즈는 끊임없이 혼란스러움 속에 있었을 거다.

 

1등석의 타이타닉 호에는 온갖 사치품과 화려한 보석들, 그리고 명화들이 있었다. 지상의 귀족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그 공간은 바로 로즈가 지금까지 지내왔던 세계였다. 너무나 견고하여 로즈 자신도 절대 깰 수 없었던 세계. 인지는 했으나 어떻게 깰지 방법도 몰랐었다. 빙산과 충돌하며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자신의 삶도 위태로웠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로즈는 그 세계를 깨뜨릴 수 있었다. 자신이 지냈던 세계의 모든 것이 떠나가는 기회비용을 치러냈다.

 

기회비용의 대상에서 잭이 있다는 건 로즈에게 상실감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일부를 버리는 아픔이었다. 내면 깊숙이 숨겨둔 모습을 자꾸만 보게 하는 잭에게 로즈는 친밀감을 느꼈다. 억누르며 지내온 시간은 타이나틱 호에서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 한계점은 로즈가 잭을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잭을 따르고 싶게 만들었고, 타이타닉 호로 상징되는 자신의 무거운 세계를 부수고 싶은 의지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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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은 잭과 로즈가 타이타닉 호 1등석 연회장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토록 벗어나고픈 옛날 자신이 지냈던 시절의 복장을 하고서 로즈는 나타난다. 화려하게 치장한 보석과 드레스를 입고서 잭에게 다가간다. 로즈에게 떨쳐버리고 싶은 세상이었지만, 그 세상에 있어서 잭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세상에 있어서 잭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세상에 만난 잭과의 만남은 그대로 멈춰있다. 영화를 로즈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타이타닉호의 출항과 침몰은 그녀 자신이 바랬던 삶을 펼칠 통과의례였다.

 

살면서 마주하는 예상 밖의 일들은 쌓아왔던 견고한 세상을 뒤흔든다. 그 흔듦의 정도가 클수록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 성숙보다는 우울을 선택하기가 쉽다. 영화 타이타닉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휩쓸고 있는 중이거나 휩쓸고 난 사람들에게 두 가지 의미를 전한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이 원하던 것을 하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일이 일어나기 전의 당신의 모습으로 살았기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과거의 시간을 부정하지 말 것. 삶이란 그 내용과 주제가 무엇이든 타이타닉호의 침몰처럼 때론 큰 상실의 아픔을 치러내야 함을 말이다.

 

 



[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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