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채우는 문학과 음악의 템포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이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작가에 대한 마지막 찬가였다.
글 입력 2019.10.04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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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과 함께 즐겨주세요.




프롤로그

       

'위화'. 중국 문학의 중자도 모르는 나에게 있어서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사실 중국 드라마에 빠져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한 지금, 그의 이름은 내게 너무나도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짧은 책 소개 글만 휘리릭 읽은 채 무턱대고 약 4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에 홀려 두꺼운 책의 겉표지를 몇번이고 쓰다듬었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이라... 분명 두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영역은 상당수 공통된 부분이 있다. 과연 작가가 이 책의 두꺼운 표지 속에 어떤 이야기들을 담아냈을까 생각하며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이번역은 ㅇㅇ- ㅇㅇ역입니다-.'

 

사람 많은 지하철을 관통하는 안내방송이 몇번이고 울려퍼졌지만, 책의 오른쪽 모퉁이 끝의 종이 한 자락을 쥐고 있는 내 손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을 가볍게 쥔 엄지손가락은 마치 책의 쪽수가 쓰여있는 부분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것 마냥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책을 읽는 와중에 내 엄지손가락에 칠해진 붉은색 매니큐어가 거슬릴 정도였으니 그 속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당황했다. 나름 영문학과를 졸업하여 문학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지만, 이 책에서 작가 위화가 다루는 문학에서의 조예는... 감히 내가 논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책은 얼핏 보면 다섯 살 어린아이가 자기가 맛있게 먹었던 사탕과 그 사탕의 제조회사에 대한 것들을 먹을 때마다 노트에 빼곡히 기록해 놓은 기록물 같지만, 자세히 보면 천체물리학자가 매일매일 별과 은하를 관측하며 적어내려간 미세한 변화 속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숫자로 가득한 보고서보다 복잡하고 정교했으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세월과 지식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을 나처럼 가벼운 마음에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우선 한 차례 경고를 하고 싶다. 나의 문학적 무지함과 지난날의 오만을 반성할 준비가 된 사람만이 이 책을 집어들 수 있다. 반대로 이미 본인이 문학적 관심과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고래가 바다에서 유영하듯 이 책에 푹 빠져 헤어나올 수 없으리라 또 한 차례 경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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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대중소설을 쓰는 유일한 중국 작가다. 그의 소설은 서양 사람들에게 익숙한 어떤 유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 뉴욕타임즈

 

 


문학을 떠올리면 음악이 떠오르고
음악을 떠올리면 문학이 떠오르고

  

애초에 아이작 싱어의 작품도 다 읽어보지 못한 내가 아이작 싱어의 형이 했던 구절을 떠올리며 시작하는 책을 100% 이해하며 읽어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작가가 자신의 지식과 느낀점을 자신감 넘치게 적어내려갔을 상상을 하니 괜시리 웃음이 나기도 했고,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작가 자체에 대해서 궁금해지기도 했다.

 

작가는 이 책 속에서 많은 인용을 한다. 이 책 속에는 30명도 넘는 세계적 작가들과 음악가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온다. 처음에는 한 명 한 명 인터넷에 찾아가면서 읽어 내려가던 나도, 작가의 설명과 인용이 복잡해져가는 것을 보고 그냥 '작가의 설명에 온전히 기대어 책을 즐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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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 속에서 문학과 음악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나는 그런 작가의 서술 방식이 위에 쓰여진 뉴욕 타임즈의 설명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정해진 룰에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작가의 습성을 파악한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한지 한참이나 지난 후 였다. 작가는 자신의 중학생 시절을 서술하며 책을 돌돌말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꽂아넣고 다녀서 책이 바닥에서 차통마냥 데구르르 구르게 하는 학생이었으며, 실내화를 구겨신어서 결국 슬리퍼로 만드는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이 캐릭터의 화룡정점은 바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두 따라하는 남학생들을 보며 내심 뿌듯해했다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수업 시간에 운동장 걷기를 일삼으며 '자유'에 질려버린 이 어린 소년이 이런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상을 만났으며, 간접적으로 많은 콘텐츠를 접해왔을까 새삼 무섭기까지 했다. 그의 그런 캐릭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작가는 상당히 예민하고 민첩하며 눈치가 빠른 사람일 것이라 예상한다. 그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글에서 단숨에 느껴졌다. 다른 시대에 살았던 작가와 음악가의 작품을 나란히 비교하며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하지를 않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카프카의 이름을 나란히 두며 그것이 개인적 습관이라고 말하지 않나, 천일야화를 세헤라자데보다 더 재미있게 설명하지를 않나, 헤밍웨이와 로브그리예의 서술 속에서 특정한 심리 흐름을 찾아내지를 않나. 이 사람은 아무리 봐도 너무 자유롭고 심심한 나머지 한 분야를 통달해버린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2개의 파트로 구분지어짐을 깨달을 수 있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하나는 문학이고 하나는 음악인데, 두가지 모두에 문외한인 사람이 본다면 조금 괴로울 순 있겠지만, 하나의 분야만이라도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어렵사리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어 내려가다가 완독을 했을 때 나름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음악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서 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의 문학 파트가 전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려웠다거나 지루했던 것은 아니다. 헤밍웨이, 천일야화,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등 우리가 삶을 살아오며 몇 번은 접해봤을 유명한 작가와 작품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큐레이터가 되어 자신의 지식의 깊이에서 뽑아낸 감상을 서술한다. 그러나 나는 그 부분에서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는 올바른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후반부에 가져다 붙여도 좋을 것 같은 퀄리티의 책 해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읽어보지 못한 원작에 대한 관심도 생긴다. 나의 경우에는 중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삭작가인 모옌의 <환락>이라는 소설이 그랬다.

