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의 한계를 넘어 – 갤러리 현대의 두 전시 [시각예술]

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프레드 샌드백《오방색 Obangsaek》
글 입력 2019.09.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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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동쪽, 삼청동 들어가는 길목에는 국내 최고(最古)의 화랑 갤러리현대가 위치해 있다. 1975년 인사동에서 이전해 온 갤러리현대(구 현대화랑) 본관과 1995년에 새롭게 문을 연 신관에서는 국내외의 현대미술 전시를 개최해오며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문화예술의 소통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금도 경복궁 옆에서 갤러리현대의 두 전시관에서는 나란히 한국과 외국 작가의 현대미술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9월 27일 현재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신성희 작가의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그리고 갤러리현대 신관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의 《오방색 Obangsaek》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신성희 - 회화 평면의 극복


회화(繪畵)는 기본적으로 면 위에서 전개되는 예술이다. 도화지든 캔버스든 2차원의 도면 위에서 작품이 펼쳐진다. 전통적으로 이 면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세상의 일부를 담은 프레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나 서양화에서는 물론이고, 현대의 회화에서도 도면 위에 그려지는 것은 (물론 작가가 단지 그 장면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세계의 일부를 작가가 조작적으로 선택하여 그린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크기의 도면에 작품의 영역은 제한되지만, 한편으로는 도면은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구라서 관찰자는 화면을 바탕으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신성희는 회화에 있어서 2차원의 도면이라는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했다. 기존의 회화에서 도화지나 캔버스는 고정된 존재이고, 그 위에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데, 작가는 캔버스에 변형을 가한 작품을 만든다. 그는 작품에서 다양한 재료와 색깔과 기법으로 그려진 캔버스 천을 얇은 띠 모양으로 자르고 찢은 후 각 캔버스 천 조각을 묶거나 박음질하여 이어 붙인다.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회화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이어서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생기기도 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회화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캔버스를 손상시키는 것은 두 가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우선 2차원에 머물던 회화 작품이 3차원의 영역에 포함되게 된다. 사실 회화는 가장 전통적이고 직관적인 예술인 동시에 모든 표현의 요소가 한 평면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입체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평면 속에서만 작품을 펼치는 것은 표현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신성희의 작품은 회화가 가지고 있던 ‘평면성’이라는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였다. 현대 미술이 변화를 거듭하여 공간예술과 설치미술 등장하면서 회화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작가가 회화에 부여한 입체성은 회화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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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칠한 캔버스를 긴 띠의 모양으로
잘라 서로 엮은 모양이다.
가까이서 보면 입체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며
중간중간이 뚫려있어 캔버스 뒤의 벽면에 그림자가 보인다.


한편으로 캔버스에 손을 대면서 관람객은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회화에서 작품이 펼쳐진 도면은 평면 그 자체라서 화자의 작품세계를 그저 담고 있을 뿐이다. 화가는 작품세계의 일부를 캔버스에 표현하고, 관람객은 캔버스에 그려진 모습을 통해 작가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작가의 세계를 단지 가로X세로 몇 제곱센티미터의 창문(캔버스)을 통해 들여다볼 수밖에 없지만, 창문에 비춰진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의 세상 전체를 파악하는 작업인 것이다. 결국 캔버스는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성희의 작품에서는 캔버스 자체를 훼손시키고 있다. 기존의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관람객은 캔버스라는 대상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위에 그려진 작품만 감상하면 되지만, 캔버스가 훼손된 것을 관객들이 인지하게 되면 ‘캔버스’라는 존재가 애초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로 인해 관객은 캔버스 위에 표현된 세상에 완전히 집중할 수 없고 캔버스의 모습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감상자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상에 편하게 몰입할 수 없고 자신이 하나의 창문(캔버스)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신성희의 작품은 회화에 있어서 아크릴을 비롯한 물감 자체를 이용한 표현기법 외에도 캔버스 천을 이용한 새로운 표현법을 제시하여 회화의 표현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캔버스의 변형을 통해 한 캔버스 작품 내에서 분리된 서로 다른 세계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어 관람객에게 더욱 풍부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해져, 전통적인 회화와 다르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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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가운데에 세로로 길게
캔버스가 잘리고 박음질 된 것이 드러난다.
아크릴물감을 인위적으로 뭉치게 하여
캔버스 뿐만 아니라 물감으로도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다.



프레드 샌드백 – 전시 공간의 극복


프레드 샌드백의 작품은 일단 3차원 내에 존재하고 있다. 신성희의 회화와는 다르게 이미 입체공간의 세계에 머물고 있으며, 아크릴 실이나 금속으로 된 줄을 통해 단순한 선의 형태를 전시 공간 곳곳에 설치하는 형태로 작품이 전개된다. 그러나 이미 3차원의 세계에 속하는 샌드백의 작품 역시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전시 공간이다. 회화가 전개되는 공간은 2차원의 캔버스 위이지만, 설치미술은 전시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전시관은 커다란 공간이지만 그 자체에서도 어쩔 수 없이 공간상의 제약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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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층에 걸쳐 실을 고정시켜
작품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샌드백은 전시관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을 전개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일단 그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모두 가느다란 줄이다. 줄은 전시관의 바닥, 벽, 천장 등에 고정되고 전시장의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갤러리현대 신관의 3개 층에 걸쳐 서른 점 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각 작품을 이루는 실의 색깔만이 다르고 모든 작품은 단순한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인 사물을 연상시키지 않는 추상적인 실들의 배열은 관객에게 이미지를 주입시키지 않고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끔 한다. 새하얀 바닥과 벽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전시장을 실들은 무질서하게 분리시키는데, 관람객의 눈을 통해 보이는 광경에서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이 새로이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미국 전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전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조각가이다. 조소라는 장르 역시 공간 속에서 물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자 한 샌드백이 전시관 속에서 사용하기 가장 이상적인 소재가 바로 아크릴 실이었을 것이다. 실은 선에 관한 재료이지만 3차원을 표현할 수 있고, 동시에 가늘어서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아 중력의 영향을 무시하고 전시관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결국 실을 통해 전시관의 공간을 절단시킬 수 있으며, 절단된 낯선 광경을 해석하는 몫은 관객 개개인에게 주어지게 된다.

작품은 하나의 형태로 완성되어 있지만,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각 관람객은 제각기 새로운 공간을 상상해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전시관을 옮겨 다니며 전시를 개최할 때, 《오방색》 전시는 각 전시장의 공간적 특성에 맞추어 새롭게 설치되게 된다. 결국 서로 다른 관객을 통해, 그리고 서로 다른 전시 공간 속에서 실이라는 재료는 공간에 대한 무수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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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사선으로 절단하고 있는 색색의 실들


갤러리현대의 두 전시관 속에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색다른 전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본관에서의 전시는 어느 정도 한국적이며 평면에 대한 극복인 반면, 신관에서의 전시는 모던하며 입체적 공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서로 100미터 가량 상거한 거리의 두 전시는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예술적으로 같은 도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색채와 소재, 질량감 모두 대비되는 두 전시를 국내 최고의 화랑에서 감상해보길 바란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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