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향을 구체화하는 일 [공연예술]

껍데기만 남은 연극 관람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0.0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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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키우던 선인장이 죽었다. 선인장이 죽다니!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튼튼한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산 것이었는데, 일 년이 좀 지나서 죽어버렸다. 가을이라고 물을 좀 많이 줬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하루 아침에 노란 빛을 띠더니 얼마 안 가 빈 껍데기만 남았다.


빈 껍데기만 남는다, 요즘 나에게 연극이 그렇다. 왜인지 최근 들어 극장에서 연극을 만나는 일이 즐겁지가 않다. 나에게 연극이, 연극을 보는 행위 그 겉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의무감에 의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의미 없이 극장을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이고, 왜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금요일 저녁,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고전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이었다. 빈틈 없이 꽉 찬 객석에 앉아 연극을 보는데, 극 중반부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연극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문득 깨달았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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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무대만이, 관습적인 언어로 과거의 것을 말하고, 수많은 관객은 숨 죽인 채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이 규칙이 너무도 잘 지켜지고 있는 극을 볼 때면 그것의 그럴듯함에 균열을 내고 싶다. 배우가 크게 소리 지르는 장면에 나도 큰 소리로 외치고 싶고, 공연에 삽입된 극적이고 장엄한 음악을 끄고 싶고, 맥락 없이 소비되는 캐릭터들의 등장을 막아서고 싶다. 무엇보다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다음을 기다리며 앉아 있어야 하는 그 답답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다.


이런 것들을 참아낸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꽤 자주, 이런 것들을 참아내왔다. 말 그대로의 ‘고문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나는 항상 그러려니 하며 넘겨왔다. 제대로 짚어보고 왜 그런 것인지 반추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배우들의 땀방울을 생각하며, 창작진의 어려움을 헤아리려 노력하며, 결코 이것이 다가 아닐 거라고,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연극에 대한 나의 불편한 감정을 덮어두었다. 연극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싶다는, 그 불가능한 일에 대한 욕심에서였을까?


내가 ‘연극’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예술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면 왜 극장에 갔던 걸까 생각했다. 일단 좋아하는 작품과 극단이 있었다. 극에서 느껴지는 연출가, 극작가, 배우, 창작진의 사유를 좋아했다. 그런 생각들을 만나고 싶어서, 열과 성을 다해 고민하고, 자주 망설이고, 그러면서 결국은 무언가에 도달한 그들의 크고 작은 선택들을 목격하고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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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극 무대가 갖는 권위는 좋아하지 않는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역동적이고 극적인 전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역할에 몰입하여 해내는 실감나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추상적인 예술성과 우연적인 요소들에 거부감을 느끼고, 고전을 원작으로 두면서(고전이 갖는 권위를 그대로 이어받으려 하면서) 과거의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듯한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호의 문제다. 이는 취향을 구체화하는 일과 연관된다. 나는 ‘연극’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어떠한 연극’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일. 그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어떤 찰나의 순간들조차도 잃어버릴 수 있다. 취향이 아닌 작품들 때문에 극장 공간 자체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


취향을 구체화하는 일의 중요성은 자연히 생각을 쓰고 읽는 일의 중요성으로도 이어진다. 무언가를 보고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뚜렷해지고, 그것이 쌓이면 눈에 보이는 길이 만들어진다. 느릴지라도 아주 조금씩 내가 가진 취향의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 길을 종합해보건대 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아주 잘 구현하여 전달하는 극예술이 아닌, 공연예술로 표현된 창작자들의 연구 결과 발표장을 좋아한다. 무대 어디선가 토론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그런 연극을 좋아한다. '희비쌍곡선'의 판소리 쇼케이스 <송파의 경이>가 그랬고, '여기는당연히극장'의 연극 <7번국도>가 그랬고, 황수현 안무가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가 그랬다.


앞으로도 또 극장을 찾을 것이다. 다만 즐겁지 않은 시간을 버티며 '그래도 꽤 괜찮은 작품이었어'라고 말하기 위해 극장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바라고 꿈꾸는 연극을 만나기 위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꺼이 무대와 마주할 것이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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