 

문학 작품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잠시나마 발을 들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은 시대를 넘나들어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시대의 경계를 허무는 곳에서 도우미의 역할을 한다. 단순히 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넘어 작가 한 명의 인생과, 그 작가의 인생 속에서 왜 이러한 작품이 탄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까지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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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즐거웠던 것은 음악 파트를 읽을 때 작가가 언급한 음악가의 작품을 들으며 책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책을 짧게 짧게 읽어가며 딴짓 하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장 적절한 템포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작가가 우스꽝스럽게 적어내려간 자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1974년 중국 음악을, 처음으로 직접 조립한 음향기기를 사들고 와서 반년만에 CD 400장이나 들어버린 1993년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글렌 굴드의 <영국모음곡>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등을 들어가며 책을 읽었다. 그랬더니 책이 더 잘 읽히는 느낌이었다. 중국 시단에 있는 작은 음반가게 주인이 추천해준 <투랑갈릴라 교향곡>을 처음에는 의혹어린 시선으로 받아들였으나, 곡을 접한 후에는 파괴와 창조,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는 작가가 참으로 진솔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느낀 것은, 작가는 예술쪽에 남다른 감각과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온 지식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문학을 논하는 수준은 이미 아무나 명함을 내밀 그것이 아니었으며, 작가 본인은 음악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서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웬만한 클래식 전공자들 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갖고있다. 모든 것은 어린 시절의 관심이 한 우물을 파는 행위로 이어졌기 때문이라 나는 생각한다.


브람스에 대한 글을 읽을 때에는 안국역 사거리 어느 건물 2층에 자리한 80년대 감성의 <브람스>라는 카페를 떠올리며 읽었다. 브람스라는 작곡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평소에 알아볼 생각조차 안했던 나는 이 책에서 브람스를 다루는 것을 읽자마자 '아싸'하고 쾌재를 불렀다. 왜냐하면 위화 작가가 소개하는 브람스는 어떤 인물일지 상상만해도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주머니에 사탕을 가득 넣고 공원을 산책해서 아이들에게 늘 인기가 많았다는 독신남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또한 어떤 책에서 베토벤과 동일시 되는 것에 분개하며 '베토벤이 내 앞길을 얼마나 가로막는지 모를 거요.'라고 말하는 브람스의 일화를 들으며 후후 웃을 수 있을까? 작가는 교묘하게 잘 짜여진 명품 니트나 머플러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한다.

 

그의 책 속에서 나는 오래된 책 속 곧 찢어질 것 같은 누런 박엽지 위에도 서보고, 술을 흘려 알코올이 날아간 흔적이 미세하게 남은 어느 작곡가의 악보 위에도 서 보았다. 나는 그 속에서 문학과 음악을 음유했고, 두 개가 결국은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깨닫고 보니 나는 글을 읽을 때는 음악을, 음악을 들을 때는 글귀를 떠올리고 있었다.




에필로그


       

도저히 작가를 담을 수 없는 그릇을 지닌 내가 꾸역꾸역 작가를 그릇 속에 집어넣었다. 이마에 무릎이 닿고 발 뒤꿈치가 엉덩이에 닿을 정도로 내 그릇에 구겨져 들어가있는 작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작가에 대한 마지막 찬가였다.

 

다음번에도 글을 쓰게 된다면 아마 맹목적인 찬가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나와 함께 세월을 관통할 것이고,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지혜를 얻으려 펼쳐볼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생기면 작가의 그것과 비교하기 위해 샅샅이 뒤져볼 것이고, 견해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비판도 해볼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간 현명한 '어른'의 말을 잘 새겨듣는 아이처럼 그의 책 속 구절을 한 번 두 번 더 읽어볼 것이다. 마음에도 새겨볼 것이다. 다짐할 때 유용히 쓰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나도 같이 나이를 먹으며 선율 속에서 서술해나가리라. 


 
음악의 역사는 끝없는 심연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만 그 풍부함을 알 수 있고 경계가 없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작가와 작품 뒤에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선율과 리듬이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장 우렁찬 이름 뒤편에 수줍어하고 상심하는 이름들도 있으며 그러한 이름들이 대표하는 음악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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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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